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 투병에 모은 돈 다 썼지만 가족과 다시 함께해 행복"
"노숙인 자활 잡지 '빅이슈 코리아'입니다"
역삼역 1번 출구 앞에 가면 누구나 빅이슈 판매인 김영호(가명 55)씨의 외침을 들을 수 있다. 지난 7월부터 한결같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김씨.
그는 마이크도 확성기도 없이 "이 일대가 시끄러울 정도로" 소리 높여 잡지를 홍보한다. 빅이슈 판매가 자립을 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는 그는 성대를 다쳐 병원에 다닐 정도로 열심이다.
빅이슈는 노숙인에게 판매를 맡겨 돈을 벌 수 있게 돕는 잡지다. 본사에서 정가 3000원짜리 잡지를 1400원에 사 온 노숙인은 지하철역 입구 등 유동인구가 많은 거리에서 판매를 하고 1600원을 남긴다. 처음 10권은 본사에서 무료로 지원한다.
지금까지 김씨가 빅이슈 판매로 모은 돈은 320여만원. 오전 7시부터 저녁 9시까지 거리에서 더위에 고생하고 추위에 떨며 꼬박꼬박 모은 돈이다. 하루에 많을 땐 50권까지도 팔았다. 보통은 20~40권이 팔린다.
요즘엔 너무 추워 거리에 서 있기도 힘들다.
김씨는 신발에 깔창을 2개씩 넣고 지원받은 패딩점퍼를 단단히 입는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추위에 매출이 줄어든다는 사실. 김씨는 "요즘엔 추워서 그런지 잡지를 사러 발길을 멈추는 사람들이 많이 줄었다"면서 "돈을 아끼기 위해 아침에 미리 사 놓은 김밥에 편의점 컵라면을 곁들여 끼니를 때운다"고 말했다.
체력이 좋지 않아 잘 먹어야 하지만 벌이를 생각하면 그럴 수가 없다. 그도 그럴 것이 김씨가 지금까지 모아둔 돈은 최근 아내의 병원비로 거의 다 썼기 때문이다.
지난 2002년 사업에 실패한 후 노숙을 한다는 것을 알리지 않은 채 연락만 주고받던 아내와 같이 산지는 2달이 채 안 됐다. 그가 빅이슈를 판매한다는 얘기를 들은 딸이 연락을 한 게 계기가 됐다.
부부는 하나밖에 없는 딸이 얻은 25만원짜리 월셋방에 염치없이 몸을 눕혔다. 집이 좁아 딸은 친구네에 얹혀산다. 9년여 동안 파출부, 건설 일용직을 전전한 아내는 그새 온 몸이 안 아픈 데가 없고 우울증까지 얻었다. 앞으로도 얼마나 더 돈이 필요할지 몰라 정부지원 임대주택을 얻으려던 계획도 포기했다.
김씨는 "가진 걸 모두 잃은 나를 떠날 수도 있었는데 그렇게 하지 않은 가족들이 말할 수 없이 고맙다"면서 "가족이 있어서 돈이 들고 힘든 것 같지만 더 열심히 하게 되고 행복을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월세는 딸 손을 빌리지 않고 내가 내고 싶은데 잘 될지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지금은 가족을 되찾은 김씨지만 9년 넘게 고시원을 전전하고 노숙을 하던 김씨가 빅이슈를 팔겠다고 결심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거리에서 노숙인 신분으로 잡지를 판다는 것은 자신의 좋지 않은 형편을 드러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김씨는 "노숙을 한다는 것은 가족에게도 숨기고 있었던 사실이라 또 다시 상처가 될까봐 상담을 받고 보름이 넘게 고민했다"면서 "노숙인은 안정적인 일자리를 찾기 힘들다는 경험을 했기 때문에 '여기서 무너지면 마지막'이라며 각오를 단단히 하고 시작했다"고 말했다.
김씨는 "처음엔 텃세를 부리기도 했지만 열심히 하니까 역삼역에서 일하는 김밥 행상인 편의점 사장 역무원 등이 많이 도와준다"면서 "눈, 비가 와 잡지를 역 안으로 옮기거나 판매가 잘 안 될 때 주위 사람들이 큰 힘이 된다"고 덧붙였다.
현재 김씨의 희망은 가족과 함께 지낼 수 있는 임대주택을 갖는 것. 어느 정도 돈을 모아 장사를 하면서 가족들과 함께 지낼 수만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다.
김씨는 "여기저기 전전하며 노숙 생활을 하다가 이제야 '떳떳하게 뭔가 하는구나'라는 평가를 받게 됐다"면서 "여기서 무너지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해 자활하는 성공 모델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송현경 기자 funnyso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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