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란 영혼을 살찌우고 맑게 합니다. 지역문화 프로그램은 시청률이 저조하여 편성이 힘들어요. 질 높은 문화를 위해 많은 관심이 필요합니다.”
김미리PD(대전MBC TV 제작부 차장)는 1984년에 입사하여 FM음악회, 공연실황, 각종 음악 행사 연출, 문화예술계 인사 조명 프로그램 등을 맡았다. 동요할아버지의 얘기를 담은 “ 할아버지와 손풍금” 으로 한국방송대상지역문화부문상을 수상했다.
김PD는 지역문화의 비중이 낮 은 것이 안타까워 방송인으로서 책임감을 가지고 대전문화사랑회를 결성했다. 이 모임은 대전문화를 발전시키고 향상시켜 지역문화의 저변을 확대시키기 위해 교수, 예술인, 방송인 등 각계의 전문가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열린 음악회, 청소년 문예캠프, 열린 예술 축제 등의 지지기반이기도하다.
지난 22일 저녁 대전MBC에서 방송된 그리운 강남은 지역문화의 해에 지역음악인을 발굴하여 바로 세우고, 남북분단으로 삭제되어진 역사의 왜곡된 부분을 바로 잡고자 기획했다.
안기영(1900-1980)은 근대음악의 개척자로 이화여전 교수를 역임한 성악가이자 작곡가이다. 1929년 첫 가곡집을 발표했는데 현제명(1931년)이나 홍난파(1933년)보다 빠른 것이었다.
그는 문화가 세계로 가려면 가장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라는 걸 일찍부터 깨닫고 우리 음악을 알리는 도구로 서양의 음계를 사용했다. 김PD는 “ 그리운 강남은 한국인이면 누구나 친숙한 아리랑의 선율을 응용하여 일제시대의 암울한 상황 아래서도 희망을 주려는 의도를 가진 곡으로 남과 북에서 애창되었기 때문에 통일의 노래로도 손색이 없다.”라고 말한다.
향토가극은 조선적 가극으로써 핍박받는 시대에 민족적 카타르시스와 한글을 잊지 않게 하려는 민족적 의도가 들어 있었다.
조선민요를 널리 알리고 후세대에 남기기 위해 단선율로 된 전통 민요에 화성을 입혀 악보화하고 노래는 불러져야 한다는 생각으로 이화여대에 합창단을 만들어 합창음악의 효시를 열었다.
성악가로서도 30여장의 음반을 냈는데 그 당시로는 대단한 것이었다.
이 방송이 나간 후 송모씨는 “전편에 흐르는 안기영님의 자취와 숨결, 음악이 감동적이었습니다.” 라며 전국 방송으로 재방송되기를 희망했다. 이모씨는 “ 구성이 지루하지 않고 재현처리 등의 영상미가 돋보였다.” 며 지역문화의 발전을 위해 이런 프로그램의 활성화를 부탁했다.
민경찬 교수(한국예술종합학교)는 “노래는 불리워질 때 생명력을 가진다. 많이 불리워지는 것이 진정한 해금이다.”라며 해금곡에 관한 관심을 당부했다.
김PD는 “부장님과 선배들, 같이 일하시는 동반자분들이 한마음으로 일했어요. 어머니의 도움도 컸구요.” 라며 감사의 말을 잊지 않았다.
/대전 김현주 리포터 ldana@netian.com
김미리PD(대전MBC TV 제작부 차장)는 1984년에 입사하여 FM음악회, 공연실황, 각종 음악 행사 연출, 문화예술계 인사 조명 프로그램 등을 맡았다. 동요할아버지의 얘기를 담은 “ 할아버지와 손풍금” 으로 한국방송대상지역문화부문상을 수상했다.
김PD는 지역문화의 비중이 낮 은 것이 안타까워 방송인으로서 책임감을 가지고 대전문화사랑회를 결성했다. 이 모임은 대전문화를 발전시키고 향상시켜 지역문화의 저변을 확대시키기 위해 교수, 예술인, 방송인 등 각계의 전문가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열린 음악회, 청소년 문예캠프, 열린 예술 축제 등의 지지기반이기도하다.
지난 22일 저녁 대전MBC에서 방송된 그리운 강남은 지역문화의 해에 지역음악인을 발굴하여 바로 세우고, 남북분단으로 삭제되어진 역사의 왜곡된 부분을 바로 잡고자 기획했다.
안기영(1900-1980)은 근대음악의 개척자로 이화여전 교수를 역임한 성악가이자 작곡가이다. 1929년 첫 가곡집을 발표했는데 현제명(1931년)이나 홍난파(1933년)보다 빠른 것이었다.
그는 문화가 세계로 가려면 가장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라는 걸 일찍부터 깨닫고 우리 음악을 알리는 도구로 서양의 음계를 사용했다. 김PD는 “ 그리운 강남은 한국인이면 누구나 친숙한 아리랑의 선율을 응용하여 일제시대의 암울한 상황 아래서도 희망을 주려는 의도를 가진 곡으로 남과 북에서 애창되었기 때문에 통일의 노래로도 손색이 없다.”라고 말한다.
향토가극은 조선적 가극으로써 핍박받는 시대에 민족적 카타르시스와 한글을 잊지 않게 하려는 민족적 의도가 들어 있었다.
조선민요를 널리 알리고 후세대에 남기기 위해 단선율로 된 전통 민요에 화성을 입혀 악보화하고 노래는 불러져야 한다는 생각으로 이화여대에 합창단을 만들어 합창음악의 효시를 열었다.
성악가로서도 30여장의 음반을 냈는데 그 당시로는 대단한 것이었다.
이 방송이 나간 후 송모씨는 “전편에 흐르는 안기영님의 자취와 숨결, 음악이 감동적이었습니다.” 라며 전국 방송으로 재방송되기를 희망했다. 이모씨는 “ 구성이 지루하지 않고 재현처리 등의 영상미가 돋보였다.” 며 지역문화의 발전을 위해 이런 프로그램의 활성화를 부탁했다.
민경찬 교수(한국예술종합학교)는 “노래는 불리워질 때 생명력을 가진다. 많이 불리워지는 것이 진정한 해금이다.”라며 해금곡에 관한 관심을 당부했다.
김PD는 “부장님과 선배들, 같이 일하시는 동반자분들이 한마음으로 일했어요. 어머니의 도움도 컸구요.” 라며 감사의 말을 잊지 않았다.
/대전 김현주 리포터 ldana@net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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