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세 최영환씨 10년째 법적다툼 … "끝까지 싸운다"
종로구청, 패소해 명의 바꾼 업자에게 사업권 내줘
최근 부동산 침체로 재개발·재건축의 사업성이 낮아지면서 무분별한 개발이 불러온 피해가 속속 드러나고 있다.
정부와 건설사, 일부 개발지역 토지소유주들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져 전국에 불어닥친 재개발 열풍은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울 만큼 무리하게 진행됐다.
정부는 낙후된 지역을 개발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개발을 활성화하게끔 법률을 개정하고 '공공필요'의 범위를 크게 확장해 적용했다. 일정 기준 이상의 토지주 동의만 받으면 나머지 주민들의 의사는 무시된다. 무리한 재개발에 따른 피해와 문제점을 짚어봤다.
최영환(84) 미진통상 대표는 서울시 종로구 중학동에 짓고 있는 건물을 보면 하루에도 여러 번 가슴이 미어진다.
재개발이 한창인 중학동 77번지 일대 8163㎡(2474평) 부지에는 최 대표가 소유한 1775.6㎡(538평)의 땅이 강제로 수용돼 공사가 진행 중이다.
최 대표는 조선시대부터 중학동에 살고 있었던 처가 고택을 60여년 전 매입했고 인근 토지를 조금씩 사들였다. 최 대표는 중학동 뒤편 일본대사관이 국가의 정기를 빼앗고 있다며 중학동 일대에 고층건물을 세울 계획이었다. 풍수지리연구가들 사이에서는 '서울의 주산이 북한산이고 북한산의 정기는 경복궁(내명당)을 통해 기운이 뻗어나가다 동십자각에서 정점에 달하고 동십자각을 건넌 정기는 일본 대사관 자리에서 다시 정점을 이룬다'고 중학동 지역풍수를 풀이하고 있다.
동십자각은 서울 종로구 세종로에 있는 망루이며, 망루와 일본대사관을 잇는 중간에 중학동이 있다.
최 대표는 인근 토지를 더 사들여 높은 건물을 세우면 국가의 정기가 일본 대사관으로 흘러들어가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인근 주민들이 도무지 땅을 팔려고 하지 않아 더 이상 토지 매입을 못했다.
◆24평으로 시작, 사업권 따낸 개발업자 = 최 대표는 2002년 7월 KCD라는 개발시행사가 중학동 45-2번지(24.55평)를 매입해 인근 주민들로부터 개발동의를 받으러 다닐 때만 해도 사업이 진행될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조차 못했다.
최 대표는 "그냥 사기꾼이라고 생각했다. 20여평의 땅을 갖고서는 개발에 동의해주는 대가로 주민들에게 1000만원씩 주면서, 사업권을 따내면 시가의 3~4배에 땅을 사들이겠다고 했다"며 "당시엔 말이 안되는 얘기였다"고 말했다.
하지만 실현 불가능할 것 같던 일이 현실이 됐다. KCD는 정비구역 지정기간이 만료되기 직전, 종로구청에 토지면적 40.49%, 토지소유주 50% 미만의 동의율만 갖고 사업인가 신청을 냈다. 당연히 조건미달로 기각돼야 했다. 하지만 종로구청은 '조건부 인가'라는 선례를 찾아볼 수 없는 편법적인 결정을 내렸다. 조건은 도시계획심의를 거쳐 6개월 이내에 토지소유주 3분의 2이상의 동의를 얻으라는 것이었다. '선 인가, 후 주민동의'라는 이해하기 어려운 결정이었다.
KCD는 종로구청의 '조건부 인가'를 근거로 군인공제회로부터 680억원의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대출을 받았다. KCD는 대출금으로 2002년 11월 한달 동안 1284평의 토지를 집중 매입했다.
일이 이상하게 돌아가자 최 대표도 가만히 두고 볼 수 없게 됐다. 최 대표는 곧바로 법원에 재개발사업시행조건부가결처분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다행히 서울행정법원은 최 대표의 손을 들어줬다. 1·2심에 이어 대법원도 KCD가 전체 토지의 40.49%, 국공유지를 제외한 사유지의 29.73%에 불과한 동의율로 재개발사업을 진행할 수 없다는 결정을 내렸다.
대법원 판결이 나오기까지 3년 가까이 걸렸다. 그 동안 최 대표가 입은 마음의 상처는 컸다.
◆종로구청에 의해 다시 가로막힌 최 대표 = 최 대표는 대법원에서 승소 판결이 확정되자 종로구청에 건축허가를 신청했다. 대법원 판결로 사업시행인가가 취소됐고 결과적으로 중학동의 도시개발 정비구역 지정 기간이 끝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종로구청은 건축허가를 내주지 않았다. 사업시행인가 취소가 곧바로 정비구역 지정 취소는 아니라는 이유였다. 건축허가를 받기 위해서는 사업시행 인가를 받으라는 게 종로구청의 답변이었다.
하지만 최 대표는 정비구역 전체에 대한 사업을 시행할 마음이 없었다. 그는 "재개발은 100년 미래를 내다보고 하는 것이기 때문에 함부로 할 수 없는 것"이라며 "580평 토지에 대해서만 건물을 짓고 싶었다"고 말했다. 또한 그 때는 KCD가 인크레스코로 법인명의를 바꾼 다음 토지소유자들의 동의를 구하고 있던 시기라 최 대표가 그들과 경쟁하기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재개발 요건완화 법개정이 직격탄 = KCD는 인크레스코로 법인명의를 바꾼 다음에도 사업을 포기하지 않고 토지주들의 동의를 구했다. 2007년 10월 인크레스코는 토지면적 78%에 대해 소유자 동의를 얻은 자료와 함께 사업시행 인가 신청을 종로구청에 냈다. 종로구청은 다음해인 2008년 2월 사업시행 인가 결정을 내렸다.
인가 신청을 구청에 낼 당시만 해도 도정법(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에는 조합설립인가 기준이 토지 등 소유자 5분의 4 이상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고 돼 있다. 이 기준으로는 인가결정이 나올 수 없다. 하지만 도정법이 그해 12월 개정되면서 인가 기준이 5분의 4에서 4분의 3으로 완화됐다. 재개발·재건축을 보다 쉽게 하도록 한 것이다.
종로구청은 새로운 기준을 적용, 2002년에 이어 다시 한번 같은 개발업자에게 사업시행인가를 내줬다. 최 대표 입장에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고 하늘이 무너지는 일이었다.
개발업자가 토지소유자의 동의를 얻은 면적은 62%에 불과했다. 재개발지역에서 도로가 차지하는 면적이 16%인데 종로구청이 도로를 재개발사업시행자에게 포함시켜줬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최 대표는 "구청이 민간 개발업자와 한통속이 돼 개인 소유 토지를 빼앗은 것이나 다름없는 일"이라며 분통을 터트렸다.
최 대표는 종로구청을 상대로 사업인가처분취소소송을 지난 2008년에 냈지만 1심과 2심에서 패소했다. 대법원의 최종 결과만 남겨놓고 있다. 그 사이 재개발 공사는 시작됐고 최 대표의 땅은 강제수용됐다. 최 대표에게는 은행에 입금된 공탁금 260여억원을 찾아가라는 연락만 온 상태다. 인근 청진동이 재개발시행업자에게 1평당 2억2400만원에 수용된 것과 비교하면 상당한 차이다. 중학동은 청진동보다 입지가 좋은데도 불구하고 공시지가 수준인 평당 4000여만원에 수용된 셈이다.
최 대표는 "보상이 적고 많음의 문제가 아니다 "며 "땅을 되찾을 때까지 공탁금을 찾지 않고 끝까지 싸우겠다"고 말했다.
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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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구청, 패소해 명의 바꾼 업자에게 사업권 내줘
최근 부동산 침체로 재개발·재건축의 사업성이 낮아지면서 무분별한 개발이 불러온 피해가 속속 드러나고 있다.
정부와 건설사, 일부 개발지역 토지소유주들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져 전국에 불어닥친 재개발 열풍은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울 만큼 무리하게 진행됐다.
정부는 낙후된 지역을 개발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개발을 활성화하게끔 법률을 개정하고 '공공필요'의 범위를 크게 확장해 적용했다. 일정 기준 이상의 토지주 동의만 받으면 나머지 주민들의 의사는 무시된다. 무리한 재개발에 따른 피해와 문제점을 짚어봤다.
최영환(84) 미진통상 대표는 서울시 종로구 중학동에 짓고 있는 건물을 보면 하루에도 여러 번 가슴이 미어진다.
재개발이 한창인 중학동 77번지 일대 8163㎡(2474평) 부지에는 최 대표가 소유한 1775.6㎡(538평)의 땅이 강제로 수용돼 공사가 진행 중이다.
최 대표는 조선시대부터 중학동에 살고 있었던 처가 고택을 60여년 전 매입했고 인근 토지를 조금씩 사들였다. 최 대표는 중학동 뒤편 일본대사관이 국가의 정기를 빼앗고 있다며 중학동 일대에 고층건물을 세울 계획이었다. 풍수지리연구가들 사이에서는 '서울의 주산이 북한산이고 북한산의 정기는 경복궁(내명당)을 통해 기운이 뻗어나가다 동십자각에서 정점에 달하고 동십자각을 건넌 정기는 일본 대사관 자리에서 다시 정점을 이룬다'고 중학동 지역풍수를 풀이하고 있다.
동십자각은 서울 종로구 세종로에 있는 망루이며, 망루와 일본대사관을 잇는 중간에 중학동이 있다.
최 대표는 인근 토지를 더 사들여 높은 건물을 세우면 국가의 정기가 일본 대사관으로 흘러들어가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인근 주민들이 도무지 땅을 팔려고 하지 않아 더 이상 토지 매입을 못했다.
◆24평으로 시작, 사업권 따낸 개발업자 = 최 대표는 2002년 7월 KCD라는 개발시행사가 중학동 45-2번지(24.55평)를 매입해 인근 주민들로부터 개발동의를 받으러 다닐 때만 해도 사업이 진행될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조차 못했다.
최 대표는 "그냥 사기꾼이라고 생각했다. 20여평의 땅을 갖고서는 개발에 동의해주는 대가로 주민들에게 1000만원씩 주면서, 사업권을 따내면 시가의 3~4배에 땅을 사들이겠다고 했다"며 "당시엔 말이 안되는 얘기였다"고 말했다.
하지만 실현 불가능할 것 같던 일이 현실이 됐다. KCD는 정비구역 지정기간이 만료되기 직전, 종로구청에 토지면적 40.49%, 토지소유주 50% 미만의 동의율만 갖고 사업인가 신청을 냈다. 당연히 조건미달로 기각돼야 했다. 하지만 종로구청은 '조건부 인가'라는 선례를 찾아볼 수 없는 편법적인 결정을 내렸다. 조건은 도시계획심의를 거쳐 6개월 이내에 토지소유주 3분의 2이상의 동의를 얻으라는 것이었다. '선 인가, 후 주민동의'라는 이해하기 어려운 결정이었다.
KCD는 종로구청의 '조건부 인가'를 근거로 군인공제회로부터 680억원의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대출을 받았다. KCD는 대출금으로 2002년 11월 한달 동안 1284평의 토지를 집중 매입했다.
일이 이상하게 돌아가자 최 대표도 가만히 두고 볼 수 없게 됐다. 최 대표는 곧바로 법원에 재개발사업시행조건부가결처분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다행히 서울행정법원은 최 대표의 손을 들어줬다. 1·2심에 이어 대법원도 KCD가 전체 토지의 40.49%, 국공유지를 제외한 사유지의 29.73%에 불과한 동의율로 재개발사업을 진행할 수 없다는 결정을 내렸다.
대법원 판결이 나오기까지 3년 가까이 걸렸다. 그 동안 최 대표가 입은 마음의 상처는 컸다.
◆종로구청에 의해 다시 가로막힌 최 대표 = 최 대표는 대법원에서 승소 판결이 확정되자 종로구청에 건축허가를 신청했다. 대법원 판결로 사업시행인가가 취소됐고 결과적으로 중학동의 도시개발 정비구역 지정 기간이 끝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종로구청은 건축허가를 내주지 않았다. 사업시행인가 취소가 곧바로 정비구역 지정 취소는 아니라는 이유였다. 건축허가를 받기 위해서는 사업시행 인가를 받으라는 게 종로구청의 답변이었다.
하지만 최 대표는 정비구역 전체에 대한 사업을 시행할 마음이 없었다. 그는 "재개발은 100년 미래를 내다보고 하는 것이기 때문에 함부로 할 수 없는 것"이라며 "580평 토지에 대해서만 건물을 짓고 싶었다"고 말했다. 또한 그 때는 KCD가 인크레스코로 법인명의를 바꾼 다음 토지소유자들의 동의를 구하고 있던 시기라 최 대표가 그들과 경쟁하기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재개발 요건완화 법개정이 직격탄 = KCD는 인크레스코로 법인명의를 바꾼 다음에도 사업을 포기하지 않고 토지주들의 동의를 구했다. 2007년 10월 인크레스코는 토지면적 78%에 대해 소유자 동의를 얻은 자료와 함께 사업시행 인가 신청을 종로구청에 냈다. 종로구청은 다음해인 2008년 2월 사업시행 인가 결정을 내렸다.
인가 신청을 구청에 낼 당시만 해도 도정법(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에는 조합설립인가 기준이 토지 등 소유자 5분의 4 이상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고 돼 있다. 이 기준으로는 인가결정이 나올 수 없다. 하지만 도정법이 그해 12월 개정되면서 인가 기준이 5분의 4에서 4분의 3으로 완화됐다. 재개발·재건축을 보다 쉽게 하도록 한 것이다.
종로구청은 새로운 기준을 적용, 2002년에 이어 다시 한번 같은 개발업자에게 사업시행인가를 내줬다. 최 대표 입장에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고 하늘이 무너지는 일이었다.
개발업자가 토지소유자의 동의를 얻은 면적은 62%에 불과했다. 재개발지역에서 도로가 차지하는 면적이 16%인데 종로구청이 도로를 재개발사업시행자에게 포함시켜줬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최 대표는 "구청이 민간 개발업자와 한통속이 돼 개인 소유 토지를 빼앗은 것이나 다름없는 일"이라며 분통을 터트렸다.
최 대표는 종로구청을 상대로 사업인가처분취소소송을 지난 2008년에 냈지만 1심과 2심에서 패소했다. 대법원의 최종 결과만 남겨놓고 있다. 그 사이 재개발 공사는 시작됐고 최 대표의 땅은 강제수용됐다. 최 대표에게는 은행에 입금된 공탁금 260여억원을 찾아가라는 연락만 온 상태다. 인근 청진동이 재개발시행업자에게 1평당 2억2400만원에 수용된 것과 비교하면 상당한 차이다. 중학동은 청진동보다 입지가 좋은데도 불구하고 공시지가 수준인 평당 4000여만원에 수용된 셈이다.
최 대표는 "보상이 적고 많음의 문제가 아니다 "며 "땅을 되찾을 때까지 공탁금을 찾지 않고 끝까지 싸우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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