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은 제가 걸을 수 없다는 사실을 눈이 크고 작은, 키가 크고 작은 정도의 개성으로 여겼고 함께 뛰어 놀지는 못하지만 앉아서 놀았습니다. 하지만 점차 경험의 범위와 깊이가 달라지면서 어쩔 수 없이 다른 존재가 되어감을 느낍니다."
19일 오전 서울 송파구 장지동 가든파이브 광장. 휠체어에 앉은 1급 지체장애 오한나(18·영동일고 2) 학생이 장애라는 '차이'를 장애에 대한 '차별'로 바꾸어버리는 우리 사회를 이야기한다. 그는 "다양한 개성이 존중되는 시대이지만 '장애'는 너무 튀는 개성인 거냐"고 반문했다.
◆'비장애인은 모르는' 이야기 = 장애인의 날을 하루 앞둔 19일 송파구에서 눈길 끄는 행사가 열렸다. 장애인 자유발언대회. 장애인의 날 기념행사를 장애인들이 꾸미도록 맡겼더니 서울장애인인권부모회에서 장애인 스스로 대중 앞에서 자신의 속내를 이야기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했다. 장애인에게는 자신감을, 비장애인에게는 '조금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는 시간이다.
오한나 학생을 비롯해 지체 자폐 청각 시각 등 분야별 장애인 7명이 발언대에 섰다. 이들은 장애인으로 살아가는 일상생활부터 정부와 지자체의 장애인정책까지 '비장애인은 모르는'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놨다.
장애인들이 느끼는 '생활의 불편'과 '장애=불행·무능력'이라는 사회적 편견에 대한 지적이 다수였다. 1급 청각장애를 가진 김영선(57·송파동)씨는 "병원에 가면 수화통역이 답답할 때가 많고 자막이 없는 한국영화를 볼 때면 그냥 멍하게 화면만 보다가 잠들고 만다"고 말했다.
2급 지적장애인 서영우(45·가락동)씨는 편견없는 시선을 요구했다. 그는 "지적장애인들은 '사람이 먼저'인 삶을 살아가면서 소중한 인생이 무엇인지 각자 알고 있다"며 "정부도 정치인도 지적장애인에게 배울 점이 많다는 걸 알아주었으면 한다"고 호소했다.
2급 자폐장애를 가진 정유진(22·가락2동)씨는 송파우체국 우편물류과에서 하루 4시간 우편물 분류작업을 하고 주말이면 다른 장애인 친구들과 만나 한주간을 돌이키는 일상을 들려주었다. "열심히 일해서 저축하고 맛있는 거 사먹고 컴퓨터도 사고 여행도 가고 싶다"는 천진난만한 정씨의 발언은 '장애=불행'이라는 정형화된 편견을 씻기에 충분했다.
◆제도적 지원, 아직도 부족 = "목걸이 팔찌를 잘 만들고 만드는 걸 좋아하는데 직장이 연결되지 않아요. 이유를 모르겠어요. 편하게 일할 수 있는 곳이 있으면 좋겠어요."
2급 지적장애를 가진 장수현(37·거여동)씨처럼 일자리를 비롯해 주거 등 제도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지체1급인 송용헌(57·문정동)씨는 장애인생활시설에서 나와 3년째 자립생활을 하고 있지만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지원이 끝나는 내년 11월부터가 걱정이다. 그는 "시설에서는 한번 나오면 다시 받아주지 않기 때문에 돌아갈 수도 없다"며 "송파구에서 당당한 주민으로 살고 싶다"고 말했다.
시각1급 장애가 있는 정명순(43·오금동)씨는 정부와 지자체에서 지원하는 장애인활동보조서비스와 관련, "시간이 부족해서 혼자다니는 때가 많다"며 "흰 지팡이를 짚고 서성대는 사람이 있다면 망설이지 말고 다가가 도움을 달라"고 요청했다.
장애인들이 들려준 그네들의 이야기는 참석자들에게 잔잔한 파문을 일으켰다. 조미영 서울장애인인권부모회 사무국장은 "장애 자녀를 둔 부모지만 당사자 입장을 몰랐구나 싶었다"고 털어놨다. 오한나 학생은 "장애인들이 말할 기회가 주어져 좋았다"면서도 "행사가 끝난 뒤에는 원점으로 돌아오고 마는 일이 되풀이되지 않았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김진명 기자 jm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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