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로 쌀 보내고 돼지저금통 기부하고

지역내일 2011-01-27 (수정 2011-01-27 오후 12:42:26)
한파 녹이는 '얼굴 없는 천사들'
"신분 알려지면 중단" 애교성 으름장도

"쌀을 보낼 테니 어려운 이웃을 위해 써 주십시요."

지난 13일 오전 서울 금천구 시흥5동주민센터에 한 남성이 전화를 걸어왔다. 다음날 20kg 들이 쌀 15포가 배달됐다. 발신지는 전북 임실군 관촌면. 보내는 이는 누군지 알 수 없었다. 주민센터는 생활이 어려운 홀몸노인 15명을 선정, 쌀을 전달할 예정이다.

◆무기명 기부, 대세는 쌀? = 연일 영하권 추위와 폭설 등 한파가 이어지는 가운데 어려운 이웃을 생각하는 무명의 기부자들이 잇따르고 있다.

무기명 기부의 대세는 쌀을 비롯한 먹을거리다. 성동구 응봉동주민센터에는 지난 연말 10㎏ 들이 쌀 4포대가 배달됐다. 발신인은 없고 '작은 정성이지만 어려운 이웃을 위해 대신 도와달라'는 쪽지만 있었다. 직원들이 택배원에게 확인했지만 '20대 여성'이라는 사실 외에는 알 수 없었다.

이웃 마장동에서는 새마을지도자협의회에 익명의 기부자가 나타났다. '지역 내 소외계층에게 전달해달라'며 쌀 800kg과 고기 50상자를 보내온 것. 동주민센터는 저소득 50가구를 선정해 쌀과 고기를 나눴다.

구로구 구로3동에 사는 70대 여성은 매년 쌀을 기부한다. 지난해까지는 김치도 동봉했고 이번에도 동주민센터와 구청에 각각 쌀 10포대씩 전해왔다. 인근 개봉3동에는 무기명 독지가 2명이 나섰다. 1명은 정기적인 기부자. 매년 두세차례 라면 60상자 가량을 보낸다. 또다른 이는 10㎏들이 쌀 50포와 라면 30상자를 올해 '따뜻한 겨울 보내기 사업'에 써달라며 보내왔다.

동작구청에는 현금 500만원이 쌀 100포대와 함께 배달됐다. '난방비가 없어 전기장판도 제대로 이용하지 못한다는 이웃들 사연을 TV에서 보았다'는 것. 구는 15개 동주민센터별로 각 2명씩 30명을 선정, 기름값과 도시가스비를 지원할 예정이다.

이밖에 성북구 월곡2동주민센터에도 최근 20㎏들이 쌀 200포대를 보내온 기부자가 있다. 역시 이름을 밝히지 않고 '설을 맞아 어려운 이웃들에게 전해 달라'는 전화를 한 뒤 쌀만 전해온 것. 구에 따르면 이 독지자는 지난해 11월에도 10kg들이 쌀 100포대를 기부했다.

◆한푼 두푼 정성을 모아 = 한푼 두푼 모은 정성에는 구구절절 사연도 다양하다. 지난 연말 관악구 청림동주민센터에 모녀로 보이는 두 여성이 찾아왔다. 여성들은 신문지 뭉치를 전달하고는 도망치듯 사라졌다. 신문지 안에는 현금 53만9470원과 함께 '적은 돈이지만 사랑이 가득 담긴 마음입니다, 힘내세요'라는 쪽지가 들어있었다. 발신인은 '수능을 무사히 마친 딸을 둔 대한민국 엄마'. 동주민센터는 학부모의 마음을 기려 뇌종양을 앓고 있는 한부모가정의 대학생에게 전했다.

비슷한 시기 60대 남성이 서류봉투에 싼 돼지저금통을 들고 청룡동주민센터를 방문했다. 그는 '기부를 하고 싶다'는 말만 남기고 떠났고 돼지저금통 안에는 동전으로 15만4500원이 들어있었다.

동작구 주민생활지원과에서는 최근 성금·금품 기부방법을 묻는 전화를 받았다. 11년 전 자폐를 앓던 20대 아들이 사망한 뒤 입양을 고려했으나 나이제한으로 입양이 어렵다는 얘기를 듣고 이웃돕기에 열심이었던 이였다. 그간 종교계 복지시설 등에 기부를 해오다 보다 도움이 절실한 곳을 찾아 구청에 문의한 것. 그는 현금 200만원을 보내며 10명에게 20만원씩 지원해달라고 주문했다. 이달 들어 광진구 능동주민센터와 도봉구 쌍문1동주민센터에도 기부천사가 다녀갔다. 이들은 '아이들 밥 굶지 않게' '홀몸노인들이 설에 떡국이라도 끓여 드시게' 돈을 써달라며 각각 500만원과 100만원을 전했다.

신분이 밝혀지면 '더 이상 기부를 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며 으름장(?)을 놓은 기부자도 있다. 구로구 오류1동에 사는 60대 남성이 주인공. 부인이 중증장애인인 그는 2009년 9월부터 두 딸의 이름으로 매달 100만원씩 기부하고 있다.

관악구 관계자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직원들 비리사건 여파로 사실 나눔의 손길도 꽁꽁 얼어붙는 것 아닌가 싶었다"며 "무명의 기부천사들이 보여준 따뜻한 마음과 정성을 이웃들에게 제대로 전달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김진명 기자 jm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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