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인
미국의 통화정책을 책임지고 있는 벤 버냉키 연준(FRB) 의장은 '바위와 옹벽 사이'에 갇혀 있는 것으로 비유된다. 글로벌 위기 타개를 위해 엄청나게 풀어놓은 돈을 거둬들여야 하지만, 그렇다고 기준금리를 올리게 되면 당장 장기주택대출(모기지) 이자율이 올라가고, 미국경제의 암적 존재인 부동산 위기가 도져 다시 경기침체에 직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금리인상 요구에 대한 그의 일관된 반응은 '모기지 금리가 낮아야만 주택구입이 늘어나고, 기존 모기지 대출의 대환(代換)이 가능하며, 또 회사채 금리가 낮아야 투자가 활성화되고, 주가가 올라야 소비자들의 부(富)와 자신감이 높아져 지출을 늘릴 수 있게 된다'는 것이었다.
버냉키의 저금리정책은 주택위기 재연 우려한 고육지책
바로 이 논리에 따라 그는 2010년 6월까지 이른바 '양적 통화완화'(QE)라는 비상수단을 통해 채권시장에서 1조7000억 달러의 주택저당증권(MBS)과 재무부증권(TB)을 매입해 장기금리의 상승을 억눌렀다. 그리고 경기회복 기세가 약화되는 기미를 보이자 8월부터 다시 6000억달러의 2단계 QE에 착수했다. 지금 미국경제는 선진국들 가운데 가장 빠른 회복 추세를 보이고 있고, 다수 경제전문가들은 이제 인플레이션 악화를 차단하기 위해 서둘러 기준금리를 올려야 할 시점이라고 벌써부터 주장해왔다.
그러나 버냉키 의장은 좀체 물러서지 않으려 한다. 국제유가와 식료품 가격 상승으로 소비자물가가 크게 오르고 있지만 이 두 가지 요소를 제외한 근원물가(core inflation)는 여전히 낮은 수준이므로 아직은 인플레이션을 걱정하기보다는 경기회복을 정착시키고 고용을 활성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금리인상을 둘러싼 이런 논쟁은 전혀 이상할 게 없다. 바로 얼마 전까지 우리 정부 내에서도 같은 논쟁이 이어졌다. 그런데 이색적인 주장을 하기로 정평이 나 있는 경제평론가 앤디 케슬러가 또 색다른 논리를 들고 나왔다.
그는 "FRB가 금리를 올리면 투기세력들이 시장에서 손을 떼면서 원유와 밀, 그리고 원자재 가격이 20% 내지 30% 떨어지게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헤지펀드 운용을 비롯해 다양한 금융 경력을 지닌 케슬러는 "경제적 부(富)는 생산성에서 나온다"고 강조하며 기업들의 인력 감축을 필요악이라고 주장하는 극단적 자유경제론자이다.
지난달 펴낸 '사람을 줄여라'라는 저서에서 그는 "실업률이 9%에 이르는 현 시점에서 내 주장은 지지를 받기 어렵겠지만 그렇게 해야만 장기적으로 고용이 늘어나고, 사라진 일자리는 더 좋은 일자리로 메워질 수 있다"고 말한다.
글로벌 위기를 거치면서 사실상 이런 자유시장론은 완전히 신뢰성을 상실했다. 그러나 케인지언 처방에 따른 재정확대와 통화완화 역시 고실업이 지속되는 가운데 재정적자의 누적으로 부채위기론이 제기되면서 그 한계를 드러냈다. 과연 버냉키 의장은 어디에서 탈출구를 찾아야 하는가.
케슬러는 '제로금리'라는 비정상적인 금융환경 하에서는 은행과 기업이 구태여 대출과 투자를 할 필요를 느끼지 않기 때문에 금리를 올려 투기세력을 내몰고 다시 경제를 정상화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통상적으로 금리인상은 기업투자를 억제할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금리가 오르기 시작하면 영리한 기업가들은 그때까지 미뤄뒀던 투자 계획에 서둘러 착수하며, 다른 기업가들이 그 뒤를 쫓아 투자에 나서는 'J-커브 효과'가 일어나게 된다는 말이다.
금리인상하면 투기 약화, 기업투자 늘어나는 'J-커브 효과' 기대
버냉키 의장의 제로금리 정책은 이미 27개월째 지속되고 있다. 케슬러의 지적처럼 이것은 결코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다. 누리꾼들도 그의 저금리 정책이 월가의 사기꾼들만 배불리는 망국적 정책이라고 힐책한다. 미국의 경제정책 논의가 나날이 원칙론으로 기울어지면서 1700만 명에 이르는 실업자들의 고통은 점차 관심에서 멀어지고 있는 분위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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