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로구 '노숙인축구단' 26일 창단
체력·협동심 기르는 지름길
쪽방에 살면서 인력시장에서 날품팔이를 하는 김씨, 일이 있으면 나가고 없으면 공원에서 술을 마시다 잠드는 이씨, 쉼터와 무료급식소를 전전하는 박씨…. 서울 구로지역에 둥지를 튼 노숙인들이 축구복을 입고 축구화를 신고 뛰게 됐다. 구로구가 지차제 가운데 처음으로 노숙인축구단인 '디딤돌축구단'을 만들어 26일 창단식을 앞두고 있다.
◆스스로를 다잡기 위해 = "처음 노숙생할을 시작할 때 앞날이 막막해 술만 마시고 무기력증에 빠지기 일쑤였습니다."
일자리를 잃고 아내와 헤어지면서 노숙을 시작했던 김 모(52)씨. 최근 딸과 함께 노숙인을 위한 임대아파트에 입주했지만 스스로를 다잡을 겸, '후배' 노숙인들에게 자신의 경험을 들려줄 겸 축구를 하기로 했다. 김씨는 "희망을 잃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며 "축구단은 그런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구로구는 지난 2월부터 구로리어린이공원 등 지역 내 노숙인 밀집지역을 순회하며 40·50대를 중심으로 축구단원을 모집했다. 지난달까지 보건소에서 건강검진을 마치고 이달부터는 매주 토요일 오전 계남근린공원과 안양천 축구장에서 정기연습을 하고 있다.
김씨를 비롯한 33명이 축구공에 '자활의지와 희망'을 걸겠다며 합류했다. 거리 노숙을 거쳐 노숙인 생활시설 등에서 오랜 생활을 해온 고 모(46)씨도 그 중 하나. 이달 초 축구를 시작하면서 일자리도 생겼다. 구청에서 노숙인 순찰과 단속 등 관리를 하는 공공근로자로 채용한 것. 고씨를 비롯한 축구단원 3명이 같은 일을 하고 있고 다른 2명은 공원 청소 등 공공근로로 매달 80만~90만원을 번다. 노숙인을 위한 임대주택에 거주하거나 자체적으로 숙소를 해결하고 있는 이들에게 축구와 공공근로라는 자활 동력이 생긴 셈이다.
저축과 교육 등을 통해 자립을 꿈꾸는 노숙인 모임 '해보자' 회원들도 축구단에 합류했다. 박노훈 '해보자' 운영위원장은 "이 성 구청장이 노숙인에 관심이 많다"며 "생활이 침체돼있는 노숙인들이 비노숙인과 대화하고 교류하면 달라지지 않겠느냐고 해서 공감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를 비롯한 7명이 축구단에서 뛰고 있다.
◆하나의 목표아래 단합 가능 = "(회원 중) 절반가량은 쉼터에 거주하거나 노숙인을 위한 임대주택과 임대아파트에 입주해 있지만 나머지는 주거지가 안정돼있지 않아 사실상 축구단 활동도 불안정합니다."
이동섭 구로구 자활지원팀장의 말처럼 공공근로를 하거나 지역자활센터 사업단에 소속돼 교육을 받는 등 생활이 어느 정도 안정된 이들은 기실 절반가량에 불과하다. 그러나 같은 옷을 입고 축구화를 신고 운동장을 뛰며 땀을 흘린다는 점에서 단원들 기대는 남다르다.
박노훈 운영위원장은 "우리가 언제 축구화를 신고 햇살 빛나는 잔디운동장을 뛰어봤겠느냐"며 "다들 점점 활기를 띠는 것같다"고 말했다.
훈련으로 땀을 흘린 뒤 함께 하는 해장국 한 그릇이 그들에게는 삶의 작은 기쁨이 된단다. 이동섭 팀장은 "가정해체나 경제적 파탄을 경험한 노숙인들이 땀을 흘리고 단체활동을 한다는 것 자체에 의미가 있다"며 "당장 큰 변화로 이어지지 않더라도 자신감 회복이나 긍정적인 마음가짐을 갖는데 효과가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임종배 서울시 자활지원과 주무관도 "노숙인시설 대항 축구대회를 두차례 진행했는데 처음에는 운동장 한바퀴도 뛰지 못하던 이들이 나중에는 너끈히 경기를 치러낸다"며 "건강도 좋아지지만 개인성향이 강한 노숙인들이 같은 옷을 입고 하나의 목표를 놓고 단합·협동한다는 더 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디딤돌축구단은 매주 토요일 훈련에 이어 6월 2일로 예정된 서울시 노숙인축구대회 참가 등 대외활동도 하게 된다. 26일에도 창단식 직후 설운도씨 등이 소속된 독수리연예인축구단과 친선경기가 예정돼있다. 구는 지속적인 건강관리와 취업교육과 함께 자활지원센터와 연계, 취업 알선도 할 계획이다.
김진명 기자 jm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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