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탈춤 페스티벌2001과 유교축제가 안동 강변 축제장에서 다양하면서도 화려하게 펼쳐졌었다. 또 먹고 마시는 먹거리 장터가 옛 강변도로에서 열려 사람들의 즐거움을 한층 더 할 때 한편에선 울고 있는 벚나무들이 있었다.
못난 인간들이 옭아맨 벚나무
옛 강변 도로의 강변 쪽에 심겨졌던 벚나무는 축제장이 마련되면서 지금은 길과 축제장 사이에 서게 되었다. 새로 축제장을 정비하면서 벚나무 주위에 흙을 채우기 위해 나무 주위에 콘크리트로 원통과 사각통을 만들었다. 사람들이 소견머리 없이 벚나무를 보호한다고 만든 콘크리트 통이 도리어 벚나무를 옭아매는 도구가 되어버린 것이다. 콘크리트 통에는 사람들이 버린 쓰레기와 오물은 물론 폐자재로 나무가 더 이상 숨 쉴 수 없게 되었다. 거기다가 배수구까지 없어 축제장에 새로 마련된 식당들의 하수가 모두 이곳에 버려져 나무의 고통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차라리 보기에 좀 흉하더라도 긴 고랑을 그대로 두었더라면 나았을 일이다.
경상북도 구미시 금오산 밑에 있는 경상북도교육연수원에 들어서면 눈에 띄는 것이 있다. 마당 오른 쪽에는 농촌 마을 입구에서나 볼 수 있는 아담한 노송 세 그루가 바로 그것이다. 삭막한 시멘트 공간을 아늑하게 만들어 주고 있다. 처음엔 소나무 주위에 연못처럼 움푹 파져 있어 이상하게 생각했다. 무심코 보면‘왜 저렇게 웅덩이를 파서 나무를 심었을까’하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거기에는 이 연수원을 지은 사람의 나무를 사랑하는 깊은 뜻이 숨어 있었다. 연수원을 짓기 위해 터를 닦을 때부터 그 자리에 자라고 있던 소나무와 감나무를 살리려는 배려가 있었던 것이다. 소나무가 섰던 자리를 남겨 두고 흙을 채우니 자연스럽게 웅덩이가 생겼다. 이러한 작은 생각이 지금에 와서는 늘 푸른 소나무를 볼 수 있게 했고, 가을에는 탐스럽게 익은 붉은 감과 단풍을 함께 볼 수 있는 혜택을 주었다. 낙동강변 벚나무도 이런 사람의 도움을 받았으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나라에 자생하는 벚나무
해방이 되자 벚나무를 모두 캐어 버리거나 베어내는 일이 있었다. 이유는 일본의 국화라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벚나무는 일본의 국화이기 이전에 우리나라에 자생하던 나무였다.
해방이 되어 모질고 모질던 식민지에서 벗어나자 사람들은 일장기를 버리고 태극기를 달았고, 사꾸라(벚나무)를 캐내고 무궁화를 심었다. 독립만세를 외치며 정신없이 벚나무를 캐내던 사람들은 이듬해 봄이 되어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봄 산천에 벚나무가 그대로 남아 꽃을 피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고놈의 왜놈들이 산에까지 벚나무를 심었을 까닭은 없는데 어찌해서 온산을 뒤덮고 있단 말인가?
뒤늦게 벚나무가 본래부터 우리 산천에 있었던 것이란 걸을 알고는 일부 남은 벚나무는 베어내지 않고 남겨 두었던 것이다. 봄이면 우리 강산에는 연초록 잎과 벚꽃, 산살구, 산복사꽃이 온 산천을 장식했었다. 가까운 길안천만 가더라도 봄 산 벚꽃의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할 수 있다. 해방직후 무심코 범했던 일들이 강변의 벚나무를 보호하기 위해 만든 콘크리트 원통 옹벽과 일맥상통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볼 일이다. 지금 낙동 강변에는 탈춤 축제장과 학생수련원이 이미 완공되었고 실내체육관과 천리천 복개 공사가 한창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공사를 하면서 기존에 있던 벚나무가 많이 훼손되고 있다. 10여전에 심은 메타세쿼이아는 30m가 넘는 높은 교목으로 하늘을 덮고 자라는데 그늘에 가린 벚나무가 점점 세력을 잃어가고 있는 것도 큰 문제다. 안동시민의 휴식공간이자 정서 정화의 공간이 되는 강변의 벚나무 숲을 보호하는 일은 아주 시급하다고 본다.
작년 여름에 문화재 답사를 위해 청도로 가던 중 경산시내 도로 한 가운데에서 죽은 회나무가 보호되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 참 이상한 일이다. 죽은 나무인데 밀어버리면 될 것을 교통에 불편하게 그냥 두다니 하는 생각을 했다. 이 경산 청도 간 도로를 개설하면서 시들어 가는 회나무를 베려는 건설업자와 마을 주민 사이에 실랑이가 벌어졌다. 당시 김휘동 경산 시장(현재 도의회 사무처장)은 주민들의 편을 들어 길을 돌리게 했다는 주민들의 이야기다. 안동 군수를 지낸 바 있는 김 시장은 나무와 문화에 남다른 시각을 가지고 있었다.
“회나무는 군 현이 있던 자리나 큰 마을 앞에 많이 심었던 나무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그런지 경산시의 이 회나무도 경산읍 중앙에 위치하고 있어 옛날 경산현이 있었던 자리를 알려주는 역사적 증거물의 하나로 보여진다. 비록 죽은 나무라도 역사를 가지고 있다면 보존되어야 한다. 그 이유는 오래도록 조상들이 쌓아 온 것이기 때문이다”라는 말을 일러주었다.
독일에는 플라타너스를 가로수로 많이 심고, 칠레 수도는 아카시아를 이탈리아에는 뽕나무를 가로수로 심는다고 한다. 결국 나무의 수종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가꾸냐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꽃가루가 날린다고 모두 베어버린 버드나무도 아름다움과 그늘을 주고 물을 정화하는 기능까지 가지고 있다. 역사가 있는 나무들은 모두가 오랜 시간을 살아온 조상들의 지혜가 담겨져 있는 나무들이다. 나무를 심거나 베어내는데 좀더 신중했으면 한다.
문화재 관리 위원 J씨는 자신이 문화재청에 있을 때 도산서원을 보수하면서 옛날의 나지막한 돌담이 너무 초라해서 모두 헐어버리고 화강암으로 궁궐식 담장으로 바꿔버린 것이 인생에서 가장 후회되는 일이라고 한다. 우선 신나고 좋은 것이 때로는 중요한 그 무엇을 잃어버리게 하는 것이 많다.
좀더 생각한다면 강변의 벚나무도 잘 보존될 수 있으리라 본다. 내년에도 그 이듬해도 또 그 후년에도 벚꽃이 만개한 거리를 걸을 수 있기를 기대하면서 ‘나무에도 역사와 문화가 있다’는 말을 다시 한번 되새긴다.
김호태(경일고 교사)
* 이 글은 안동문화지킴이 [사람과 문화]에 실린 글을 새롭게 정리한 것입니다.
못난 인간들이 옭아맨 벚나무
옛 강변 도로의 강변 쪽에 심겨졌던 벚나무는 축제장이 마련되면서 지금은 길과 축제장 사이에 서게 되었다. 새로 축제장을 정비하면서 벚나무 주위에 흙을 채우기 위해 나무 주위에 콘크리트로 원통과 사각통을 만들었다. 사람들이 소견머리 없이 벚나무를 보호한다고 만든 콘크리트 통이 도리어 벚나무를 옭아매는 도구가 되어버린 것이다. 콘크리트 통에는 사람들이 버린 쓰레기와 오물은 물론 폐자재로 나무가 더 이상 숨 쉴 수 없게 되었다. 거기다가 배수구까지 없어 축제장에 새로 마련된 식당들의 하수가 모두 이곳에 버려져 나무의 고통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차라리 보기에 좀 흉하더라도 긴 고랑을 그대로 두었더라면 나았을 일이다.
경상북도 구미시 금오산 밑에 있는 경상북도교육연수원에 들어서면 눈에 띄는 것이 있다. 마당 오른 쪽에는 농촌 마을 입구에서나 볼 수 있는 아담한 노송 세 그루가 바로 그것이다. 삭막한 시멘트 공간을 아늑하게 만들어 주고 있다. 처음엔 소나무 주위에 연못처럼 움푹 파져 있어 이상하게 생각했다. 무심코 보면‘왜 저렇게 웅덩이를 파서 나무를 심었을까’하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거기에는 이 연수원을 지은 사람의 나무를 사랑하는 깊은 뜻이 숨어 있었다. 연수원을 짓기 위해 터를 닦을 때부터 그 자리에 자라고 있던 소나무와 감나무를 살리려는 배려가 있었던 것이다. 소나무가 섰던 자리를 남겨 두고 흙을 채우니 자연스럽게 웅덩이가 생겼다. 이러한 작은 생각이 지금에 와서는 늘 푸른 소나무를 볼 수 있게 했고, 가을에는 탐스럽게 익은 붉은 감과 단풍을 함께 볼 수 있는 혜택을 주었다. 낙동강변 벚나무도 이런 사람의 도움을 받았으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나라에 자생하는 벚나무
해방이 되자 벚나무를 모두 캐어 버리거나 베어내는 일이 있었다. 이유는 일본의 국화라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벚나무는 일본의 국화이기 이전에 우리나라에 자생하던 나무였다.
해방이 되어 모질고 모질던 식민지에서 벗어나자 사람들은 일장기를 버리고 태극기를 달았고, 사꾸라(벚나무)를 캐내고 무궁화를 심었다. 독립만세를 외치며 정신없이 벚나무를 캐내던 사람들은 이듬해 봄이 되어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봄 산천에 벚나무가 그대로 남아 꽃을 피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고놈의 왜놈들이 산에까지 벚나무를 심었을 까닭은 없는데 어찌해서 온산을 뒤덮고 있단 말인가?
뒤늦게 벚나무가 본래부터 우리 산천에 있었던 것이란 걸을 알고는 일부 남은 벚나무는 베어내지 않고 남겨 두었던 것이다. 봄이면 우리 강산에는 연초록 잎과 벚꽃, 산살구, 산복사꽃이 온 산천을 장식했었다. 가까운 길안천만 가더라도 봄 산 벚꽃의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할 수 있다. 해방직후 무심코 범했던 일들이 강변의 벚나무를 보호하기 위해 만든 콘크리트 원통 옹벽과 일맥상통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볼 일이다. 지금 낙동 강변에는 탈춤 축제장과 학생수련원이 이미 완공되었고 실내체육관과 천리천 복개 공사가 한창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공사를 하면서 기존에 있던 벚나무가 많이 훼손되고 있다. 10여전에 심은 메타세쿼이아는 30m가 넘는 높은 교목으로 하늘을 덮고 자라는데 그늘에 가린 벚나무가 점점 세력을 잃어가고 있는 것도 큰 문제다. 안동시민의 휴식공간이자 정서 정화의 공간이 되는 강변의 벚나무 숲을 보호하는 일은 아주 시급하다고 본다.
작년 여름에 문화재 답사를 위해 청도로 가던 중 경산시내 도로 한 가운데에서 죽은 회나무가 보호되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 참 이상한 일이다. 죽은 나무인데 밀어버리면 될 것을 교통에 불편하게 그냥 두다니 하는 생각을 했다. 이 경산 청도 간 도로를 개설하면서 시들어 가는 회나무를 베려는 건설업자와 마을 주민 사이에 실랑이가 벌어졌다. 당시 김휘동 경산 시장(현재 도의회 사무처장)은 주민들의 편을 들어 길을 돌리게 했다는 주민들의 이야기다. 안동 군수를 지낸 바 있는 김 시장은 나무와 문화에 남다른 시각을 가지고 있었다.
“회나무는 군 현이 있던 자리나 큰 마을 앞에 많이 심었던 나무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그런지 경산시의 이 회나무도 경산읍 중앙에 위치하고 있어 옛날 경산현이 있었던 자리를 알려주는 역사적 증거물의 하나로 보여진다. 비록 죽은 나무라도 역사를 가지고 있다면 보존되어야 한다. 그 이유는 오래도록 조상들이 쌓아 온 것이기 때문이다”라는 말을 일러주었다.
독일에는 플라타너스를 가로수로 많이 심고, 칠레 수도는 아카시아를 이탈리아에는 뽕나무를 가로수로 심는다고 한다. 결국 나무의 수종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가꾸냐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꽃가루가 날린다고 모두 베어버린 버드나무도 아름다움과 그늘을 주고 물을 정화하는 기능까지 가지고 있다. 역사가 있는 나무들은 모두가 오랜 시간을 살아온 조상들의 지혜가 담겨져 있는 나무들이다. 나무를 심거나 베어내는데 좀더 신중했으면 한다.
문화재 관리 위원 J씨는 자신이 문화재청에 있을 때 도산서원을 보수하면서 옛날의 나지막한 돌담이 너무 초라해서 모두 헐어버리고 화강암으로 궁궐식 담장으로 바꿔버린 것이 인생에서 가장 후회되는 일이라고 한다. 우선 신나고 좋은 것이 때로는 중요한 그 무엇을 잃어버리게 하는 것이 많다.
좀더 생각한다면 강변의 벚나무도 잘 보존될 수 있으리라 본다. 내년에도 그 이듬해도 또 그 후년에도 벚꽃이 만개한 거리를 걸을 수 있기를 기대하면서 ‘나무에도 역사와 문화가 있다’는 말을 다시 한번 되새긴다.
김호태(경일고 교사)
* 이 글은 안동문화지킴이 [사람과 문화]에 실린 글을 새롭게 정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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