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형 칼럼]1755년 리스본과 2011년 도호쿠

지역내일 2011-03-28

언론인 전 서울신문 편집국장

모든 성인의 축일이던 1755년 11월 1일 만성절 아침, 포르투갈 제국의 수도 리스본의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았고 새하얀 대리석 건물들은 가을 햇살에 눈부시게 반짝였다.

이날 오전 9시 30분, 미사 중인 신도들로 꽉 들어찬 성 빈센트 데 포라 성당이 갑자기 풍랑을 만난 배처럼 심하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신부 교구민 할 것 없이 공포에 질렸고, 거대한 돌기둥 조각들이 비 오듯 쏟아졌다.

진도 9도 규모의 대지진에 이어 90분 뒤 들이닥친 높이 15m의 거대한 쓰나미는 유럽에서 가장 화려했던 국제무역도시 리스본을 하루아침에 완전 폐허로 만들었다. 리스본 인구 23만 5000명 가운데 3만~10만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됐다.

18세기 중반 무렵, 포르투갈의 가톨릭교회는 지식과 양심, 건강, 종교법의 영역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했고, 종교재판소는 수시로 이교도와 이단자, 인본주의자, 유대인들을 십자가에 묶어 화형으로 공개처형하는 등 두려움의 대상이 되었다.

대재앙으로 초토화되어 희망을 잃은 리스본은 외교관 출신 카르발류 총리의 강력한 추진력과 리더십으로 다시 부활하게 된다. 근대적인 도시계획에 따른 재건, 과학적인 지진연구, 수많은 개혁정책이 추진되었다.

건전한 의심과 이성이 독단적인 종교적 교리를 대신했으며, 신의 섭리에 묶인 체념적 삶은 인간이 자유롭게 개척하는 주체적 삶에 자리를 내주었다.

- '운명의 날-유럽의 근대화를 꽃피운 1755년 리스본 대지진' 니콜라스 시라디

건축비평가이자 역사 칼럼니스트인 시라디는 "1755년 리스본 대지진은 전 유럽을 경악케 했으며 당대의 유럽 지식인들은 신의 섭리에 의해 세상이 질서정연하게 돌아간다는 낙관주의를 버리게 되었다"고 지적했다.

'동아시아 평화구조' 틀 짰으면

그는 대지진 이후 계몽주의 철학을 담은 볼테르의 소설 '캉디드'나, 지진은 도덕적, 초자연적 현상이 아니라 자연과학적인 현상이라는 칸트의 '1755년 대지진 논문' 등 수많은 계몽주의 저작물들이 쏟아져 나왔으며, 대재앙은 유럽의 근대화를 꽃 피우는 계기가 되었다고 해석했다.

2011년 3월 11일 오후 2시 46분에 발생한 일본 도호쿠 대지진은 진도나 쓰나미 규모면에서 256년 전에 일어난 리스본 대지진과 비슷하다.

사망·실종자의 공식집계만 해도 2만7500명에 이르고 있고 실제는 5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어 인명손실 규모도 그 때와 비슷하다. 그러나 이번 쓰나미로 인한 후쿠시마 원전 방사능 누출이 계속되고 있어 도호쿠 대재앙은 어쩌면 리스본 대지진 때보다 더 비극적으로 될 수도 있다.

일본 국민들은 슬픔을 깨물고, 국가적 위난을 전 국민적인 단합된 힘으로 극복해나가고 있다. 이번 대재앙을 계기로 이웃인 한국과 중국, 동맹국인 미국은 물론 일본보다 더 가난한 나라들도 일본을 돕기 위해 나서고 있다.

이 같은 각국의 박애정신 발휘를 바탕으로 차제에 '동아시아의 평화 구조'의 틀을 짤 수는 없을까.

훗날 역사가들이 2011년 일본 도호쿠 대지진은 1755년 리스본 대지진이 유럽 근대화의 계기를 제공했던 것처럼 남북한, 일본, 중국, 동남아 등 동아시아에서 새로운 평화의 구조를 짜는 시발점이 되었다고 기록하게 할 수는 없을까 생각해본다.

후쿠시마 원전 방사능 유출로 인한 재난 범위가 나날이 확대되고 있는 데서도 알 수 있듯이, 국제간 원전 안전 공조체제의 강화는 당장 필요하다. 아시아만 해도 지진대와 연결된 일본 중국 러시아 대만 인도의 원전에 대한 국제공조체제가 절실한 실정이다. 남북한 등 동아시아 국가들이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에 관한 확고한 안전성 보장체제를 갖추는 작업을 통해 역내 안정을 꾀하는 평화의 장치로 발전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백두산 화산 과학자 대화' 계기로

최근 백두산 천지 주변은 2002년에 비해 지표면이 10.4cm 부풀어 올랐고, 작년에는 이산화황가스가 대량으로 분출하는 등 언제라도 활화산으로 분화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만약 백두산이 용암과 화산재를 분출할 경우, 그 재해 규모는 한반도는 물론 중국, 일본 등지에서 엄청날 것으로 과학자들은 분석하고 있다.

남북한은 그 동안 경색된 가운데서도 29일 파주 문산에서 민간 과학자들이 서로 만나 백두산 화산 관련 문제를 협의한다. 자연 재해 예방 협력을 계기로 남북이 긴장을 풀고 대화 채널을 다변화하고 격상시켜 북핵 폐기와 북미 관계 개선 등 한반도 평화체제를 구축하는 결정적 계기를 마련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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