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동훈 전북대 교수 사회학
논문 자료를 찾다가 우연히 30년 전 출간된 사회학 교과서를 읽었다. 그러면서 그 사이에 세상이 얼마나 변했나를 생각해보았다.
1980년대 초 한국사회가 직면했던 사회문제들 중에는 노사갈등, 도시문제 등 오늘날에도 여전히 잔존하고 있는 것들이 있지만, 인구문제처럼 그 문제의 양상이 완전히 달라진 것도 있다. 당시에는 과잉인구를 빈곤탈피의 적으로 간주해 산아제한을 강조했는데, 요즘에는 저출산과 고령화를 걱정하며 출산장려와 이민수용을 언급하고 있다.
그 당시에는 어느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던 사회현상이 이제는 국민 누구나 아는 상식이 된 것도 있다. 언제 어디서나 정보 매체에 접근할 수 있는 유비쿼터스 네트워킹이 현실화돼 있고, 교통ㆍ통신의 발달로 한국인의 삶의 공간이 좁은 한반도를 탈피해 전 세계로 확장되었으며, 동시에 외국인들이 한국에 몰려 들어와 국내 외국계 주민 수가 이미 100만 명을 훌쩍 넘었다.
이민 현상은 '보내는 이민'과 '받아들이는 이민'의 두 방향에서 진행된다. 과거 우리나라에서는 이민을 보내는 이민으로만 파악했다. 정부에서는 해외이주법을 통해 해외이주 알선업체를 관리하는 데 급급했다. 30년 전 한국사회에는 화교와 주한미군 및 선교사들이 국내로 이주한 외국인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으니, 요즘 상황은 상전벽해(桑田碧海)라 할 만하다.
외국인 이주노동자, 결혼이민자, 유학생, 투자자들이 전국 곳곳에서 뿌리를 내리고 있다. 그들은 한국에서 일하고, 가정을 꾸리며, 공부하고, 돈을 벌며 자신들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분투하고 있다.
그들의 유입으로 우리나라에서는 3D직종의 인력 부족을 일정 정도 해소할 수 있게 되었고, 농촌사회가 새로운 활력을 갖게 되었으며, 전국의 대학 캠퍼스의 국제화가 촉진되었고, 기업의 자금줄이 튼실해졌다.
국내 외국계 주민 수 100만명 돌파
그러나 모든 사회 현상이 그렇듯이 어두운 면도 있다. 약 17만 명에 달하는 불법체류 외국인들이 취업하며 국내 노동시장을 교란하고 있고, 그들이 모여 사는 일부 지역에서는 게토가 곧 생길 것이라는 전망이 현실화되고 있으며, 각종 국제 범죄 조직이 그 활동 무대를 국내까지 넓히고 있다.
외국인이 한국 땅에 몰려오는 것은 이제 기정사실이 되었다. 관건은 우리나라에서 그들을 어떻게 선별적으로 수용하고, 또 관리하는가에 있다. 기존의 방식으로 대처해서는 풀기 힘든 복합적 문제가 새롭게 대두되고 있다.
정부에서는 국내 노동시장 사정을 고려해 외국인 고용허가제와 외국국적동포 방문취업제를 통해 이주노동자 수를 조절하며 받아들인다. 그러한 방식으로는 '교체순환원칙에 기초한 외국인력제도'와는 다른 경로로 국내 노동시장에 진입하고 있는 외국계 주민들을 통제할 수 없다.
인력 부족분만큼 외국인력을 도입해 국내 노동시장의 인력난 해소를 꾀하려는 정책은 다양한 형태의 이민자 유입이라는 상황 앞에서 한계를 드러낼 수밖에 없다. 이를테면, 독일 정부는 이민 행정기관을 '이민ㆍ난민청'으로 확대 재편했고, 의회는 기존 '외국인법'을 폐기하고 '이민법'을 제정했다. 우리나라에서도 결혼이민자, 영주자, 유학생, 투자자 등의 경제활동 실태까지 총체적으로 고려한 이민정책을 수립해야 할 시점에 이르렀다.
목전에 닥친 다문화 사회의 도전을 구래의 행정 조직으로 효율적으로 극복하기는 힘들 것이다. 국무총리실에 외국인정책위원회, 외국인력정책위원회, 다문화가족정책위원회가 설치돼 있기는 하나, 상설조직이 아니라 협의 기구에 불과하다. 더욱 심각한 것은 세 위원회 간의 정책 조율을 할 수 있는 기관은 없다는 점이다.
상설조직인 '이민청' 신설해야
이민청을 신설해 그러한 문제를 풀어야 한다. 이민청을 정부 부처간 영역 다툼으로 격하에서는 절대 안 된다. 출입국관리, 외국인 체류관리, 이민자 사회통합 등 이민행정조직의 고유 업무와 더불어, 북한이탈주민과 귀환재외동포의 사회통합, 해외이주알선업체와 재외동포 관리 등 '보내는 이민' 관련 업무까지 고려해 새로운 틀을 짜야 한다. 그것은 다문화 사회의 도전에 직면한 한국사회의 활로가 달린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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