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헌법을 말한다 ② 법통이 바로서야 나라가 산다
굴곡 있었지만 정통성 이어져 … 남북평화가 최우선 헌법가치
정치권의 '개헌공방'이 요란스럽다. '권력구조 개편'이 주된 관심사다. 그러나 '국민의, 국민의 의한, 국민을 위한' 논의인지 의문을 가진 국민들이 적지 않다. 현행 헌법은 1987년 10월 29일 개정됐고 이듬해 2월 25일 시행됐다. 전문을 포함한 헌법 조항 곳곳에는 87년 민주화운동의 성과가 녹아들어가 있다. 내일신문은 개헌 여부와 상관없이, 현행 헌법의 정신과 꼭 필요한 내용은 유지·발전시켜야 한다는 의미에서 '헌법기획'을 마련했다. 편집자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민국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 1987년에 개정된 헌법 전문의 첫 대목이다. 임시정부의 법통과 4·19민주이념을 계승한다는 내용이 핵심골자다.
법통(法統)이란 사전적 의미로는 법률적 역사적 정통성을 뜻한다. 대한민국이라는 민주공화국의 뿌리가 여기에 있다는 의미다.
◆정권 따라 달라진 법통? = "기미 삼일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여 세계에 선포한 위대한 독립정신을 계승하여 이제 민주독립국가를 재건함에 있어서…."
1948년 제정된 제헌헌법 전문 가운데 일부다. 눈길을 끄는 대목이 두 군데 있다. '삼일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여'라는 문구와 민주독립국가를 '재건함'에 있어서라는 대목이다. 1919년 삼일운동에 이어 4월에 임시정부가 수립됐다. 이를 인정하고 있다는 의미다.
또 재건함이라는 표현에서도 알 수 있듯 제헌헌법이 임시정부의 정통성을 인정하고 계승한다는 점은 명백하다. 다만 이승만 정부가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했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다.
상당수 진보학자들은 인물과 정책이라는 측면에서 모두 임시정부의 정통성을 이어가지 못했다고 평가한다. 친일인사가 광복이후 그대로 이승만 정부의 요직에 발탁됐고, 임시정부의 주요 정책이던 분단극복 역시 단독정부 수립으로 무산됐기 때문이다.
그렇다하더라도 제헌헌법 자체만 놓고 보면 임시정부의 정신을 인정하고 계승하려 했다는 점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런데 제헌헌법에 대한 몇차례 개정작업을 거치면서 변질되기 시작했다. 1960년 세 차례 개정할 때까지는 변화가 없었다. 하지만 5·16군사쿠데타를 거친 뒤 1962년 개정헌법 전문 내용 가운데 큰 변화가 생겼다. '4·19의거와 5·16혁명의 이념에 입각하여 새로운 민주공화국을 건설함에 있어서'라는 표현으로 5·16을 정당화하고, 의미를 덧칠했다. 물론 이때도 '3·1운동의숭고한 독립정신'이라는 표현은 있지만 무게중심은 이미 5·16으로 옮겨간 뒤다.
그러다가 다시 1980년 전두환 군사정권이 들어서면서 또 다시 변질이 됐다. 1980년 10월 27일 개정된 헌법전문에는 '3·1운동의 숭고한 독립정신을 계승하고 조국의 평화적 통일과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에 입각한 제5민주공화국출범에 즈음하여'라고 기술돼 있다. 군사독재 정권인 제5공화국이 3·1운동의 독립정신을 계승하고, 조국의 평화통일의 위업을 달성할 정통성을 지닌 정권으로 둔갑한 것이다.
◆건국절과 광복절 논란 = 이명박 정부 초기에도 법통논란이 불거졌다. 2008년 8·15를 앞두고, 이명박 정부가 대대적인 '건국절' 행사를 준비했기 때문이다. 광복절이 아니라 건국절로 명칭을 바꾸고, 건국대통령 이승만을 부각시키는 내용이었다. 뉴라이트 등 보수단체가 이를 주도했고, 일부 한나라당 의원은 광복절을 건국절로 바꾸자는 취지의 법안을 제출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는 광복회 회원들은 물론이고, 야당과 시민사회단체의 반발을 부르며 법통논란에 불을 지폈다. 건국절과 건국대통령 부각은 임시정부의 정통성을 부인하는 것이고, 대한민국 헌법정신을 훼손하는 것이라는 반발이 거셌다. 당시 민주당 정세균 대표는 논평을 통해 "정부여당의 행태는 대한민국 헌법과 임시정부의 법통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위헌행위이자 불굴의 투지로 일제에 맞서 싸운 항일독립투사의 명예를 더럽히는 반민족적 처사"라고 비판했다.
또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은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일제에 나라를 빼앗겼을 때 전국 13도 대표들이 모여 임시정부를 만들었고, 그때 정한 국호가 대한민국이며, 자유민주주의체제를 국체로 정했다"고 설명했다. 또 "임시정부 헌법 제1조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으로 한다'는 것으로 우리 헌법과 같은데 그런 임시정부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인가"라며 반문했다. 법통논란은 해를 넘긴 뒤 지난해 4월에 종지부를 찍었다.
4월13일 임시정부수립 90주년을 맞아 이명박 대통령은 기념사를 통해 "임시정부는 '대한민국' 국호를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민주공화제의 틀을 만들어 광복이후 건국의 토대를 마련해줬다"고 평가했다.
◆"헌법정신 훼손 말아야" = 현행 헌법전문은 1987년 민주화투쟁의 산물이다. 수많은 사람들의 투쟁을 통해 얻었고, 국민의 힘으로 만든 헌법전문이다. 정권의 논리가 아니라 민중의 논리가 헌법전문에 반영된 것이다.
그런데 법통논란은 끝났지만 불씨는 여전히 남아 있다. 특히 차기대선 주자군으로 꼽히는 김문수 경기도지사는 부쩍 이승만, 박정희 전대통령을 언급하는 것은 물론이고, 광화문에 이승만 동상을 세우자는 주장까지 하고 있다. 이는 운동권 출신인 김 지사가 다분히 자신의 이념적 정체성을 보수 쪽으로 옮겨놓기 위한 포석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김삼웅 전독립기념관장은 법통논란 당시 "4.19 민주정신이라는 건 이승만 독재를 거부한 4.19 혁명을 말한다"며 "이런 분을 새삼스럽게 부각시켜 건국 대통령 운운한다는 것은 임시정부의 법통을 훼손하고 모독하는 것이고, 현실적으로는 우리나라 헌법정신을 훼손하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5·16과 5공화국의 정통성을 인정받기 위해 헌법전문을 개정한 박정희 전두환 전대통령의 시도 역시 마찬가지다.
임지봉 교수(서강대 법학)는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하고'라는 말은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가 상해임시정부의 정당성과 정통성을 이어받은 후속 국가라는 의미"라면서 "3·1운동의 정신과 독립의 정신이 대한민국의 정체성이자, 이념이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신명식 민족문제연구소 기획이사는 "임시정부에서 김구를 중심으로 1942년 초부터 1945년 8월 해방이 될 때까지 군사분야, 의회분야, 정부분야 등 세 분야에서 명실상부한 좌우합작정부를 이뤄낸 것은 여전히 분단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는 남북한이 소중하게 지켜나가야 할 정치적 자산"이라며 "헌법에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이어받는다고 했으니 남북간 평화정책은 무엇 보다 앞서는 헌법적 가치인 셈이다"라고 말했다.
정재철 기자 jcju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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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곡 있었지만 정통성 이어져 … 남북평화가 최우선 헌법가치
정치권의 '개헌공방'이 요란스럽다. '권력구조 개편'이 주된 관심사다. 그러나 '국민의, 국민의 의한, 국민을 위한' 논의인지 의문을 가진 국민들이 적지 않다. 현행 헌법은 1987년 10월 29일 개정됐고 이듬해 2월 25일 시행됐다. 전문을 포함한 헌법 조항 곳곳에는 87년 민주화운동의 성과가 녹아들어가 있다. 내일신문은 개헌 여부와 상관없이, 현행 헌법의 정신과 꼭 필요한 내용은 유지·발전시켜야 한다는 의미에서 '헌법기획'을 마련했다. 편집자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민국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 1987년에 개정된 헌법 전문의 첫 대목이다. 임시정부의 법통과 4·19민주이념을 계승한다는 내용이 핵심골자다.
법통(法統)이란 사전적 의미로는 법률적 역사적 정통성을 뜻한다. 대한민국이라는 민주공화국의 뿌리가 여기에 있다는 의미다.
◆정권 따라 달라진 법통? = "기미 삼일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여 세계에 선포한 위대한 독립정신을 계승하여 이제 민주독립국가를 재건함에 있어서…."
1948년 제정된 제헌헌법 전문 가운데 일부다. 눈길을 끄는 대목이 두 군데 있다. '삼일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여'라는 문구와 민주독립국가를 '재건함'에 있어서라는 대목이다. 1919년 삼일운동에 이어 4월에 임시정부가 수립됐다. 이를 인정하고 있다는 의미다.
또 재건함이라는 표현에서도 알 수 있듯 제헌헌법이 임시정부의 정통성을 인정하고 계승한다는 점은 명백하다. 다만 이승만 정부가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했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다.
상당수 진보학자들은 인물과 정책이라는 측면에서 모두 임시정부의 정통성을 이어가지 못했다고 평가한다. 친일인사가 광복이후 그대로 이승만 정부의 요직에 발탁됐고, 임시정부의 주요 정책이던 분단극복 역시 단독정부 수립으로 무산됐기 때문이다.
그렇다하더라도 제헌헌법 자체만 놓고 보면 임시정부의 정신을 인정하고 계승하려 했다는 점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런데 제헌헌법에 대한 몇차례 개정작업을 거치면서 변질되기 시작했다. 1960년 세 차례 개정할 때까지는 변화가 없었다. 하지만 5·16군사쿠데타를 거친 뒤 1962년 개정헌법 전문 내용 가운데 큰 변화가 생겼다. '4·19의거와 5·16혁명의 이념에 입각하여 새로운 민주공화국을 건설함에 있어서'라는 표현으로 5·16을 정당화하고, 의미를 덧칠했다. 물론 이때도 '3·1운동의숭고한 독립정신'이라는 표현은 있지만 무게중심은 이미 5·16으로 옮겨간 뒤다.
그러다가 다시 1980년 전두환 군사정권이 들어서면서 또 다시 변질이 됐다. 1980년 10월 27일 개정된 헌법전문에는 '3·1운동의 숭고한 독립정신을 계승하고 조국의 평화적 통일과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에 입각한 제5민주공화국출범에 즈음하여'라고 기술돼 있다. 군사독재 정권인 제5공화국이 3·1운동의 독립정신을 계승하고, 조국의 평화통일의 위업을 달성할 정통성을 지닌 정권으로 둔갑한 것이다.
◆건국절과 광복절 논란 = 이명박 정부 초기에도 법통논란이 불거졌다. 2008년 8·15를 앞두고, 이명박 정부가 대대적인 '건국절' 행사를 준비했기 때문이다. 광복절이 아니라 건국절로 명칭을 바꾸고, 건국대통령 이승만을 부각시키는 내용이었다. 뉴라이트 등 보수단체가 이를 주도했고, 일부 한나라당 의원은 광복절을 건국절로 바꾸자는 취지의 법안을 제출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는 광복회 회원들은 물론이고, 야당과 시민사회단체의 반발을 부르며 법통논란에 불을 지폈다. 건국절과 건국대통령 부각은 임시정부의 정통성을 부인하는 것이고, 대한민국 헌법정신을 훼손하는 것이라는 반발이 거셌다. 당시 민주당 정세균 대표는 논평을 통해 "정부여당의 행태는 대한민국 헌법과 임시정부의 법통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위헌행위이자 불굴의 투지로 일제에 맞서 싸운 항일독립투사의 명예를 더럽히는 반민족적 처사"라고 비판했다.
또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은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일제에 나라를 빼앗겼을 때 전국 13도 대표들이 모여 임시정부를 만들었고, 그때 정한 국호가 대한민국이며, 자유민주주의체제를 국체로 정했다"고 설명했다. 또 "임시정부 헌법 제1조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으로 한다'는 것으로 우리 헌법과 같은데 그런 임시정부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인가"라며 반문했다. 법통논란은 해를 넘긴 뒤 지난해 4월에 종지부를 찍었다.
4월13일 임시정부수립 90주년을 맞아 이명박 대통령은 기념사를 통해 "임시정부는 '대한민국' 국호를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민주공화제의 틀을 만들어 광복이후 건국의 토대를 마련해줬다"고 평가했다.
◆"헌법정신 훼손 말아야" = 현행 헌법전문은 1987년 민주화투쟁의 산물이다. 수많은 사람들의 투쟁을 통해 얻었고, 국민의 힘으로 만든 헌법전문이다. 정권의 논리가 아니라 민중의 논리가 헌법전문에 반영된 것이다.
그런데 법통논란은 끝났지만 불씨는 여전히 남아 있다. 특히 차기대선 주자군으로 꼽히는 김문수 경기도지사는 부쩍 이승만, 박정희 전대통령을 언급하는 것은 물론이고, 광화문에 이승만 동상을 세우자는 주장까지 하고 있다. 이는 운동권 출신인 김 지사가 다분히 자신의 이념적 정체성을 보수 쪽으로 옮겨놓기 위한 포석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김삼웅 전독립기념관장은 법통논란 당시 "4.19 민주정신이라는 건 이승만 독재를 거부한 4.19 혁명을 말한다"며 "이런 분을 새삼스럽게 부각시켜 건국 대통령 운운한다는 것은 임시정부의 법통을 훼손하고 모독하는 것이고, 현실적으로는 우리나라 헌법정신을 훼손하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5·16과 5공화국의 정통성을 인정받기 위해 헌법전문을 개정한 박정희 전두환 전대통령의 시도 역시 마찬가지다.
임지봉 교수(서강대 법학)는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하고'라는 말은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가 상해임시정부의 정당성과 정통성을 이어받은 후속 국가라는 의미"라면서 "3·1운동의 정신과 독립의 정신이 대한민국의 정체성이자, 이념이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신명식 민족문제연구소 기획이사는 "임시정부에서 김구를 중심으로 1942년 초부터 1945년 8월 해방이 될 때까지 군사분야, 의회분야, 정부분야 등 세 분야에서 명실상부한 좌우합작정부를 이뤄낸 것은 여전히 분단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는 남북한이 소중하게 지켜나가야 할 정치적 자산"이라며 "헌법에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이어받는다고 했으니 남북간 평화정책은 무엇 보다 앞서는 헌법적 가치인 셈이다"라고 말했다.
정재철 기자 jcju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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