어머니에게 보내는 편지
이인식 (한국습지네트워크 공동대표)
보름달 아래 쏙독새와 소쩍새의 슬픈 울음소리를 들으며 한여름 밤, 나는 우포늪을 오롯이 걷고 있습니다. 검은 산자락 위에 외롭게 걸린 달을 향해 나지막한 소리로 ‘어머니 늘 건강하십시오’라고 빌어봅니다. 가끔씩 ‘휘이익 호오’하면서 귀신 소리를 내는 개똥지빠귀도 저처럼 외로운 모양입니다.
노모 곁을 떠나 우포늪가 세진마을에 안착한 지도 벌써 달포가 넘었습니다. 33년 전, 함양 서상의 한 초등학교에 선생이 되어 떠날 때 어머니는 마냥 안쓰러워하시면서 그곳은 추울 것이라며 두꺼운 누비이불을 싸주셨습니다. 그러면서도 가난한 집 아들로 태어나 선생이 되어 떠나는 아들을 바라보시며 흐뭇해하시던 어머니의 얼굴을 잊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아니었습니다. 아직도 선생질이 5년이나 남았는데, 왜 낙동강가의 우포늪으로 가느냐며 나무랐습니다. 답변을 잘 드리지 못하며 머뭇거리고 있는 자식을 향해 애원하듯, “학교 다 마치고 그 때 가모 안 되것나”하셨지요.
차마 무어라고 말씀드리지도 못하고 새벽녘에 옷가지 몇 벌 챙겨 떠났습니다. 이제 어머니께 말씀 드리지 못한 이야기를 세상을 향해 하겠습니다. 20년 전 군사독재 하에 교육민주화 사건으로 학교에서 쫓겨나고 감옥에 갔을 때도 어머니는 담담하셨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어머니가 굳이 말리시는 까닭은 오랫동안 환경운동을 해 온 아들이 좋아하는 우포늪에 가는 것이 싫어서가 아닐 겁니다.
왜 우포늪 가느냐며 꾸짖어
이명박정부가 들어선 후, 4대강사업을 하면서 낙동강이 수천년을 거쳐 만들어 논 강변의 모래톱과 배후습지를 훼손할 것이라는 염려를 하는 아들의 푸념을 여러번 들으셨기 때문입니다.
특히 우포늪을 보전하는 과정에서 여러 번 지역주민들과 행정의 반대를 무릅쓰고 정면 돌파하는 모습을 보면서 늘 마음 졸여했습니다.
한마디로 불효 중에서도 상 불효자지요. 순천만에서도, 새만금에서도, 봉암 갯벌과 주남저수지에서도 … 여러 번 응급실에 실려가는 아들을 보면서 얼마나 가슴앓이를 하셨겠습니까?
어머니, 어느덧 달은 더 높이 솟아 견우와 직녀성 사이에 섰습니다. 저의 그림자도 더욱 또렷해진 깊은 밤입니다. 마침 낮에 있었던 김태호 총리 후보자의 청문회를 보면서 문득 생각나는 것이 있어 글 말미에 몇자 첨언할까 합니다.
조순형 의원이 김 후보자를 향해 물었습니다. 대통령의 지시에만 따르는 총리가 아니라 국민을 위하여 4대강으로 인한 국론분열에 대하여 대통령에게 속도조절을 주문할 수 있겠느냐고.
구체적인 답변은 없었습니다만, 김 후보자는 이명박정부의 총리로서 국민적 찬반여론이 팽팽한 4대강 사업의 속도전과 밀어붙이기에 방패막이가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한나라의 재상(총리)은 백성의 민심을 챙겨 임금에게 올바른 정치를 하도록 고언을 드리는 자리입니다.
다산 정약용 선생은 고위 공직자에 대해 “임금을 섬기는 방법은 임금에게 존경 받는 사람이 되어야지, 임금의 사랑까지 받을 필요 없다. 임금에게 신임을 받는 사람이 되어야지, 임금이 기뻐하는 사람까지 되어서는 안 된다”고 했습니다.
4대강 ‘방패막이’ 총리 안돼
김 후보자는 2008년 경남지사로서 현 대통령 참석 하에 람사르협약 당사국총회를 성공적으로 치른 바 있습니다. 이 회의는 강변의 습지를 보전하고, 복원하는 국제적인 협력을 약속하는 자리였습니다.
김 후보자는 홍수조절과 생태계 회복을 위해 강 주변의 모래톱과 배후습지를 복원하는 환경선진국들의 사례를 더 치밀하게 들여다보아야 할 것입니다.
부디 본인이 또 한번 정부와의 반목으로 노모께 걱정을 끼치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김 후보자의 깊은 숙고를 기다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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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식 (한국습지네트워크 공동대표)
보름달 아래 쏙독새와 소쩍새의 슬픈 울음소리를 들으며 한여름 밤, 나는 우포늪을 오롯이 걷고 있습니다. 검은 산자락 위에 외롭게 걸린 달을 향해 나지막한 소리로 ‘어머니 늘 건강하십시오’라고 빌어봅니다. 가끔씩 ‘휘이익 호오’하면서 귀신 소리를 내는 개똥지빠귀도 저처럼 외로운 모양입니다.
노모 곁을 떠나 우포늪가 세진마을에 안착한 지도 벌써 달포가 넘었습니다. 33년 전, 함양 서상의 한 초등학교에 선생이 되어 떠날 때 어머니는 마냥 안쓰러워하시면서 그곳은 추울 것이라며 두꺼운 누비이불을 싸주셨습니다. 그러면서도 가난한 집 아들로 태어나 선생이 되어 떠나는 아들을 바라보시며 흐뭇해하시던 어머니의 얼굴을 잊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아니었습니다. 아직도 선생질이 5년이나 남았는데, 왜 낙동강가의 우포늪으로 가느냐며 나무랐습니다. 답변을 잘 드리지 못하며 머뭇거리고 있는 자식을 향해 애원하듯, “학교 다 마치고 그 때 가모 안 되것나”하셨지요.
차마 무어라고 말씀드리지도 못하고 새벽녘에 옷가지 몇 벌 챙겨 떠났습니다. 이제 어머니께 말씀 드리지 못한 이야기를 세상을 향해 하겠습니다. 20년 전 군사독재 하에 교육민주화 사건으로 학교에서 쫓겨나고 감옥에 갔을 때도 어머니는 담담하셨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어머니가 굳이 말리시는 까닭은 오랫동안 환경운동을 해 온 아들이 좋아하는 우포늪에 가는 것이 싫어서가 아닐 겁니다.
왜 우포늪 가느냐며 꾸짖어
이명박정부가 들어선 후, 4대강사업을 하면서 낙동강이 수천년을 거쳐 만들어 논 강변의 모래톱과 배후습지를 훼손할 것이라는 염려를 하는 아들의 푸념을 여러번 들으셨기 때문입니다.
특히 우포늪을 보전하는 과정에서 여러 번 지역주민들과 행정의 반대를 무릅쓰고 정면 돌파하는 모습을 보면서 늘 마음 졸여했습니다.
한마디로 불효 중에서도 상 불효자지요. 순천만에서도, 새만금에서도, 봉암 갯벌과 주남저수지에서도 … 여러 번 응급실에 실려가는 아들을 보면서 얼마나 가슴앓이를 하셨겠습니까?
어머니, 어느덧 달은 더 높이 솟아 견우와 직녀성 사이에 섰습니다. 저의 그림자도 더욱 또렷해진 깊은 밤입니다. 마침 낮에 있었던 김태호 총리 후보자의 청문회를 보면서 문득 생각나는 것이 있어 글 말미에 몇자 첨언할까 합니다.
조순형 의원이 김 후보자를 향해 물었습니다. 대통령의 지시에만 따르는 총리가 아니라 국민을 위하여 4대강으로 인한 국론분열에 대하여 대통령에게 속도조절을 주문할 수 있겠느냐고.
구체적인 답변은 없었습니다만, 김 후보자는 이명박정부의 총리로서 국민적 찬반여론이 팽팽한 4대강 사업의 속도전과 밀어붙이기에 방패막이가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한나라의 재상(총리)은 백성의 민심을 챙겨 임금에게 올바른 정치를 하도록 고언을 드리는 자리입니다.
다산 정약용 선생은 고위 공직자에 대해 “임금을 섬기는 방법은 임금에게 존경 받는 사람이 되어야지, 임금의 사랑까지 받을 필요 없다. 임금에게 신임을 받는 사람이 되어야지, 임금이 기뻐하는 사람까지 되어서는 안 된다”고 했습니다.
4대강 ‘방패막이’ 총리 안돼
김 후보자는 2008년 경남지사로서 현 대통령 참석 하에 람사르협약 당사국총회를 성공적으로 치른 바 있습니다. 이 회의는 강변의 습지를 보전하고, 복원하는 국제적인 협력을 약속하는 자리였습니다.
김 후보자는 홍수조절과 생태계 회복을 위해 강 주변의 모래톱과 배후습지를 복원하는 환경선진국들의 사례를 더 치밀하게 들여다보아야 할 것입니다.
부디 본인이 또 한번 정부와의 반목으로 노모께 걱정을 끼치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김 후보자의 깊은 숙고를 기다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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