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사기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다] 당신도 보험사기범 될 수 있다
연성사기가 절반 가까이 차지 … 조력자 처벌 등 강력한 규제 필요
보험사기(범죄)가 갈수록 지능적으로 바뀌고 있다. 또 단순사기에 그치지 않고 강력범죄로 이어지면서 위험수위는 더욱 높아지고 있다. 더 큰 문제는 보험사기에 가담하는 사람들이다. 특정계층이나 특정 직업군만이 아니다. 보험사기의 유혹은 탈북자, 장애인, 군인, 가정주부까지 연령과 계층을 가리지 않는다. 심지어는 10대 청소년들과 20대 젊은이들이 보험사기에 물들고 있다. 이에 따라 내일신문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소리 없는 재앙(The Quiet Catastrophe)’으로 불리는 보험사기(범죄)의 심각성을 알리고, 다양한 대안을 모색해보는 기획시리즈를 연재한다.
# 피해과장
2006년 11월 정 모씨는 본인 과실(신호위반)로 교통사고를 당한 사실을 빌미로 양쪽 눈 실명을 가장해 3억3300만원의 보험금을 편취한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정씨는 교통사고를 당한 수개월 후 개인 안과를 방문해 진료 받고, 장해등급을 높게 받기 위해 건강상태를 과장했다. 당시 병원 관계자에 따르면 당시 정씨의 시력상태는 양호했고, 만화책을 대출해 본 적도 있다고 한다.
# 운전자 바꿔치기
박 모, 김 모씨는 처남매부지간이다. 2008년 11월 이들과 지인 2명 등 4명이 탑승한 화물차량을 박 씨가 운전하던 중 고속도로 다리 난간을 충돌한 뒤 추락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지인 2명은 현장에서 사망했고, 박씨과 김씨는 중경상을 입었다. 그런데 당시 박씨는 무면허, 연령미달로 종합보험처리가 되지 않는 상태였다. 이를 감추기 위해 가족들과 공모한 뒤 사망한 윤 모씨가 사고차량을 운전한 것으로 경찰에 허위 신고했고, 고액의 사망보험금까지 청구했다.
◆“이 정도 쯤이야?” = 보험사기에는 크게 두 가지 종류가 있다. 경성사기(Hard Fraud)와 연성사기(Soft Fraud)다. 경성사기는 보험증권에서 담보되는 자해, 상해, 도난, 방화 등의 손실을 의도적으로 연출하거나 조작한 후 보험사를 속여 보험금을 편취하는 행위를 말한다. 보험금을 타기 위해 의도적으로 사고를 꾸미거나 치밀한 계획아래 사기를 저지르는 경우를 말한다.
이에 반해 연성사기는 보험계약자나 보험금 청구권자가 보험사고 발생시 합법적인 청구를 과장하거나 확대하는 경우에 해당된다. 사전에 계획하기 보다는 우발적 사고가 발생한 경우 이를 과장하거나 확대해 좀 더 많은 보험금을 받으려는 시도라는 의미에서 기회사기(Opportunity Fraud)라고도 불린다.
또 연성사기에는 사고 정도를 과장하거나 확대하는 것뿐만 아니라 보험계약을 청약하거나 갱신할 때 허위정보를 제공해 낮은 보험료를 낸다든지 아니면 보험가입이 어려운 상태인데 이를 속여 보험가입 가능성을 높이는 행위도 포함된다.
앞에서 본 것처럼 교통사고 피해를 과장하고, 운전자를 바꿔치기 하는 행위, 흔히 말하는 ‘나이롱환자’ 등도 대표적인 연성사기에 해당한다. 물론 사고가 난 뒤에 보험에 가입하는 행위도 연성사기에 속한다. 이처럼 흔히 ‘이 정도쯤이야’하는 안일한 생각에서 저지르게 되는 대부분의 보험사기는 연성사기인 것이다. 따라서 조직적인 범죄자가 아니더라도 일반인들까지 저지르기 쉬운 보험사기가 바로 연성사기라 할 수 있다.
◆보험사기 절반은 연성사기 = 그런데 문제는 최근 들어 연성사기가 계속 늘고 있다는 점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최근 몇 년 동안 연성사기는 적발금액과 인원 모두 늘고 있다. 지난해 조금 줄어들긴 했지만 최근 몇 년 동안의 추세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 전체 보험사기 가운데 차지하는 비중도 가장 많다. 거의 절반에 육박하는 수준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009회계연도 전체보험사기 가운데 연성사기로 분류되는 피해과장, 사후가입, 바꿔치기 등의 적발금액은 37%, 적발인원은 41.5%에 이른다. 이보다 앞선 2008년에는 전체보험사기 가운데 연성사기가 차지하는 비중이 적발금액은 46.2%, 적발인원은 47.4%에 이를 정도였다. 보험사기의 유혹이 우리 주변에 얼마나 만연해 있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양희산 교수(전주대 금융보험학과)는 이에 대해 “(국민들은) 보험사기에 대한 죄의식이 별로 없다”며 “처음부터 의도하지는 않았더라도 기회가 되면 해도 된다는 식의 재테크처럼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양 교수는 특히 보험사기를 저지르는 계층이 점차 다양화 되고 있는 점을 우려했다.
그는 “국민들이 안이하게 생각하다 보니 특정집단만 저지르는 것이 아니라 청소년이나 노인층까지 개입하는 보험사기가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조력자 처벌하고, 대국민 홍보 강화해야 = 이처럼 평범한 생활인들 주변에까지 보험사기의 유혹이 만연해지면서 감독당국 등에서도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연성사기를 막을 수 있는 법적 제도적 장치를 강화하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대표적인 경우로 나이롱환자에 대해서는 올 2월부터 강제추방권이 도입됐다. 이에 앞서 2007년 11월에는 교통사고로 입원한 환자가 외출이나 외박을 할 때는 의료기관에게 사전 통보해 허락을 받아야 하는 규정이 신설됐고, 외출기록 열람을 거부하는 의료기관에 대해서는 과태료를 부과하는 규정도 지난해 8월 도입됐다.
뿐만 아니라 국토해양부가 지자체 공무원에게 권한을 위임해 의료기관의 외출외박 기록 등에 대해 지자체 공무원이 검사를 할 수도 있고, 불응할 경우 과태료도 부과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아직까지 지방자치단체들은 보험사기에 대해 적극적인 단속의지를 보이고 있지 않다는 평가다. 특히 연성사기에 대해서는 ‘그럴 수도 있지’라며 가볍게 치부하기 일쑤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 같은 안일한 생각이 보험사기를 부추기는 요인이 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강영구 보험개발원 원장은 이에 대해 “보험사기에 대해 우리사회가 지나치게 관대하다”면서 “따라서 관련 법이나 제도를 보다 엄격하게 운영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강 원장은 이어 “중요한 것은 보험사기의 유혹이 안 느껴지도록 보험회사에서도 모럴헤저드가 발생할 수 있는 보험약관이나 제도를 지속적으로 정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헌수 교수(순천향대 금융경영학과)는 종합적인 대응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보험사기를 줄이기 위해서는 △법이나 제도적으로 패널티를 강화하고 △보험사기가 범죄라는 인식이 생기도록 지속적으로 홍보하며 △적발률을 높이는 것이 필요하다고 충고했다. 특히 적발률을 높이기 위해 조력자 집단을 구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보험사기가 일어나는 과정을 보면 개인이 저지르더라도 반드시 조력자가 있다”며 “조력자 집단에 대한 데이터 확보나 축적을 통해 적극적으로 보험사기를 유도하는 조력자 집단을 구분해 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정재철 기자 jcju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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