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사람들-박 철 부총재

한국은행의 ‘시골 큰 형님’

지역내일 2001-11-04
‘한국은행의 중류저석(中流底石)같은 존재’.
한 금융계 인사는 박 철 부총재에 대해 이같이 표현했다. 30여년이 넘는 동안 한국은행을 지키며 굵직한 변화의 흐름을 주도해왔기 때문이라는 설명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박 부총재는 68년 입행 이후 한국은행의 큰 변화를 이끄는 데 앞장서왔다.
통화관리에 시장원리를 도입한 것도, 외환위기를 맞았을 때 통화관리 실무책임을 맡았던 것도 박 부총재였다. 또 국제통화기금(IMF)와의 협상을 주도했으며 한국은행 독립성 확보에 앞장서기도 했다.

◇외환위기 당시 ‘야전사령관’ 맡아=특히 박 부총재가 맡았던 역할은 ‘야전사령관’이었다. 조사부 부부장, 비서실장, 자금부장 등 요직만을 거치다 보니 맡게된 임무였지만 그만큼 이론과 실무에 있어 실력을 갖추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특히 박 부총재의 능력이 밖으로 알려진 것은 외환위기를 겪으면서부터였다.
국제통화기금(IMF) 체제로 넘어가면서 국내외 금융시장이 불안정했을 때 박 부총재는 한국은행 자금부장으로 있었다. 최전방에서 통화와 금리를 관리하는 실무책임을 맡고 있었던 셈이다.
그 때문에 석달간 집에도 들어가지 못한 채 야전침대를 사무실에 가져다 놓고 지내야 했다. 종금사 부실로 콜시장이 마비돼 지급결제시스템이 붕괴되는 상황에서 금융기관과 기업의 연쇄도산을 막기 위해 하루하루 사투를 벌여야 했기 때문이다.
IMF와의 통화신용정책 협상에서도 박 부총재의 역할이 두드러졌다. 자금지원을 대가로 사실상 주도권을 잡고 있던 IMF를 상대로 박 부총재는 우리나라 입장을 대부분 관철시켜 주위를 놀라게 했다.
그와 대화를 나눠본 사람들은 박 부총재의 협상력이 완벽한 논리와 근거 때문만은 아니라고 말한다. 그보다는 상대방으로 하여금 설득을 당하면서도 기분이 전혀 상하지 않게 하는 특유의 성실한 자세야말로 박 부총재가 남들을 설득시키는 비법이라는 것이다.
외부에는 뒤늦게 알려지기 시작했지만 사실 한국은행 내부에서는 오래전부터 박 부총재의 능력을 인정해왔다. 70년대 초반 조사역 시절부터 ‘박 철이 검토한 문서’라면 상사들이 읽어보지 않고도 결재했을 정도다. 또 행원 시절에 재무부에 파견돼 장관 연설원고를 작성했을 만큼 재무부에서도 일찍부터 실력가로 인정받아왔다.
한은법 개정 때나 재경부와의 정책업무 협의를 할 때에도 절대 소신을 굽히지 않아 ‘싸움닭’이라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실력만은 항상 평가를 받아왔다.

◇‘영동개발사건’으로 곤욕치르기도=80년대 초반 처음으로 통화정책을 직접규제에서 간접규제방식으로 전환할 때에도 박 부총재는 통화관리과 금융기획과장으로 실무역할을 맡았다. 금융기관들이 중앙규제에 익숙해 있어 쉽지 않은 일이었다. ‘장영자 사건’등 과도기에 나타나는 대형사고도 많았다.
소위 ‘영동개발사건’도 80년대 초반 금융자율화 추진과정에서 도입한 상업어음지급보증제도를 이용한 사건이었다. 은행들의 상업어음할인을 금지하면서 제2금융권의 할인을 은행이 지급보증할 수 있도록 한 것이 상업어음지급보증제도였다. 자금시장의 혼란을 막기 위한 조치였지만 금융사기에 이용당하자 실무책임자였던 박 부총재는 검찰 조사를 받는 등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95년 자금부장에 임명되면서 과감한 금융자유화를 추진했던 것도 80년대 초반 각종 금융사건들을 수습하면서 규제의 폐해를 직접 체험했기 때문이었다.
금융기관 여수신이율을 자유화하고 은행별 대출한도를 폐지하는 한편 통화안정증권의 강제배정방식을 경쟁입찰방식으로 전환한 것이 모두 그의 작품이다. 통화량 중심의 통화운용체제를 시장친화적인 금리중심체제로 바꾸는 기틀을 만든 셈이다.
“중앙은행의 정책에만 시장원리가 도입돼서는 불완전합니다. 시중 금융기관들도 시장원리에 맞춰 움직일 수 있도록 불필요한 규제를 줄여나가야 합니다.”
중앙은행이 본연의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서라도 금융기관이 시장원리에 따라 작동해야한다는 얘기다.

◇한국은행 독립성 확보 보람=97년 한은법 파동때에도 박 부총재는 한국은행 독립성 확보를 위해 앞장섰다. 당시 감독권과 통화정책을 마치 배타적인 역할로 보는 여론에 밀려 한은이 감독기능을 상실하게 된 점은 여전히 아쉬움으로 가지고 있다.
반면 외환위기 이후 금융구조조정과정에서 각계의 국채인수 압력에 굴하지 않고 국고채와 예보채를 시장발행토록 이끌어 낸 일이 박 부총재에게는 보람있는 일이다. 이같은 노력으로 98년 4월 한은법 개정이후 한국은행의 위상이 높아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압력이 심해 어려움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한국은행의 독립적인 역할에 대해 정부나 금융시장에서도 인정해 주고 있습니다.”
이제 독립적인 통화정책의 기틀도 마련한 만큼 “한국은행도 훈수를 두어야 한다”고 박 부총재는 강조했다. 경제 전반에 걸쳐 한국은행이 제 목소리를 내야한다는 것. 이를 위해 거시정책 뿐 아니라 미시적인 분야까지 조사연구 영역을 넓히는 데 역점을 두고 있다.

◇한국은행이 아끼는 사람=박 부총재에게는 두 개의 별명이 있다. 대외적으로는 ‘독일병정’이라 불린다. 이헌재 전 금감위원장이 관계장관 회의석상에서 붙여준 호칭이다. 그만큼 소신과 추진력이 강한 사람으로 정평이 나 있다.
반면 한국은행에서 박 부총재는 ‘시골 큰 형님’으로 통한다. 형님처럼 한국은행의 대소사를 잘 챙기는 데다 소탈한 성격으로 아랫사람들을 편하게 해주기 때문에 붙여진 별명이다.
요즘에도 직원들과의 술자리를 즐겨찾고 있다.
이같은 성격 때문에 한국은행에서는 ‘결재받으러 갈 때는 부담없고, 나올때는 부끄럽게 만드는 상사’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업무뿐만 아니라 개인적인 일까지 상의할 수 있는 형님같으면서도 미처 생각지 못한 아이디어를 자주 내놓는다는 것이다.
밖으로는 한은의 위상을 지키는‘독일병정’, 안으로는 ‘시골 큰 형님’ 역할을 맡고 있어 한은 내부에서는 일찌감치 미래의 한은 총재감으로 거론되고 있다.
그만큼 한국은행 직원들의 부총재에 대한 애정은 대단하다. 박 부총재가 한국은행을 떠나면 한은의 위상이 약화될 것을 우려하는 직원들이 있을 정도다.
반면 사적인 일이나 가정을 챙기는 데에는 낙제점이라는 게 가까운 지인들의 전언이다. 조사역 시절 조그마한 서민아파트를 마련하고 은행 대출 만기를 연장하기 위해 사정하던 모습을 기억하는 직원들도 많다.
요직만 거치다보니 지점장 경험이 없어 전반적인 관리능력을 검증 받지 못했다는 것이 단점이라면 단점. 그러나 부총재 3년을 거치며 우려와는 달리 안팎으로 잘 해내고 있다는 것이 주위의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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