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 아낙 부업으로 명맥 이은 수공예술품 기능성 입을거리, 친환경 먹을거리로 다양화
"글쎄, 50년도 더 됐지? 모시 농사도 짓고 실도 뽑고 베도 짰지요. 나이 드니까 다른 건 못하고 군모시(실뽑기)만 해." "시집 와보니 다들 모시를 짜는 거야. 재미있어 보여서 나도 배웠지. 시어머니가 가르쳐줬어요."
2일 오전 11시 충남 서천군 한산면 한산모시 전수교육관. 일흔 안팎의 할머니 셋이 방 안에 앉아 실을 뽑아내고 있다. 가느다란 실 두가닥을 입 안에 넣었다 빼더니 무릎에 대고 비벼 잇는다. 작업이 이어지니 옥수수 수염같던 터럭들이 얇은 낚싯줄처럼 길어진다.
건너편 한산모시홍보관 지하에서는 예순 안팎의 여성 5명이 베틀에 앉아 손발을 놀리고 있다. 번갈아 발을 구르며 씨실 틀을 움직이고 양손으로 북(실패)을 주고받으며 날실을 끼워넣는다. 노랗고 하얀 실타래는 어느새 모시베로 바뀌어간다.
◆살림하면서 자투리시간 활용 = 여름을 가장 시원하게 날 수 있는 옷감으로 이름난 한산모시. 삼한시대부터 1500년 역사를 자랑하는 한산모시는 농촌 아낙들과 고락을 함께 하는 예술품이기도 하다.
"옛날에는 선을 볼 때 처녀가 베를 잘 짜나 그것부터 봤대요. 시집가면 바로 모시 짜는 법을 배워야죠."
임은순(59) 한산모시조합 대표는 "할머니 시할머니까지는 몰라도 어머니 시어머니 뒤따라 (베를 짠) 2대는 많다"고 입을 열었다. 경기도가 고향인 그 역시 결혼 후에야 베틀에 앉았다. 다만 시어머니가 서천이 아닌 인근 부여에 살기 때문에 기능전수자에게 기술을 배웠다.
"그때는 다들 살림하면서 자투리시간이 나면 모시를 짰어요. 시골에는 부업거리가 없잖아."
모시를 짜는 조합원 150명 모두가 임씨와 사정이 엇비슷한 장년층 이상 여성들이다. 부업 삼아 모시를 짰던 농촌지역 아낙네들이 신라시대부터 수출했다는 명품 한산모시를 지켜온 셈이다.
그래도 예전에는 일할 맛이 났다. 모시를 거래하던 새벽시장에 전국에서 상인과 소비자들이 모여들어 북적거렸다. 37년간 베를 짜온 조합원 조진순(60)씨는 "옛날에는 애들 학교 보내고 용돈 쥐어줄 정도는 됐다"고 돌이켰다.
"우리 집이 벼농사를 짓는데 모 심을 때, 추수할 때, 김장할 때 빼고는 베를 짰어요. 애들 학교 다닐 때는 밤이고 새벽이고 일했죠."
요즘은 용돈벌이는 되느냐 물었더니 그는 "전기세는 된다"며 "배운 도둑질 개 못 준다고 계속 하는 거지 요새 젊은 사람들은 안배우려 한다"고 말했다. 모시를 짜는 이들 가운데도 조씨와 임씨가 가장 젊은 축에 속한다. 조합에서 젊은 아낙들을 대상으로 기술교육을 시도했는데 대부분 중도 포기하고 1명밖에 못 건졌다.
◆생산 전 공정을 손으로 = "모시 한필을 짜는데 보통 1주일에서 열흘간 작업을 해요. 명품모시는 한달 이상 하구요."
그나마 실을 잣는 과정을 빼고 순수하게 베틀에 앉아서만 보내는 시간이다. 그렇게 만든 모시가 시장에서 50만~300만원에 팔린다. 임 대표는 "실 만들고 옷 짓는 일까지 모시 짜는 품삯을 일당으로 따졌더니 4700원이라고 하더라"며 웃었다.
밭에서부터 베틀까지 한산모시가 태어나는 전 공정은 사람 손을 거쳐야 한다. 모시 껍질을 벗기고 찢어 실 원료를 만드는 태모시부터 이를 가공해 실을 만드는 군모시, 천을 짜는 필모시까지 모두 수작업이다. 이로 껍질을 찢고 실에 침을 발라 결을 고르는 작업을 하기 때문에 모시밭에는 농약도 뿌리지 못하게 한다. 베짜기 역시 일부 기계화도 안될 정도다. 베틀에 전기장치를 달아 날실 끼워넣기를 시도했지만 성과는 없었다.
"터럭만 있어도 금방 알아. 베틀이 당기는 느낌이 들거든요."
조진순씨는 "베짜는 시간보다 손질하는 시간이 많다"고 말했다. 이물질이 있으면 실이 끊어지기 때문에 손으로 실을 골라가면서 베를 짜야 한다는 얘기다. 도중에 실이 끊어지면 비벼꼬아 이어붙인 뒤 콩풀을 발라서 다져준다.
"우리 몸이 6000개 뼈마디로 구성돼있는데 베를 짜면 그 6000마디가 다 아프대요."
임씨가 "양 어깨와 다리가 아프다"고 호소하는 조씨를 보며 농담 아닌 농담을 던진다.
◆20대 여성도 눈길 주기 시작 = "젊은 소비자들이 조금씩 생겼어요. 20대 아가씨가 (한산모시를) 찾는 게 우리 희망이죠."
2000년을 전후로 밀려든 값싼 중국산 모시에 시장의 상당부분을 내주었을 때는 모시농가에서 밭을 갈아엎을 정도였다. 모시의 본고장 한산면에서 경작지가 3㏊까지 줄었고 베틀을 만드는 목수마저 사라졌다.
겨우 명맥을 이어오다시피 한 한산모시 산업에 다시 불씨를 지핀 건 저임금과 고된 노동을 견디어온 여성들이다. 2005년 군에서 한산모시 지리적표시단체표장을 시도하면서 흩어져있던 여성 900명이 2006년 한산모시조합으로 뭉쳤다. 서천에서 생산되는 모시를 일괄 수매해 조합원들이 함께 일정한 품질의 제품을 생산해낸다. 모시 생산과정을 보고 체험하고 다양한 모시제품을 구입할 수 있도록 홍보관과 교육관 운영에 참여하고 있다.
여기에 군 지원을 더해 한산모시는 지금 '관리가 불편한 입을거리'라는 고정관념을 탈피하는 중이다. 스포츠의류 양말 등 현대모시를 활용한 기능성 입을거리 생산에 성공했고 모시 잎을 활용한 차와 젓갈 찐빵 등은 벌써 입소문을 타고 있다. 공예품 부직포 벽지도 실험에 성공했다.
임은순 대표는 "지역에서는 당장 성과가 나타나지 않는다고 해마다 사업예산을 들먹거린다"며 "다른 지역에는 없는 자원인 만큼 세계적인 명품으로 키우겠다는 의지를 갖고 꾸준히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나주하 서천군 한산모시세계화사업단 모시산업육성담당 역시 "몇년간만 집중적으로 투자한다면 날개를 펼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김진명 기자 jm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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