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동 논설고문
우리나라 재벌들의 '탐욕'은 끝이 없는가. 부를 노린 무한질주가 브레이크도 없이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재벌들은 몸에 밴 '문어발 본능'을 주체하지 못한 듯 한없이 몸집을 부풀리면서 비상장계열사를 통해 부의 대물림도 거침없이 자행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정부의 금리 환율정책 지원에 편승해 사상 최대의 매출과 이익을 올려 그들만의 돈잔치를 벌이면서도 투자와 고용, 상생에는 지극히 인색한 것으로 밝혀졌다.
"우리 대기업들은 공룡처럼 성장하고 있다. 눈먼 돈도, 더러운 돈도, 깨끗한 돈도 돈이라면 모두 갖겠다고 한다. 같이 사는 사회에서 기본적으로 도덕이라는 것이 있다"는 정운찬 동반성장위원장의 쓴소리가 더욱 새삼스럽게 가슴을 친다.
공정거래위원회가 발표한 자료를 보면, 자산 5조원 이상 55개 기업집단의 평균 자산총액이 30조7000억원으로 지난해보다 2조9000억원이 증가했다. 평균 부채비율은 109%로 6.8% 개선됐다. 부채비율이 560%에 이른 한국토지주택공사(LH)를 포함한 공기업군을 빼면 민간기업 부채비율은 94.6%로 낮아진다. 빚이 자본보다 적은 초우량 재무구조를 실현한 셈이다. 매출(전년보다 17.7%)이 늘고 이익(60.2%)도 늘어난 결과다.
'문어발 본능' 주체 못하고 한없이 몸집 부풀려
돈을 잘 벌다 보니 대기업마다 곳간에 현금이 쌓여가고 있다. 10대 그룹 상장계열사들의 유보율이 작년말 1,219.45%로 전년보다 2배나 높아졌다. 유보율이 높다는 것은 벌어들인 현금을 잠재우고 있다는 뜻이다. 재무구조가 건전해졌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돈을 투자 등 생산활동에 쓰지 않고 고여 있다는 얘기다. 투자하지 않으면 고용이 늘지 않는다. 지난해 대기업 취업자수는 되레 감소했다.
재계가 틈이 날 때마다 투자와 고용을 늘리고 동반성장을 하겠다고 다짐을 하는 등 선심 자랑을 했지만 대기업 취업문은 갈수록 좁아지고 양극화는 더욱 깊어지고 있으며 중소기업의 상대적 박탈감은 좀처럼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들만의 독식잔치 뒤에서 중소기업들은 눈물을 흘리고 있다. "재벌들이 저렇게 현금을 많이 쌓아놓고도 협력업체엔 그렇게 인색하다"는 불만이 터져나오는 이유를 알고도 남는다.
돈을 많이 번 재벌들은 계열사수 늘리기에 열중했다. 재벌의 고질병인 무차별적인 문어발 경영본능이 도진 것이다. 55개 기업집단의 계열사가 2007년 1196개에서 올해 1554개로 급증했다. 선단식 경영체제가 절정을 이룬 1997년 819개까지 이르렀으나 외환위기에 따른 구조조정을 거치면서 2000년 544개로 급감했다가 10년만에 다시 1500개를 넘어섰다.
계열사 증가 자체를 비난할 수는 없다. 전문화와 업종 다각화 등을 통해 시너지효과를 창출하거나 신성장동력에 진출하면서 자연스럽게 계열사수를 늘리는 것은 바람직하다. 문제는 미래 성장이나 주력사업과는 무관하게 무차별적으로 몸집을 불리는 행태다. "돈만 된다 하면 못할 것이 없다"는 탐욕을 드러낸 것으로 비난을 피할 길이 없다.
중소기업 고유업종제도와 출자총액제도의 폐지를 악용하여 중소기업 영역까지 거리낌 없이 뛰어들고 있다. 이 정부의 '비즈니스 프렌들리'정책도 대기업의 도적적 해이를 부추겼다. 피자 치킨 빵은 말할 것도 없고 가구 음식점 자전거 심지어는 생수와 막걸리까지 입맛 당기는대로 무한정 영토를 넓혀가고 있다. 중소기업이 천신만고 끝에 개발한 기술과 인력을 빼가기도 하고 납품단기를 후려치기도 하면서 목을 조르기 일쑤다. 중소기업의 생사여탈권을 재벌들이 쥐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돈 벌이 앞에 강자의 논리만 있을뿐 최소한의 도의도 시장질서도 안중에 없는 게 현실이다.
편법 상속 통해 세금 안 내고 부 대물림
더욱이 재벌가의 2~3세와 친인척들이 새 회사를 차리고 독점적으로 '일거리 밀어주기'를 자행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 같은 편법을 통해 상속 증여를 함으로써 세금 한푼 내지 않고 부를 대물림하는 전형적 수법이다. 재벌 가족기업들이 땅 짚고 헤엄치기 사업을 하는 뒷편에서는 생계를 위해 발버둥치는 중소기업이 눈물을 흘린다. 정도경영을 하는 기업까지 욕을 먹힌다.
재벌들이 말하는 '동반성장'은 이제 알고보니 재벌 계열사끼리의 동반성장을 이르는 것이었다. 그런 재벌은 초과이익공유제 제안을 '반시장'이라고 말할 자격이 없다. 이제 서민들의 삶을 보듬고 중소기업의 눈물을 닦아주는 재벌로 재탄생하기를 기대한다. 그것이 진정한 상생이고 동반성장이다. 재벌이 장수하는 비결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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