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60년 '조각 다시 맞추기'
정병준 지음 / 돌베개 / 3만8천원
중국의 다음 지도자로 떠오르고 있는 시진핑(習近平) 국가부주석의 말 한마디가 한반도의 분위기를 일거에 60년 전으로 되돌려 놓았다. 1950년에 발발한 6·25전쟁에 대한 언급 때문이다. 당시 중국의 한국전쟁 개입을 미국에 맞서 북한을 지원한 '항미원조'로 규정하면서 이를 '정의로운 전쟁'이라고 공식 언급한 것이다.
6·25는 남북한간의 내전이며, 미국이 제멋대로 파병을 결정함으로써 전면전으로 확대됐다는 논리에 입각한 발언이다. 아무리 중국군의 한국전 참전 6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에 참석해 발언한 내용이라지만 6.25를 바라보는 역사인식에 상당한 차이가 있음을 보여준다. 중국 외교부도 그의 주장이 중국 정부의 정론임을 거듭 확인해 주었으니 말이다.
그동안 6·25전쟁의 발발 과정과 성격에 대해서는 미국이나 남한 내부에서도 이념과 관점의 차이로 인해 여러 상이한 주장이 존재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 가운데 일부는 북한의 입장을 두둔하는 듯한 경우도 없지 않았다. 시진핑 부주석의 발언도 이러한 인식의 근저에서 비롯됐다고 여겨진다.
그런 점에서, 현재 목포대학교에 재직중인 정병준 교수의 '한국전쟁'은 특정 이론이나 가설에서 벗어나 철저히 자료와 근거를 바탕으로 씌어졌다는 점에서 새삼 일독을 권유할 만하다. 지난날 우리 학자들의 접근이 어려웠던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의 미공개 문서들을 토대로 집필됐다는 점에서 특히 그러하다.
'38선 충돌과 전쟁의 형성'이라는 부제가 붙여진 이 책에는 미국 정부가 1990년대 들어 공개하기 시작한 북한 노획문서의 다양한 내용이 담겨 있다. 여기서 '전쟁의 형성'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은 전쟁이 어느날 갑자기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군사적 충돌 끝에 전면전으로 확대되는 측면이 강하다는 인식을 깔고 있음은 물론이다.
이 책의 머리말에서 "지난 과거는 다가올 미래의 서막이다(What is past is prologue)"라는 경구가 인용된 것도 비슷한 의미일 것이다. NARA 현판에 씌어 있는 이 말처럼 축적된 과거의 결과로서 미래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역사적 안목은 선지자적 예언에 속하기보다 냉정한 분석과 관찰의 결과로 주어진다"고 저자는 강조하고 있다.
돌이켜보면, 6·25는 대한민국 역사에서 가장 처절하고 참혹한 대규모 전란이었다. 3년여에 걸친 이 전쟁으로 한국군과 유엔군 9만5천여명이 전사하고 30만명에 이르는 부상자를 냈다. 이와는 별도로 민간인도 37만여명이 사망하고 23만명이 부상을 당했다. 피난민 행렬은 240만명에 이르렀으며, 부모를 잃은 전쟁고아도 10만명이나 됐다. 이밖에 주택과 도로, 교량 등의 무차별 파괴로 인한 손실을 감안하면 그야말로 천문학적인 규모의 피해였다.
그러나 이 전쟁은 60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에게는 현재진행형으로 지속되고 있다. 전쟁이 정전협정에 의해 잠시 중단된 상태일 뿐이라는 단순한 형식적 의미만은 아니다. 실제적이면서도 구체적으로 일상생활에 밀접한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3월에 벌어졌던 천안함 사건이나 지난주 금강산에서 눈물의 재회를 이룬 남북 이산가족들이 구구한 사연이 모두 그 연장선상에 놓여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남북간에는 아직 6·25의 전개과정과 성격에 대해 여전히 엇갈린 주장이 오가고 있다. 국제 학계에서도 이른바 전통주의 및 수정주의 학자들 사이의 의견 대립이 지속되어 왔다. 1970년대 이전의 전통주의 학파에서는 북한이 전면적 기습공격을 감행했으며 그 배후에 스탈린의 팽창주의 대외정책이 자리잡고 있다는 학설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이런 주장을 반박하며 모습을 드러낸 수정주의 학자들은 오히려 제2차대전 이후 미국의 제국주의 정책에서 전쟁이 비롯됐다고 맞섰던 것이다.
이에 대해 저자는 김일성과 박헌영이 6·25가 터지기 직전인 1950년 4월과 5월 모스크바와 베이징을 차례로 방문해 스탈린, 마오쩌둥과 가진 회담이 전쟁 개시의 분수령이 됐다고 증언한다. 이미 스탈린은 북한군 10개 사단 증강계획과 그에 필요한 차관 제공을 허락함으로써 사실상 전쟁을 승인한 상태였으며, 마오쩌둥도 "한반도의 작은 영토를 위해 미국이 제3차대전을 일으키지는 않을 것"이라며 전쟁을 통해 중국대륙에 이어 한반도를 통일시킬 수 있을 것이라며 장담하고 있었다.
미군과 남한군도 북한군 동향에 대해 정보를 수집하며 면밀한 대응책을 마련하고 있었으나 미국 국방부와 정보당국간 정보 혼선과 우리 국방지휘체계의 난맥상으로 막상 북한의 전면공격 개시를 사전에 알아채지 못했으며, 따라서 개전 초기에 밀릴 수밖에 없었다. 즉, 6.25는 북한으로서는 오랫동안 준비해온 전면공격의 실현이었던 반면 남한에겐 예상치 못했던 불의의 피습이었다는 것이 저자의 결론이다.
한편 저자는 1981년 출간 이래 이 분야에서 바이블처럼 여겨지던 미국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전쟁의 기원'에 대해서도 비평을 덧붙이고 있다. 탁월하고 기념비적인 업적인 것은 분명하지만, 미국과 남한에 대해서는 철저히 검토했으나 북한·소련·중국에 대해서는 서술 및 평가의 부족으로 전체적으로 균형을 잃었다는 주장이다. 특히 핵심 쟁점에 대해 미국·대만·남한의 음모를 거론하는 것은 결정적인 잘못이라고 저자는 지적한다.
미국의 역할과 입장에 대해 일부 가설 및 추정 모자이크가 동원됐으면서도 소련의 입장은 거의 언급되지 않았으며 북한측 설명도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다. 물론 커밍스가 일부러 그렇게 의도했다기보다 접근 가능한 자료의 제한에서 비롯된 결과일 것이다.
커밍스 교수의 논리 또한 NARA에 보관된 미국의 외교·국방 문서에 근거하고 있다. 그가 하루 2달러짜리 싸구려 모텔에 머물며 종일 NARA에서 살다시피 하면서 자료를 뒤적거렸던 것이다. 그러나 옛소련 문서만 해도 그가 집필을 시작했을 무렵에는 공개되기 전이었다. 그 차이가 이 책의 저자인 정병준이 커밍스의 견해를 비평할 수 있는 우월함의 근거다.
지금은 6·25전쟁이 북한의 남침으로 시작됐다는 사실을 국제사회가 보편적 상식으로 인정하는 추세다. 당시 전쟁을 승인한 러시아에서도 그러한 주장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런데도 세계의 핵심 리더로 떠오른 중국의 최고권력 지도부에서 여전히 곰팡내나는 얘기가 나오는 것을 보면 도대체 이해하기가 어렵다. 꼭 중국측의 주장이 아니라도 6·25 개전 60년을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한번쯤 다시 생각해볼 만한 과제다.
허영섭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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