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 사람들⑤> 박 철 부총재

소탈한 성격의 ‘시골 큰형님’

지역내일 2001-11-04 (수정 2001-11-06 오후 2:49:08)
‘한국은행의 중류저석(中流底石)같은 존재.’
한 금융계 인사는 박 철 부총재를 이렇게 표현했다. 30여년이 넘는 기간 동안 한국은행을 지키며 굵직한 변화의 흐름을 주도해왔기 때문이라는 설명이었다.
박 부총재는 68년 입행 이후 한국은행의 큰 변화를 이끌어왔다. 통화관리에 시장원리를 도입한 것도, 외환위기를 맞았을 때 통화관리 실무책임을 맡았던 것도 박 부총재였다. 또 국제통화기금(IMF)과의 협상을 주도했으며 한국은행 독립성 확보에 앞장서기도 했다.

외환위기 당시 ‘야전사령관’
한국은행에서 박 부총재의 역할은 ‘야전사령관’이란 말로 요약된다.
조사부 부부장, 비서실장, 자금부장 등 요직만을 거치다 보니 맡게 된 임무였지만 이론과 실무에 있어 그만한 실력을 갖추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박 부총재의 능력이 밖으로 알려진 것은 외환위기를 겪으면서부터다. 국제통화기금(IMF) 체제로 넘어가면서 국내외 금융시장이 불안정했을 때 박 부총재는 한국은행 자금부장으로 있었다. 최전방에서 통화와 금리를 관리하는 실무책임을 맡고 있었던 셈이다. 당시 그는 석달 동안 집에도 못 들어가고 사무실 야전침대에서 지냈다. 종금사 부실로 콜시장이 마비돼 지급결제시스템이 붕괴되는 상황에서 금융기관과 기업의 연쇄도산을 막기 위해 하루하루 사투를 벌여야 했다.
IMF와의 통화신용정책 협상 때도 박 부총재의 역할은 두드러졌다. 자금지원을 대가로 사실상 주도권을 잡고 있던 IMF를 상대로 박 부총재는 우리나라 입장을(요구를) 대부분 관철시켜 주위를 놀라게 했다.
특히 완벽한 논리와 근거보다는 상대방으로 하여금 설득을 당하면서도 기분이 전혀 상하지 않게 하는 특유의 성실한 자세야말로 박 부총재가 남들을 설득시키는 비법이다.

‘영동개발사건’으로 곤욕 치르기도
외부에는 뒤늦게 알려지기 시작했지만 사실 한국은행 내부에서는 오래 전부터 박 부총재의 능력을 인정해왔다. 70년대 초반 조사역 시절부터 ‘박 철이 검토한 문서’라면 상사들이 읽어보지 않고도 결재했을 정도다. 또 행원 시절에 재무부에 파견돼 장관 연설원고를 작성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한은법 개정 때나 재경부와의 정책업무 협의를 할 때에도 소신을 굽히지 않아 ‘싸움닭’이라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실력만은 항상 인정받아왔다.
80년대 초반 처음으로 통화정책에 시장원리를 도입할 때에도 박 부총재는 통화관리과 금융기획과장으로 실무역할을 맡았다.
정부에서 각 개별금융기관의 대출한도를 정해주는 정책금융방식에서 간접규제로 전환하는 이른바 금융자유화를 추진하는 일이었다. 금융기관들이 중앙규제에 익숙해 있어 쉽지 않은 일이었다. 과도기에 나타나는 금융사고도 많았다.
장영자 사건보다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영동개발사건’ 역시 과도기에나 있을법한 금융사기사건이었다. 80년대 초반 도입한 상업어음지급보증제도를 교묘히 이용했던 것이다. 은행들이 해왔던 상업어음할인을 금지하면서 제2금융권의 할인을 은행이 지급보증할 수 있도록 한 것이 상업어음지급보증제도였다. 자금시장의 혼란을 막기 위한 조치였지만 금융사기에 이용당하자 실무책임자였던 박 부총재는 검찰 조사를 받는 등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통화금융정책에 시장원리가 본격적으로 도입된 것은 90년대 중반 이후부터나 가능했다. 이 때도 박 부총재가 최전방에 있었다. 90년대 자금부장으로 임명되자 규제위주 통화정책의 폐해를 경험했던 그는 과감한 금융자유화 추진계획을 마련했다.
금융기관 여수신이율을 자유화하고 은행별 대출한도를 폐지하는 한편 통화안정증권의 강제배정방식을 경쟁입찰방식으로 전환한 것이 모두 그의 작품이다.

한국은행 독립성 확보 ‘보람’
97년 한은법 파동 때도 그는 한국은행 독립성 확보를 위해 앞장섰다. 당시 감독권과 통화정책을 마치 배타적인 역할로 보는 여론에 밀려 한은이 감독기능을 상실하게 된 점은 여전히 아쉬움으로 남았다.
그러나 외환위기 이후 금융구조조정 과정에서 각계의 국채인수 압력에 굴하지 않고 국고채와 예보채를 시장발행하도록 이끌어 낸 일은 박 부총재에게 아주 보람있는 기억이다. 이같은 노력으로 98년 4월 한은법 개정 이후 한국은행의 위상이 높아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압력이 심해 어려움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한국은행의 독립적인 역할에 대해 정부나 시장에서 인정해 주고 있습니다.”
이제 독립적인 통화정책의 기틀도 마련한 만큼 “한국은행도 훈수를 두어야 한다”고 박 부총재는 강조했다. 경제 전반에 걸쳐 한국은행이 제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것. 이를 위해 거시정책 뿐 아니라 미시적인 분야까지 조사연구 영역을 넓히는 데 역점을 두고 있다.
박 부총재에게는 두 개의 별명이 있다.
대외적으로 그는 ‘독일병정’이라 불린다. 이헌재 전 금감위원장이 관계장관 회의석상에서 붙여준 호칭이다. 그만큼 소신과 추진력이 강한 사람으로 정평이 나 있다.

추진력 강해 ‘독일병정’ 소리 듣기도
반면 한국은행 안에서 박 부총재는 ‘시골 큰형님’으로 통한다. 형님처럼 한국은행의 대소사를 잘 챙기는 데다 소탈한 성격으로 아랫사람들을 편하게 해주기 때문에 붙여진 별명이다.
이같은 성격 때문에 한국은행에서는 “결재받으러 갈 때는 부담없고, 나올 때는 부끄럽게 만드는 상사”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업무뿐만 아니라 개인적인 일까지 상의할 수 있는 형님같으면서도 미처 생각지 못한 아이디어를 자주 내놓기 때문이다.
일찌감치 미래의 총재감으로 거론되고 있을만큼 박 부총재에 대한 한국은행 직원들의 애정은 대단하다. 그가 떠나면 한은의 위상이 약화될 것을 우려하는 직원들이 있을 정도다.
이런 반면 사적인 일이나 가정을 챙기는 데는 낙제점이라는 게 가까운 지인들의 전언이다. 조사역 시절 조그마한 서민아파트를 마련하고 은행대출 만기를 연장하기 위해 사정하던 모습을 기억하는 직원들도 많다.
요직만 거치다보니 지점장 경험이 없어 전반적인 관리능력을 검증받지 못했다는 것이 단점이라면 단점. 그러나 부총재 3년을 거치며 우려와는 달리 안팎으로 잘 해내고 있다는 것이 주위의 평가다.

※ 약력
46년 생
68년 서울대 경제학과졸
68년 한국은행 입행
78년 뉴욕사무소 조사역
80∼85년 자금부 통화관리과·금융기획과장
85년 조사제1부 부부장
92년 비서실장
95년 자금부장
98년 부총재보
2000년 부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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