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기업과 협약, 새 일자리 500개 만들어
“자치 가능하도록 서울시 사업방식 바꿔야”
“1개 과가 들어왔고 1개 과는 곧 들어옵니다. 돈도 없는데 사무실 임대료까지 내자니 부담스러워요.”
이 성(사진) 서울 구로구청장은 취임 직후 집무실을 열평 남짓하게 줄였다. 살림살이라곤 책상과 열명 가량 둘러앉을 정도의 회의탁자, 책꽂이가 전부다. 부구청장과 국장 방까지 줄이고 나니 구청 밖에 세를 얻어 살던 3개 과 가운데 2개 과가 들어올 공간이 생겼다.
이 구청장은 “옥상에 컨테이너라도 설치해서 나머지 과를 들이고 싶다”며 웃었다.
◆구청장 조사권한 가진 옴부즈만 = “선거때 여러 개혁적 조치를 약속했는데 분야마다 길을 잡아가는 듯합니다.”
이달 안으로 구의회에 상정될 옴부즈만 제도는 투명행정을 위해 약속했던 부분이다. 주민들이 요구하는 내용이나 특정 분야 직원조사를 하는 서울시의 시민감사옴부즈만보다 한층 강력하게 운영할 계획이다. 이 구청장은 “구청장도 감사 대상에 포함되고 감사 결과에 따라 처벌을 요구할 권한도 있다”고 말했다.
3인 합의제로 운영하는 옴부즈만을 구청장이 독단적으로 임명하는 것이 아니라 구의회의 동의를 받아 임명한다는 점도 서울시와는 다르다. 구청 내부 감사를 담당할 감사관을 1월부터 개방형으로 임명할 경우 투명성은 한층 높아질 전망이다.
서울에서 처음으로 재건축 지구지정을 취소하는 ‘역사’가 만들어질 수도 있다. 구로동 개봉동 등과 함께 뉴타운식 광역개발 지역으로 묶인 경서지구 고척동이 대상. 구역해제 요구가 많아 주민 전체 설문조사를 진행 중이다. 반대하는 주민이 많으면 사업을 취소하겠다는 전제를 걸었다. 대신 찬성 의견이 압도적이라면 구청 차원에서는 보다 빠른 사업진행을 지원할 계획이다.
이 성 구청장은 “현재 구로 내에 재건축·재개발 구역·지구지정을 기다리는 지역이 상당수 있다”며 “모든 지역에서 주민들의 의사부터 확인할 것”이라고 말했다.
주민참여예산제를 도입하기 위한 조례도 준비 중이다. 11월까지 마무리된다. 그에 앞서 내년 예산편성을 위해 주민공청회를 실시한다. 주민들은 단순히 원하는 사업이 무엇인지 제안만 하고 마는 게 아니라 보다 적극적으로 예산편성에 참여할 수 있게 된다.
이 구청장은 “보육과 교육, 노인복지를 강화하기 위해 전담 과를 신설했다”며 “곧 4개년 종합계획을 내놓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일자리 만든 게 가장 기쁜 일 = “취임 이후 가장 기쁜 일이었습니다.”
호불호가 드러나지 않는 포커페이스로 이름난 그가 이 부분에서는 기쁨을 감추지 않았다. 주민들을 위해 민간분야에서 일자리 500개를 만든 일이다.
구는 얼마 전 지역기업인 대성과 협약을 맺었다. 내년 6월 신도림동에 들어서는 대성디큐브시티에서 일할 인력 1000명 가운데 절반을 구로구민으로 우선 채용하기로 한 것이다. 이 구청장은 “기대 이상이었고 고맙기 그지없다”며 “다른 기업들이 이 사례를 따라줬으면 좋겠다”고 기대했다.
“지역 기업인들이 구청장을 편하지 않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기업에 대한 적대감은 없습니다.”
다만 예전 관행처럼 ‘기업인에게 편한 공무원’ 즉 ‘돈 받는 공무원’은 없앨 생각이다. 이 구청장은 “기업인들이 돈 받지 않는 구청장에게 접근할 방법을 궁금해하는 것 같은데 불편함을 버렸으면 좋겠다”며 “기업은 구로의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대성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한번도 만난 적 없던 김영대 회장을 그가 찾아가 간절히 부탁했다. 그는 “구청장을 도와줄 생각이 있다면 주민을 채용해달라고 했다”며 “지역 기업들이 주민에게 좋은 직장을 주는 것으로 구청장을 도와주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얼굴 맞대고 주민에 귀 기울여 = 취임 후 넉달 가까이 하루 200~300명씩 주민들을 만났다. 주민과의 대화 시간을 별도로 마련할 필요도 없을 정도였다. 이 성 구청장은 “각 부서와 비서실에 구청장을 만나기 원하는 주민들을 차단하지 말라고 수차례 얘기한다”고 말했다.
얼굴을 맞대고 얘기를 들어주는 효과는 크다. 상가 재건축을 원하는 소유주와 타협점을 찾지 못해 몇달째 구청 현관에 진을 치고 있던 고척시장 상인들이 대표적이다. 구청장을 보면 항의와 욕설을 퍼부을 듯한데 오며가며 인사도 나눌 정도로 외려 친해졌다. 문제해결은 못해주지만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구청에 대한 감정이 풀린 것이다. 이 구청장은 “구청 앞에서 일상적으로 보이던 시위대도 몇 달째 보이지 않는다”며 “구청장을 직접 만나 민원을 제기하는 주민은 점차 줄어들 것”이라고 기대했다.
주민과 달리 직원들과의 소통은 만족할 만한 수준이 못된다고 그는 자인했다. 이 구청장은 “어려운 사람 아닌데 일정에 치이는 바람에 소통에 소홀했다”며 “동호회건 친목회건 불러주면 언제든 가겠다”고 말했다.
다만 일할 때는 구청장을 머릿속에서 지워야 한다. 그는 “구청장이 어떻게 생각할까, 구청장 의견이 뭘까 고민하고 거기에 맞추려고 하지 말고 자신감 있게 자기 정책을 추진하고 그 내용으로 구청장을 설득해달라”고 주문했다.
◆자치구 자율권 사라질 판 = “할 일은 많은데 돈이 없습니다. 빚을 낼 수도 없고….”
이 성 구청장은 “당장 내년 예산편성 자체가 어렵다”고 호소했다. 내년에는 구 수입이 200억원 이상 줄어들 판이다. 그는 “자치구가 창의적으로 사업을 할 수 있는 자율권이 사라질 판”이라며 “서울시가 자치구에 좀 더 많은 기회를 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시에서 여러 사업을 구상해 자치구에 분담금을 내고 참여하도록 하는 현재 방식을 바꾸자는 얘기다. 미국의 경우도 지방정부에 주는 교부금은 없지만 대신 주제를 정해 사업을 공모하고 정부에서 지원한다.
이 구청장은 “좋은 사업을 공모하는 방식으로 바꿔 자치구에서 자체적으로 쓸 수 있는 비용을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성 구청장은>
- 경북 문경 출생
- 덕수상고, 고대 법대 졸업
- 미국 텍사스주립대 행정학 석사
- 제24회 행정고시
- 청와대 행정비서실 행정관
- 서울시 시정개혁단장
- 서울시 경쟁력강화본부장
- 서울시 감사관
김진명 기자 jm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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