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재건축단지에 사용료 면제는 부당’ 첫 판결

지역내일 2011-03-10 (수정 2011-03-10 오후 12:20:09)
날릴뻔한 수백억, 공무원 집념으로 찾아
김권영 서울동작구청 행정관리국장 … 반포2단지 첫사례, 재개발·재건축 전반에 영향
조합원 집단민원, 서초구청 내부 반대에도 뜻 안 굽혀 … 올해 동작구청으로 옮겨

재건축사업이 진행 중인 부지에 도로나 공원 등 국유지나 시·구유지가 포함돼 있다면 재건축 기간 동안 이들 시설에 대한 사용료를 면제해서는 안된다는 취지의 대법원 첫 판결이 나왔다. 그동안 하급심에서 사용료 부과를 놓고 재판부마다 판결이 엇갈렸다. (내일신문 2008년 12월 17일자 21면 참조) 대법원이 이번에 처음으로 기준을 제시한 것이다.

대법원 판결로 서울 서초구 반포주공2단지(반포 래미안 퍼스티지) 재건축조합은 최소한 이미 부과돼 있는 169억원의 사용료를 내거나(구청에서 해당 금액을 압류한 상태로 소송 진행) 아니면 사용료의 120%에 해당하는 과태료 성격의 변상금이 부과될 전망이다.

대법원3부(주심 신영철 대법관)는 반포주공2단지재건축조합이 서울 서초구청을 상대로 낸 사용료부과처분취소소송에서 원고승소 판결 한 원심을 파기했다고 10일 밝혔다.

재판부는 "공원부지를 재건축조합이 점유, 사용하는 데 대한 대가로 부과되는 점용료나 사용료가 사업시행으로 인해 면제된다고 본 원심 판결은 위법하다"며 "도정법(도시 및 주거환경 정비법)은 점용료 또는 사용료를 면제된 것으로 보는 국토계획법 제65조를 준용한다는 규정을 두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이번 판결이 확정되면 재건축이나 재개발 부지 내에 도로나 공원 등 국가시설을 포함하고 있는 조합 등은 공사 시작 시점부터 준공인가 통보를 받기 전까지 기간 동안의 사용료를 내야 한다. 재건축조합에 대한 사용료 부과는 전국에서 서초구청이 유일하다. 이번에 대법원 판결을 받은 반포주공2단지 이외에도 반포주공3단지, 미주아파트 등에 사용료가 부과됐다.

반포주공3단지도 소송을 벌이다 서초구청과 조정을 통해 소송을 모두 취하하고 81억여원의 사용료를 납부했다.

◆250여억원 구수입 확보한 김권영 국장 = 서초구청이 구청의 재산이자 구민들의 재산이기도 한 구유지의 사용료 수백억원을 날릴뻔했다가 찾을 수 있게 된 것은 2007년 당시 김권영 건설교통국장(현 동작구청 행정관리국장)이 있었기 때문이다.

김 국장은 법이 바뀌어 재건축조합에 사용료를 부과해야 하는데도 관련부서에서 그냥 넘어가려고 하자 문제점을 지적하고 나섰다. 당시 서초구청 간부들은 대부분 변상금 부과에 반대했다. 이전까지 사례가 없었고 전국에서도 처음이라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을 꺼려한 탓이다. 김 국장을 지지하는 직원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재건축조합원들이 집단으로 몰려와 항의하는 일도 있었다. 하지만 김 국장은 물러나지 않고 조합원들을 설득시켜 돌려보냈다. 법적으로 정당한 부과라는 김 국장의 논리를 조합원들이 반박하기 어려웠다.

김 국장은 2008년 1월 주민생활국장으로 발령이 났고 소관업무가 아니기 때문에 토요일과 일요일을 이용해 타부서에 근무중인 여직원을 설득해 함께 각종 법규를 검토하고 유사사례를 확보했다. 결국 부과에 반대했던 담당부서가 징수결의를 하게 만들었다. 당시 반포2·3단지에 부과된 1차 변상금은 504억여원이었다.

김 국장은 "공무원들이 법에 맞는 일인데도 그동안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관행을 깨지 못했다"며 "공무원이 해야할 일을 하지 않는 것이어서 사실상 직무유기나 마찬가지였다"고 말했다.

구청장이 타구청 전출 요구, 지역 국회의원도 압박성 권고 = 재건축조합들은 일제히 사용료나 변상금 부과가 부당하다며 소송을 냈다. 소송수행도 전부 김 국장 몫이었다. 2008년 3월 소송이 처음 제기됐고 건수도 4건에 달했다.

김 국장이 직접 작성한 서류만 해도 수천 페이지가 넘는다. 전문적인 내용이라 변호사도 내용 파악이 쉽지 않았다. 그럴 때는 변호사들을 상대로 관련법 등에 대해 김 국장이 브리핑을 할 정도였다. 법정에도 빠지지 않고 나갔다. 고단해도 의미 있는 일이라는 생각에 버틸 수 있었다.

정작 김 국장을 힘들게 한 것은 구청 내부였다. 소송이 한창 진행 중이던 2008년 7월 당시 구청장은 김 국장에게 별다른 이유 없이 다른 구청으로 전출을 가라고 했다. 그렇게 되지는 않았지만 구청장과 한참동안 불편한 관계를 이어가야 했다. 2번이나 지역구 국회의원을 찾아가 변상금 부과의 적법성을 설명했다. 그리고 그 뜻을 굽히지 않고 변상금을 부과해 나갔다.

하지만 서초구청은 결국 재건축조합에게 도로 부분에 대한 점용료를 면제해줬다. 지역구 국회의원이 '변상금 부과가 부당하다'는 공문을 서초구청에 보낸 이후였다. 도로에 대해 점용료가 부과됐다면 그 금액은 450억원에 달한다. 해당 국회의원은 지난해 의정보고서에서 '따지고 싸우며 1126억원을 감면해 드렸다'고 자신의 노력으로 변상금부과가 취소됐다는 점을 오히려 강조했다. 재건축조합에서는 국회의원에게 감사패를 주기도 했다.

김 국장은 "지역구 국회의원이 앞장서서 구수입으로 들어올 변상금을 취소하거나 줄여줬다고 홍보하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 일"이라고 말했다.

판결문 읽고 쌓인 설움 북받쳐 울음 = 김 국장은 "사용료를 면제하면 안된다"는 취지의 대법원 판결문을 받아 보고 울었다. 3년 넘게 고생한 설움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공무원으로 일한 38년 7개월간의 기간 중 가장 힘든 시간이었다. 올해 1월, 18년 동안 근무해 친정 같았던 서초구청을 떠났다. 동작구청으로 오기 전까지는 한직인 구의회 사무국장으로 1년 6개월을 보냈다.

김 국장은 서초구청을 떠나기 직전까지 소송에 몰두했다. 지난해말 법률을 다시 검토하다가 새로 발견한 내용을 토대로 자료를 만들어 보충 서면을 내도록 소송대행자에게 부탁했다. 소송대행자는 김국장이 보내준 자료를 근거로 보충서면을 작성해 김 국장이 동작구로 전보되기 하루 전인 지난해 12월 31일 대법원에 제출했다. 김 국장이 새롭게 찾은 법해석에 대한 논리가 재판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는 몰라도 상고된 지 불과 4개월 만에 대법원은 원심에 대해 파기환송 판결을 내렸다. 이례적으로 빠른 결정이다.

김 국장의 대처는 단순히 소송에만 머물지 않았다. 반포주공2단지 재건축조합으로부터 170억원을 미리 압류해 놓았다. 준공 인가가 나고 조합이 해산되면 조합원 개개인을 상대로 사용료를 받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안 김 국장이 미리 대비를 해 놓은 것이다.

반포주공2단지는 준공이 끝났지만 김 국장이 앞서 조합측과 합의하에 170억원의 예금을 압류, 판결에 따른 실익을 놓치지 않았다.

김 국장은 이번 판결이 조합원들의 부담을 크게 늘리는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그는 "과거에는 사업시행 부지 내에 있는 국유지 등을 조합에서 매입해야 했는데 매입하지 않게끔 법이 개정돼 조합원들의 부담이 크게 줄었다"며 "그 이익에 비하면 국·공유지 등을 점유함으로써 발생하는 사용료 부과는 비교할 수없을 만큼 적은 금액"이라고 말했다.

그는 사업부지안에 "국유지나 시·구유지를 포함한 재건축단지는 전국적으로 많지 않을 것이고 사용료 부과 문제가 크게 불거질 영역은 재개발지역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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