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서는 진천이요, 죽어서는 용인이라’는 말이 있다. 예로부터 용인에 명당자리가 많았음일 추측케 하는 속담이다. 과학적 근거 없이 그저 인구에 회자됐던 말일지도 모르겠지만 용인의 지형이 분지를 이루고 있어 산이 많은 고장이라는 것을 압축한 소중한 정보다. 지금은 풍덕천(川)이라 불리는 곳이 예전엔 풍덕내(來)라고 불렸다. 지금도 일부에서는 풍덕내라 불리는 이 지명을 풀이하면 ‘덕이 크신 분이 풍덕에서 오신다’는 뜻이라고 한다. 즉 포은 정몽주 선생의 묘소를 용인에 모시게 된 인연을 드러낸 지명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우리가 알게 모르게 주변의 모든 이름들이 예로부터의 소중한 유서를 간직하고 있다.
이런 용인의 깊은 유서(由緖)를 3년여에 걸쳐 차곡차곡 모아 책으로 낸 사람이 있다. 바로 용인문화원 이인영 원장이다. 이 원장은 700페이지에 걸쳐 용인의 읍·면·동·리의 수리적 위치, 옛지명, 산, 고개, 길 등의 지명과 속지명은 물론 고(古)문서를 샅샅이 뒤져 신구 대조 일람표까지 용인에 관한 지명을 총망라한 「내고장 용인 지명(地名)·지지(地誌)」란 책을 김성환 경기도 학예연구관과 공동으로 발간했다. 고시랑산·골안산·된봉·벙거지산·송장 날새산 등 산 이름과 별미고개·무너미고개 등 고개 이름, 삼배울길·머내길 등 낯설면서도 구수한 지명을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는 「내고장 용인 지명(地名)·지지(地誌)」는 웬만한 학자라도 선뜻 발간에 나서지 못할 정도로 내용일 충실하다. 뿐만 아니라 지명이 갖고 있는 언어적 형태 속에는 토속성이 짙은 방언과 우리말의 고어(古語)가 많이 남아 있어 어문 연구뿐 아니라 역사적 사실을 규명할 수 있는 귀중한 단서로도 쓰일 수 있다.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별로 관심을 기울일 것 같지 않은 이런 책을 낸 이유는 무엇일까. 그에 대해 이 원장은 “현재는 과거의 끊임없는 축적으로 이뤄진 결과물이기 때문”이라며 “지명 역시 조상이 물려주신 훌륭한 무형의 자산이기에 그것을 보존해야할 책임이 있다고 여겼다”고 말했다. 책을 내기로 하면서 사람들의 순간적인 관심은 애초에 기대하지도 않았다는 말이다. 이 원장은 예로부터 유서 깊은 고장인 용인의 모습을 다음 세대에 전달하는 일을 문화원장으로서의 임무라고 생각한다. 그 임무의 출발은 조그마한 선조의 흔적이라도 아끼고 보존하는 것이다. 이 일을 ‘유서(由緖) 남기기 운동’이라고 명명한 이 원장은 “혼자 힘으로 용인의 문화를 계승·발전할 수는 없는 일”이라고 전제한 뒤 “아무쪼록 시민 여러분이 자발적이고 애정 어린 동참만이 우리 시의 참모습을 이어 나갈 수 있다”며 아낌없는 지원을 부탁했다.
이런 용인의 깊은 유서(由緖)를 3년여에 걸쳐 차곡차곡 모아 책으로 낸 사람이 있다. 바로 용인문화원 이인영 원장이다. 이 원장은 700페이지에 걸쳐 용인의 읍·면·동·리의 수리적 위치, 옛지명, 산, 고개, 길 등의 지명과 속지명은 물론 고(古)문서를 샅샅이 뒤져 신구 대조 일람표까지 용인에 관한 지명을 총망라한 「내고장 용인 지명(地名)·지지(地誌)」란 책을 김성환 경기도 학예연구관과 공동으로 발간했다. 고시랑산·골안산·된봉·벙거지산·송장 날새산 등 산 이름과 별미고개·무너미고개 등 고개 이름, 삼배울길·머내길 등 낯설면서도 구수한 지명을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는 「내고장 용인 지명(地名)·지지(地誌)」는 웬만한 학자라도 선뜻 발간에 나서지 못할 정도로 내용일 충실하다. 뿐만 아니라 지명이 갖고 있는 언어적 형태 속에는 토속성이 짙은 방언과 우리말의 고어(古語)가 많이 남아 있어 어문 연구뿐 아니라 역사적 사실을 규명할 수 있는 귀중한 단서로도 쓰일 수 있다.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별로 관심을 기울일 것 같지 않은 이런 책을 낸 이유는 무엇일까. 그에 대해 이 원장은 “현재는 과거의 끊임없는 축적으로 이뤄진 결과물이기 때문”이라며 “지명 역시 조상이 물려주신 훌륭한 무형의 자산이기에 그것을 보존해야할 책임이 있다고 여겼다”고 말했다. 책을 내기로 하면서 사람들의 순간적인 관심은 애초에 기대하지도 않았다는 말이다. 이 원장은 예로부터 유서 깊은 고장인 용인의 모습을 다음 세대에 전달하는 일을 문화원장으로서의 임무라고 생각한다. 그 임무의 출발은 조그마한 선조의 흔적이라도 아끼고 보존하는 것이다. 이 일을 ‘유서(由緖) 남기기 운동’이라고 명명한 이 원장은 “혼자 힘으로 용인의 문화를 계승·발전할 수는 없는 일”이라고 전제한 뒤 “아무쪼록 시민 여러분이 자발적이고 애정 어린 동참만이 우리 시의 참모습을 이어 나갈 수 있다”며 아낌없는 지원을 부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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