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인 전 한계레논설주간
연해주. 서울에서 비행기로 2시간 반이면 닿을 수 있는 곳이다. 우리 민족이 농토를 일구어 살았으며, 일제 때 항일독립운동의 배후기지였고, 수많은 독립투사들을 배출했던 지역이다. 하지만 불과 20년 전까지 우리로서는 접근할 수 없는, 멀고 먼 나라였고, 기억 속에서도 지워진 동토였다.
바로 그 연해주에 최근 다녀왔다. 동북아평화연대가 주선한 '설맞이 연해주 방문단'과 함께였다. 어린 시절 지리시간에 배웠던 부동항 블라디보스톡, 그리고 버스로 두어 시간 거리인 우수리스크에 나흘 동안 머문 것이 전부다.
하지만 이 짧은 여행이 한반도의 남쪽에서 아웅다웅 다투며 살아가는 나에게는 시베리아의 '고려인' 쪽으로 생각의 지평을 넓힐 수 있는 더없는 기회였다.
그들은 시베리아에 다시 정착하기 위해 분투하고 있다. 대표적인 지역이 연해주다. '다시 정착'이라는 말 속에는 그들의 슬픈, 고난의 70년 역정이 담겨 있다. 지난 1937년 8월 21일 소련인민위원회와 볼셰비키당 중앙위원회는 극동 변경지역에서 한인을 이주시킨다는 결정을 내렸다. 그들이 내세운 이유는 "극동지방에 일본 정보원의 침투를 차단한다"는 것이었다.
항일투쟁의 배후기지였던 연해주에 대해 '일본 정보원 침투' 운운한 것은 참으로 가당치 않은 억지였다. 강제 이주의 실질적 동기는 그곳에서 세력을 넓혀가는 '고려인'들을 제거하고, 이 자리에 러시아 백인들을 정착시키겠다는 데 있었다.
고려인들의 '고난의 역정'
연해주에 내린 고려인들의 삶의 뿌리를 뽑아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등 중앙아시아로 옮기는 데는 이 결정이 내려진 뒤 두달밖에 걸리지 않았다. 기록에 남아 있는 강제이주 숫자는 17만여명이었다.
강제이주에 대한 조직적인 저항을 염려한 소련당국에 의해 지식인들은 사전에 검거되어 처형당했다. 지붕이 없는 화물기차에 실린 고려인들은 40일 동안 1만킬로미터의 긴 기차여행을 견뎌야 했고, 이 과정에서 유아의 20%가 사망했다는 기록도 있다. 그들에게 정착지로 제공된 지역은 반사막지대로 여름에는 40도로 무덥고 겨울에는 몹시 추웠다.
고려인 억압정책에 대한 소련정부의 공식 인정과 복권은 1989년에 가서야 이루어졌지만, 2년 뒤인 1991년 소연방이 해체되면서 중앙아시아에 신생독립국들이 등장하자 정착 50년 만에 다시 고려인들의 삶의 뿌리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공용어가 현지어로 바뀌면서 러시아말밖에 모르는 고려인들이 설 땅이 더 좁아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연해주로 다시 돌아오는 고려인의 긴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그들은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이 일궜던 연해주로 되돌아오지만, 이곳은 이미 그들의 땅이 아니다.
한때는 발해의 영토였고, 강제이주를 당하기 전까지만 해도 큰 민족을 이뤘던 이들은 이제 연해주의 소수민족(연해주인구 220만 중 3~4만 정도), 그것도 아직 뿌리를 내리지 못한 가난한 거주민일 뿐이다.
나는 우수리스크에 있는 고려인 교회인 은혜교회 예배에 참석하면서 과거 연해주의 '주인'이었던 그들이 지금은 어떻게 살고 있는가를 실감할 수 있었다.
이 교회는 고려인, 러시아인, 카레이스키가 혼합된 다인종 교회였다. 고려인 젊은이들이 러시아어로 힘차게 복음성가를 불렀다. 예배도중 건장하게 생긴 50대 러시아인이 목사가 설교하는 강단에 뛰어 올라가 "러시아에는 정교회가 있는데, 무슨 개신교냐?"고 고래고래 소리치고 내려간다. 소수민족과 소수종교가 이곳에 뿌리를 내리기 위해 어떤 고난을 넘어서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광경이었다.
강인한 생존력에 박수를
연해주는 안중근 의사가 손가락을 잘라 혈서를 쓴 단지동맹을 결성한 곳이고, 홍범도 장군과 헤이그 밀사사건의 이상설이 살던 곳이기도 하다. 선조들의 땅 연해주에 다시 정착하려는 고려인들은 조상들의 강인한 생존력을 물려받았다.
강제이주 당하기 전 고려인들에게는 "바위 위에 갖다 놓아도 살아갈 것"이라는 평판이 따라다녔다고 한다. 지금 고려인들도 이런 평판을 받고 있다. 그들의 국적은 러시아이고 우리말을 모르지만, 그들은 우리와 같은 민족이다. 그들의 분투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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