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청산 갈림길에 선 사법부]⑥ 이해승 판결 바꿀 새로 드러난 증거

지역내일 2011-02-28 (수정 2011-03-02 오전 7:55:34)
재판부 증거판단과 다른 기록 발견됐다
통감유고·문서철 "조선귀족은 일한합병 대업의 공로"
이해승, 작위증 수령 전 친일행적 … "재심사유 돼

500억원대의 친일재산 환수가 걸린 이해승 사건 재판에 대한 새로운 사실이 발견됐다. 일제가 한일합병의 공로가 있는 자에게만 작위를 주도록 했다는 규정이 확인되고 있다.
또 이해승이 합병에 적극 찬동한 사료도 발굴되고 있다. 이해승이 한일합병의 공로가 아닌 조선왕족이라는 이유로 작위를 받았기 때문에 친일재산을 환수할 수 없다는 사법부의 판단이 변경될 사유가 발견된 셈이다.
'내일신문'이 사료를 살펴 본 결과 이해승 사건 재판부의 '조선귀족령'에 대한 증거판단은 잘못된 것으로 드러났다. 이해승 사건 재판부는 "일본은 한일합방의 공로자가 아닌 왕실 문지(문벌)에도 작위를 주었으며, 이해승은 왕실에 해당한다"고 판결문에 썼다. 재판부가 이같이 판단한 것은 조선귀족령의 '왕족, 문지, 공로있는 조선인에게 작위를 준다'는 규정에서 '공로있는 조선인'은 한일합병의 공로자를 가리킨다고 본 데 따른 것이다.
그러나 조선귀족령 전문(前文)에서 메이지천황은 “짐은 이왕가의 의친과 기 방가(其 邦家-대한제국)의 대로(大勞)가 있는 자는 마땅히 … 조선귀족으로 삼아”라고 밝혔다. 또 조선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도 "이번에 영작을 수여함은 … 이왕가의 족척이나 기 방가(대한제국)에 공로가 있음을 위함"이라고 썼다. 즉 '대로 또는 공로 있는 조선인'이란 왕실이나 문벌과 별도로 대한제국의 공직자를 가리키고 있다.
이처럼 조선귀족령은 작위수여대상자에 대해 한일합병의 공로여부를 따진 규정이 아니라 대한제국에서의 신분을 구분해 둔 것일 따름이다.

◆대법원, 잘못된 증거판단 심리않고 확정 책임 = 반면 ‘작위와 한일합병의 공로’와의 관계에 대해서는 ‘한일합병조약문’에 "훈공있는 자에게 영작을 수여한다"고 되어 있다. 사이토 총독 문서철에도 "조선귀족은 … 일한합병의 대업이니 그 공로를 표창하기 위해 명치대제께서 황송하옵게도 높은 작위와 위로금을…그 수는 70여명"이라는 기록이 발견됐다. 76명의 작위수여자 가운데 8명이 작위를 거부한 만큼 이해승은 이 70여명에 포함된다. "(천황폐하의 무육지화로)특히 충순히 신정(新政-합방체제)을 익찬(翼贊-잘 도와서 인도)한 현량은 그 공로에 준하야 영작을 내리실 것"이라는 데라우치 통감의 합병조약 발표당일 유고(諭告)도 있다.
이처럼 작위대상자의 신분은 왕실, 문벌, 공직자 세 부류이지만, 작위수여의 공적은 한일합병의 공적 하나뿐임이 당시 일본의 기록을 통해 드러난 것이다.
이해승 재판부는 당시 재판에서 ‘합병공로자에게만 작위를 수여한다는 일제의 규정’이나 최소한 ‘이해승이 작위수여 전에 한 친일행적’을 증거로 요구했다. 그러나 친일재산조사위가 해체된 상태에서 사료를 전문적으로 발굴할 역사학자들이 재판을 뒷받침하지 못했다. 그 결과 재판부는 “합방 공로자가 아닌 왕실 문벌도 작위를 받도록 조선귀족령에 규정돼 있다”는 이해승 후손측의 잘못된 주장을 증거로 채택했다.
민족문제연구소가 뒤늦게 상고심에 장문의 보고서를 제출했으나, 대법원은 1심과 2심이 정반대로 판결한 사건에 대해 심리도 하지 않고 기각 결정을 내려버렸다.

◆작기본서 봉수식이 작위수여의 종결시점 = 한편 이해승이 작위수여를 전후하여 합병에 적극 찬동한 행위도 발견됐다. “(작위봉수식(爵位奉授式) 5일후에) 후작 이해승이 양주의 선산에 가서 서작봉고식(敍爵奉告式)을 거행했다”는 기록이다. 경성신보 1910년 10월 12일자 기사다. 일본천황이 수여한 귀족작위를 철종의 아버지인 전계대원군 등 선조들에게 받들어 신고한 것은 적극적인 합병찬동행위이다.
이해승은 또 1911년 2월 22일 조선총독부의 작기본서봉수식(爵記本書奉授式)에 참여해 조선귀족의 작위증을 정식으로 받았다. 작기본서봉수식은 조선귀족의 작위수여행위가 종결된 날로 볼 수 있다. 이해승은 작기본서봉수식 3개월전에 조선귀족 대표로 일본천황을 방문했다. 조선총독에게도 별도로 인사를 갔다. '작위수여의 종결시점' 이전의 친일행적이 기록으로 남아 있는 셈이다.
재판부는 “일제가 회유하기 위해 수여한 작위를 받았을 뿐, 적극적인 친일행위를 수반하지 않은 수작 자체를 한일합병의 공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당시 김석진은 자기 이름이 작위대상자에 포함된 것을 부끄럽게 여겨 자결했다. 조정구도 합병을 받아들일 수 없어 수차 자결을 시도하다가 승려가 되는 등 모두 8명이 거부했다.
반면 이해승은 조상의 묘소에 작위를 받들어 신고한 다음 조선귀족을 대표해 천황에게 감사인사를 다녀왔고, 작기본서를 정식으로 수령하는 등 합병체제를 공고히 하기 위한 조선귀족제도 정착에 적극 협력했다.

◆"역사학자들 사료찾기에 재판결과 달려" = 새롭게 밝혀진 사실들이 친일재산 환수관련 재판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대법원 판결로 확정된 322억원 국가귀속 불가 판결에 대해서 헌법학자인 이헌환 아주대 법대 교수는 “잘못된 증거채택이 드러날 경우 재심을 청구할 사유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3월엔 228억원의 부당이득환수 소송이 서울중앙지법 민사34부(전광식 부장판사)에서 속행된다. 국가귀속 사건을 담당했던 재판부의 한 관계자는 “새로운 사실들이 드러나면 판결을 달리 할 수 있다”면서 “역사학자들이 나서서 얼마나 더 새로운 사료를 발굴해 내느냐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진병기 기자 ji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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