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닮지 말아야 할 부동산
김진동 (본지 논설고문)
1989년 일본은행 총재로 취임한 미에노 야스시(三重野康)는 취임하자마자 부동산 버블과의 ‘전쟁’에 나섰다. 85년부터 5년도 채 안되는 사이에 주가는 3배, 도시의 집값은 4배나 뛰었다. 85년 플라자합의로 엔고사태가 일어 수출이 어려워지자 일본 정부는 내수부양에 집중했다.
일본은행은 기준금리를 5%에서 2.5%로 내리고 돈을 풀었다. 그 결과 주가와 땅값이 폭등했다. 자산거품이 일어난 것이다. 집값이 너무 비싸 못 살겠다는 아우성이 점점 높아갔다.
그는 집값을 떨어뜨리지 않을 수 없는 절박한 상황에 내몰렸다. 집값안정이 일본을 살리는 길이라 믿었다. 89년부터 금리를 올리기 시작해 90년까지 금리를 2.5%에서 6%로 대폭 올렸다. 부동산대출 총량제를 실시하는 등 고강도 긴축정책을 폈다. 이에 주가가 떨어지고 집값도 하락세로 돌아섰다. 그는 ‘서민의 영웅’ 대접을 받았다.
정부정책이 자초한 장기불황
그러나 부동산 가격하락은 얼마 가지 않아서 재앙으로 변했다. 버블이 꺼지면서 기업과 금융회사들이 줄줄이 도산하고 실업자가 길거리에 넘쳐났다. 경기는 얼어붙기 시작했다. ‘잃어버린 10년’의 출발이었다.
일본 정부는 처음엔 자산가치 급락으로 인한 부실채권 증가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경기가 살아나면 부실채권 문제도 자연히 해결될 것으로 보고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았다. 재앙의 싹을 방치한 셈이다.
일본 정부는 90년대 중반에 들어서야 뒤늦게 수십조엔의 재정투입과 수조엔의 감세조치, 금리인하 등 경기부양책을 총동원했다. 금리를 제로 수준까지 내리고 상품권을 집집이 나눠줬지만 백약이 무효였다. 기업은 땅값이 더 떨어질 것으로 기대하고 투자를 미뤘고 가계는 물가가 더 떨어지기를 기대하며 소비를 자제했다. 내리막길로 접어든 부동산 경기는 영영 잠들어버렸다. 때를 놓친 정책은 시장에서 통하지 않았던 것이다.
‘잃어버린 10년’의 장기불황은 일본 정부의 실책이 자초했다는 평가가 정설로 굳어졌다. 80년대 저금리 정책이 자산버블을 불러들였고 버블 대응에 실기했기 때문에 장기불황으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미국도 2008년 집값 폭락과 거래실종으로 위기를 맞았고 글로벌 금융위기로까지 확산됐다. 미국의 양대 모기지 회사를 비롯하여 거대 투자은행이 무너졌다. 대형 자동차회사가 함몰직전이고 유통업체들이 결딴이 났다.
아직도 금융위기의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경기가 좀처럼 살아나지 않고 소비는 얼어붙었고 실업은 늘어나고 있다. 미국경제에 어두움이 짙다. 일본의 실패를 공부했다면서도 일본의 전철에 한 발 들여놓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
우리나라 부동산은 어떤가. 적어도 일본을 닮지 말아야 할 것 중의 하나가 부동산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일본을 닮아간다. 집값이 추락하고 시장의 기대심리도 일본의 과정과 비슷하다.
한때 자고 나면 ‘억’소리가 나올만큼 집값이 폭등했다. 빚을 내서 부동산을 사는 투기가 만연했다. 투기가 요원의 불길처럼 번지자 정부가 세제 금융규제를 동원하여 집값 잡기에 나섰다.
그 결과 집값은 내림세로 돌아섰다. 최근 ‘미동’기미를 보이긴 하지만 대세는 하락 쪽이다. 부동산 시장이 빈사 지경에 이르자 정부는 다시 집값을 올리기 위한 정책을 쏟아냈다. 그러나 약발이 먹히지 않는다. 시장의 낌새가 이상하다. 그것은 시장은 정부를 믿지 않고 정책이 따로 논다는 신호인 것이다.
연착륙 방안 조용히 시행해야
집값은 양날의 칼을 품고 있다. 집값이 폭등해도 걱정이고 폭락해도 걱정이다. 한 날엔 국가경제가 다치고 다른 한 날엔 서민생활이 위협을 받게 되기 때문이다. 급격한 버블붕괴는 부자나 투기꾼만 피해자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서민에 더 큰 피해를 줄 수 있다. 폭등도 안되지만 폭락의 방치도 서민대책이 아니다.
어디까지 올라야 버블이고 얼마나 더 내려야 안정인지 잘 가늠하여 주택시장을 연착륙시키는 방안을 조용히 시행해야 한다. 경제는 극단적인 처방이나 소란스러운 시행을 싫어한다. 정책이 요란하면 사태를 그르치기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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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동 (본지 논설고문)
1989년 일본은행 총재로 취임한 미에노 야스시(三重野康)는 취임하자마자 부동산 버블과의 ‘전쟁’에 나섰다. 85년부터 5년도 채 안되는 사이에 주가는 3배, 도시의 집값은 4배나 뛰었다. 85년 플라자합의로 엔고사태가 일어 수출이 어려워지자 일본 정부는 내수부양에 집중했다.
일본은행은 기준금리를 5%에서 2.5%로 내리고 돈을 풀었다. 그 결과 주가와 땅값이 폭등했다. 자산거품이 일어난 것이다. 집값이 너무 비싸 못 살겠다는 아우성이 점점 높아갔다.
그는 집값을 떨어뜨리지 않을 수 없는 절박한 상황에 내몰렸다. 집값안정이 일본을 살리는 길이라 믿었다. 89년부터 금리를 올리기 시작해 90년까지 금리를 2.5%에서 6%로 대폭 올렸다. 부동산대출 총량제를 실시하는 등 고강도 긴축정책을 폈다. 이에 주가가 떨어지고 집값도 하락세로 돌아섰다. 그는 ‘서민의 영웅’ 대접을 받았다.
정부정책이 자초한 장기불황
그러나 부동산 가격하락은 얼마 가지 않아서 재앙으로 변했다. 버블이 꺼지면서 기업과 금융회사들이 줄줄이 도산하고 실업자가 길거리에 넘쳐났다. 경기는 얼어붙기 시작했다. ‘잃어버린 10년’의 출발이었다.
일본 정부는 처음엔 자산가치 급락으로 인한 부실채권 증가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경기가 살아나면 부실채권 문제도 자연히 해결될 것으로 보고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았다. 재앙의 싹을 방치한 셈이다.
일본 정부는 90년대 중반에 들어서야 뒤늦게 수십조엔의 재정투입과 수조엔의 감세조치, 금리인하 등 경기부양책을 총동원했다. 금리를 제로 수준까지 내리고 상품권을 집집이 나눠줬지만 백약이 무효였다. 기업은 땅값이 더 떨어질 것으로 기대하고 투자를 미뤘고 가계는 물가가 더 떨어지기를 기대하며 소비를 자제했다. 내리막길로 접어든 부동산 경기는 영영 잠들어버렸다. 때를 놓친 정책은 시장에서 통하지 않았던 것이다.
‘잃어버린 10년’의 장기불황은 일본 정부의 실책이 자초했다는 평가가 정설로 굳어졌다. 80년대 저금리 정책이 자산버블을 불러들였고 버블 대응에 실기했기 때문에 장기불황으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미국도 2008년 집값 폭락과 거래실종으로 위기를 맞았고 글로벌 금융위기로까지 확산됐다. 미국의 양대 모기지 회사를 비롯하여 거대 투자은행이 무너졌다. 대형 자동차회사가 함몰직전이고 유통업체들이 결딴이 났다.
아직도 금융위기의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경기가 좀처럼 살아나지 않고 소비는 얼어붙었고 실업은 늘어나고 있다. 미국경제에 어두움이 짙다. 일본의 실패를 공부했다면서도 일본의 전철에 한 발 들여놓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
우리나라 부동산은 어떤가. 적어도 일본을 닮지 말아야 할 것 중의 하나가 부동산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일본을 닮아간다. 집값이 추락하고 시장의 기대심리도 일본의 과정과 비슷하다.
한때 자고 나면 ‘억’소리가 나올만큼 집값이 폭등했다. 빚을 내서 부동산을 사는 투기가 만연했다. 투기가 요원의 불길처럼 번지자 정부가 세제 금융규제를 동원하여 집값 잡기에 나섰다.
그 결과 집값은 내림세로 돌아섰다. 최근 ‘미동’기미를 보이긴 하지만 대세는 하락 쪽이다. 부동산 시장이 빈사 지경에 이르자 정부는 다시 집값을 올리기 위한 정책을 쏟아냈다. 그러나 약발이 먹히지 않는다. 시장의 낌새가 이상하다. 그것은 시장은 정부를 믿지 않고 정책이 따로 논다는 신호인 것이다.
연착륙 방안 조용히 시행해야
집값은 양날의 칼을 품고 있다. 집값이 폭등해도 걱정이고 폭락해도 걱정이다. 한 날엔 국가경제가 다치고 다른 한 날엔 서민생활이 위협을 받게 되기 때문이다. 급격한 버블붕괴는 부자나 투기꾼만 피해자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서민에 더 큰 피해를 줄 수 있다. 폭등도 안되지만 폭락의 방치도 서민대책이 아니다.
어디까지 올라야 버블이고 얼마나 더 내려야 안정인지 잘 가늠하여 주택시장을 연착륙시키는 방안을 조용히 시행해야 한다. 경제는 극단적인 처방이나 소란스러운 시행을 싫어한다. 정책이 요란하면 사태를 그르치기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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