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외규장각 딜레마, 어떻게 풀어야 하나

지역내일 2000-10-26
내일시론

외규장각 딜레마, 어떻게 풀어야 하나

지난 7년 동안 한·불(프랑스) 간 외교적 딜레마였던 외규장각 도서 반환문제가 한불정상회
담 합의로 출구가 열리는 듯 했다. 그러나 학계의 반대여론으로 다시 파문이 일고 있다.
1866년 병인양요(丙寅洋擾) 때 프랑스군이 약탈해 간 이 문서의 반환문제는 양국의 자존심
과 명분이 서로 얽혀 감정대립으로까지 비화한 현실이다. 이 때문에 한불관계는 정체(停滯)
되고 활력을 잃었고 일이 안 풀리면 외규장각도서 탓으로 돌리는 현상마저 생겼다. 지난19
일 청와대에서 김대중 대통령과 시락크 대통령이 ‘2001년까지 반환 완료’키로 합의한 것
이 오히려 딜레마를 심화시키는 엉뚱한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프랑스국립도서관이 소장중인 외규장각도서는 어람용(御覽用) 의궤(儀軌) 191종 297권으로
이 가운데 64권이 유일본(唯一本)이다. 이번 합의는 국내에 진본이 없는 64권을 포함해 297
권을 장기임대방식으로 돌려 받는 대신 같은 시기의 어람용 복본의궤와 비어람용 의궤복본
을 프랑스에 같은 방식으로 교류한다는 내용이다. 학계는 약탈문화재의 반환을 위해 우리
문화재를 내준다면 약탈을 정당화시켜주며 문화재 반환에 나쁜 선례를 남긴다고 격렬히 반
대하고 있다. 종래의 등가등량(等價等量) 교환방식에 대한 미봉책에 지나지 않는다고 비판과
함께 국제재판에 회부하자는 대결론까지 나왔다. 프랑스에서는 이 도서를 조건없이 반환할
수 없다는 여론이 일면서 문제 해결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

외규장각문제는 한불의 외교딜레마 000
프랑스에도 나름대로 반대논리가 있고, 효율적 대응을 위해서도 이를 파악할 필요가 있다.
프랑스학계의 반대논리를 간추려보면 우리 학계와 정반대이다. 대원군이 프랑스 신부 6명을
포함한 한국인 신자 다수를 처형한 천주교 박해에 대해 진상을 묻고 신앙의 자유와 경제교
류를 요구한 것이 프랑스함대의 출동이유이며, 이를 무시당했기 때문에 병인양요가 일어났
다는 ‘원인론’을 제기한다.
특히 로즈 제독의 태평양함대는 천주교 박해에서 구사일생한 프랑스 신부와 한국인 신자들
의 군사개입 요구를 받고 본국과 청국(淸國)의 협의를 거쳐 출병했다고 주장하면서 심지어
는 불타버릴 한국문화재를 구해 잘 보관했다고 강변한다. 권한이 실무자에게 있기 때문에
도서관 사서가 거부하면 어쩔 수 없다는 ‘현실론’을 내세우기도 한다. 1995년 YS의 프랑
스 방문 때는 당시 미테랑 대통령이 ‘도서문제가 이렇게 어려운 것인지를 몰랐다’며 탄식
할 만큼 프랑스에게도 딜레마임을 솔직히 인정했다.
양국 학계의 이러한 인식과 해석의 차이는 쉽게 좁혀지지 어려울 것 같다. 양국 학계의 공
동연구로 풀어야 할 과제다. 그래서 외교협상이 필요하며, 협상은 실용주의적 접근을 통해
서로가 조금씩 양보함으로써 딜레마를 푸는 작업이다. 그런데 1993년 9월 미테랑의 방한 때
한불정상회담의 합의는 영구임대방식으로 도서를 반환하되, 등가등량의 한국문화재를 프랑
스에 영구임대한다는 것이었다. 우리 정부는 임대방식에 합의해 줌으로써 소유권이 프랑스
에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듯한 과오를 범했다. 당시 외무부의 고위당국자는 ‘무슨 방식으
로든 돌아오면 된다. 등가등량은 문제될 것 없다. 적당한 책을 보내더라도 프랑스사람들이
무엇을 알겠나’라고 가볍게 언급했다. 외교당국의 안일한 판단이 등가등량 조건을 수용하
게 만들었고, 그 후 정부가 두 차례 보낸 책 리스트가 프랑스전문가들의 거부를 받게 한 원
인이 됐다.

슬기로운 선택으로 관계를 복원해야 000
프랑스 학계는 이를 고속철도(TGV)와 연계시키는 것도 못마땅하게 여긴다. TGV 수주 후
미테랑의 방한이 있었기 때문에 별개의 문제라는 것이다. 또 미테랑이 ‘반환 가능성 여부
를 총리에게 검토하라고 지시하겠다’고 한 답변이 한국언론에 의해 ‘돌아온다’라고 보도
돼 상호 오해가 있다는 주장도 했다. 문제파악에 대한 서울과 파리 간 인식차이가 크고 여
기서 감정이 서로 상했다. 1995년 3월 쥐페 외무장관은 ‘언제 도서를 반환하나?’라는 필
자의 질문에 ‘소유권이 프랑스에 있지만 반환노력중’이라고 답변할 만큼 프랑스측은 소유
권을 강조했다. 최후의 카드는 프랑스에 있다는 말이었다.
딜레마의 핵심은 등가등량의 교환방식에 있었다. 이번 합의는 복본을 대여해주고 유일본을
찾는다는 데 무게중심을 둔다면 차선책이 되지 않을까. 결국 우리의 자존심과 프랑스의 명
분, 그리고 역사와 현실과의 싸움이다. 이를 어떻게 조화시켜 타협을 보느냐가 문제다. 역사,
국제법, 문화와 외교전문가들로 협상단을 구성해 장기전을 펼 수도 있다.
파리의 동양박물관 한국실 등에 상설 전시하는 것도 하나의 대안일 수 있다. 이 문서를 프
랑스문화재로 볼 사람은 아무도 없으며 한국문화를 세계에 영구히 전시할 수 있는 기회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양국 모두 슬기롭게 딜레마를 풀어 불편한 양국관계를 복원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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