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호 칼럼]600년만에 부활한 제해권의 꿈

지역내일 2010-09-15
600년만에 부활한 제해권의 꿈
김영호 (시사평론가 언론광장 공동대표)

2005년 7월 중국은 명대의 정화(鄭和)가 이끈 서양 원정 600주년을 맞아 대대적인 기념행사를 가졌다. 정화가 원정의 닻을 올린 7월 11일을 항해일로 정하고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기념식을 가졌다. 기념우표도 발행했다.
국가박물관은 넉달 동안 ‘대원정 전시회’를 열었다. 정화 함대의 출항지인 장쑤(江蘇)성 타이창(太倉)에선 ‘정화, 항해의 날’행사를 열었다. 난징(南京)의 정화기념관은 2주 전에 예약해야만 구경할만큼 국민적 관심도 컸다.
1980년대 덩샤오핑(鄧小平)이 개혁-개방에 힘을 실으려면 바다로 나가야 한다며 정화를 되살리려 했지만 그때만 해도 힘이 부쳤다. 하지만 600년만의 되살아난 열기는 역사 속 정화를 부활시킬 만큼 뜨겁다. 지난 7월 중국은 케냐와 공동으로 정화 난파선 수색작업에 나서기로 했다. 이것은 중국이 경제력을 바탕으로 다시 해양대국의 기치를 올리려는 의지의 표출이다.

안정적 수송로 확보가 목적
정화는 1371년 원의 마지막 점령지였던 윈난(雲南)성에서 태어난 이슬람교도였다. 11세 때 윈난성이 명군에 정복되고 거세된 그는 환관이 되었다. 명을 건국한 주원장의 장손인 건문제(建文帝)를 폐위시키는 ‘정난(靖難)의 변’에서 그는 연왕(燕王)의 편에 서서 무공을 세웠다. 연왕은 건문제의 삼촌이며 후에 영락제(永樂帝)로 등극했다.
환관의 수장인 태감에 오른 정화는 영락제의 명을 받아 조공무역 개척에 나섰다. 1405∼1433년 28년간 7차례에 걸쳐 300여척의 함선과 3만 수병으로 구성된 대선단을 이끌고 대양을 누볐다. 당시 서양은 말라카 해협 서쪽을 말하는데 동남아 서남아를 넘어 아프리카까지 30여개국을 원정했다.
1424년 영락제가 죽고 그의 손자인 선덕제(宣德帝) 재위시인 1431년 정화는 제7차 원정을 나섰다. 사우디아라비아의 메카, 케냐의 스와힐리 해안까지 항해했던 것이다. 그는 이 원정을 마지막으로 이듬해 사망했다. 그가 죽자 일종의 격하운동이 일어나 그에 관한 많은 자료가 파기되었다.
명나라에 이어 청나라도 바다로 나가는 길을 닫아버렸다. ‘한 조각의 널빤지도 바다에 들어가서는 안된다’는 해금령(海禁令)이 내려졌던 것이다.
그런데 서방의 침략세력은 바다로 왔다. 중국은 아편전쟁이라고 일컫는 제1차 중영전쟁(1839~1842)과 제2차 중영전쟁(1856~1860)에 이어 청일전쟁(1894∼1895)에서 잇달아 패배했다. 그 후 중국은 열강의 포함(砲艦) 앞에 무릎을 꿇고 제국주의자의 할거지가 되는 수모와 치욕을 겪어야 했다.
30년간 개혁-개방정책의 성공으로 세계2위의 경제대국으로 부상한 중국이 다시 대양제패의 꿈을 키우고 있다. 경제성장의 원동력인 석유 등 자원의 안정적 수송로 확보가 첫째 목적이다. 말라카 해협을 통한 인도양 통로가 그것이다. 미국 해군정보국은 중국이 10∼15년 이내에 전통적 작전해역인 대만해협과 남중국해를 벗어나 대양으로 뻗어나갈 것이라고 본다.
중국은 항공모함 건조를 추진하는 한편 이미 8척의 핵잠수함을 보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해군력 증강에 박차를 가하자 중국과 영토분쟁을 빚고 있는 주변국들이 바짝 긴장하고 있다.
중국은 서해를 안마당으로 여긴다. 중국 심장부인 베이징과 상하이로 통하는 바다이기 때문이다. 발해만에 기지를 둔 북해함대가 대양으로 진출하려면 서해를 지나야 한다. 중국해군이 대양으로 나가는 길목에는 미국과 일본이 감시하고 동향을 파악하고 있다.
산둥(山東)성 건너편 평택에는 한국해군이 자리잡고 있다. 한마디로 중국해군의 주력부대가 발해만에 갇힌 꼴이다. 이런 형국인데 미 항공모함 조지 워싱턴호가 한-미 군사훈련을 하려고 서해로 진입한다니 중국의 반발이 드셌던 것이다. 1894년 청일전쟁 당시 압록강 해전에서의 패배를 잊지 않고 있는 중국이다.

19세기의 그 중국이 아니다
분단 한반도의 남북대치가 최악의 상황이다. 그 주변을 막강한 군사력과 경제력을 배경으로 하는 대국들이 포진하고 있다. 경제대국 중국과 경제강국 일본이 넘어보고 있다. 그 뒤에는 초강대국 미국과 군사대국 러시아가 도사리고 있다.
한 세기 전의 한반도 정세보다 훨씬 미묘하고 복잡한 형세다. 천안함 침몰을 놓고 저울질을 잘못하다가는 예기치 못한 사태를 빚을 수 있다. 중국은 19세기의 그 중국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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