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회 바다의 날 특별기고] 99년 전 타이타닉호 사고를 되돌아보며

지역내일 2011-05-30 (수정 2011-05-30 오후 5:31:29)

임기택 중앙해양안전심판원장


(99년 전 4월 15일, 지구 반대편에서 역사적으로 가장 참혹한 해양사고가 발생했다. 1500여명의 인명손실을 가져온 타이타닉호의 침몰. 이로 인해 조선ㆍ해양 분야에서 바이블과도 같은 '해상인명안전협약'(SOLAS)이 만들어지고, UN 산하 국제해사기구(IMO)의 출범을 촉진시키게 됐다. 바다의 날을 맞아 해양사고의 원인을 규명하는 전문기관인 해양안전심판원의 시각에서 99년 전 타이타닉호 침몰사고를 재조명해 보고자 한다.)

2223여명의 승객들 중 700여명만이 구조됐다는 것은
구명시스템에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타이타닉호의 구명정 정원수는 1176명이었다.

타이타닉호는 아일랜드 벨파스트 소재 하랜드앤울프조선소에서 1911년 5월 31일 진수됐다. 1912년 3월 내부 의장공사를 마치고 4월 2일 사우샘프턴에 입항해 대서양 횡단항로에 취항했다.

프랑스 쉘부르항을 거쳐 1912년 4월 11일 오후 1시 30분 아일랜드 퀸즈타운을 출항한 타이타닉호는 세계 최고 호화여객선의 처녀항해에 승선한 1등실 승객의 자부심과 미국에서의 또 다른 삶을 개척하기 위해 승선한 3등실 여객들의 꿈을 싣고 뉴욕으로 역사적인 항해를 시작했다.

1912년 4월은 따뜻한 날씨가 계속되어 항해하기에는 좋은 기상 상태였다. 그러나 이런 날씨 탓에 그린란드로부터 떨어져 나온 빙산들이 남쪽으로 표류하는 일이 잦았고 당시 방대한 빙원이 북위 46도~41도와 서경 46도~50도 사이에 존재하고 있었다.

타이타닉호는 북위 42도, 서경 47도의 해점(海點)까지는 대권항법으로, 이후에는 항정선항법으로 미국 연안의 '난투킷 소울'을 거쳐 뉴욕에 입항할 계획이었으므로, 결과적으로 출항 시점부터 유빙을 가로지르는 위험에 노출된 상황이었다.

그러나 바다는 맑고 평온했다. 타이타닉호는 첫째 날은 464마일, 둘째 날은 519마일, 셋째 날인 일요일 정오까지는 546마일을 항해했다. 타이타닉호는 아마 24노트까지 속력을 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일부 승객들 사이에서 떠돌던 소문과는 달리, 당시 타이타닉호는 기록경신을 시도하지 않았다. 큐나드사의 모레타니아호가 이미 26노트를 기록했는데, 이 기록을 경신하기는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1912년 4월 14일 일요일, 승객들과 승무원들은 여느 때처럼 평온한 오전을 즐기고 있었다. 오전 9시경 카로니아호의 선장으로부터 메시지가 도착했다. '타이타닉호 선장, 미국향(向) 기선들의 보고에 의하면 북위 42도와 서경 49도부터 서경 51도 사이에 유빙이 발견되고 있음.'

이 메시지는 당시 선교에 있던 선장에게 전달됐고, 선장은 항해사들에게 내용을 알린 후, 10시 30분 종교행사 참여를 위해 선교를 떠났다. 이후 5차례의 유빙경고 메시지를 더 수신하지만, 어느 누구도 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당시 타이타닉호에 승선했던 두 명의 통신사들은 승객들의 개인 메시지 송신을 위해 바쁘게 일하고 있었다. 이들은 봄철 북대서양을 항해할 때 송신되는 유빙 경고를 의례적인 것으로 생각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을 것으로 추정된다.

9시 40분 미국향(向) 선박인 메사바호로부터 6번째 메시지가 들어왔다. 북위 42도에서 41도25분까지 그리고 서경49도에서 50도30분까지 유빙이 발견됐다는 보고서였다.

그러나 통신장은 근처에 레이스곶 무선국이 있는 관계로 낮에 쌓였던 메시지를 전송하느라 바빠 이를 선교로 전달하지 못했다. 1912년 4월 14일 저녁 11시경, 통신실에 근무하고 있던 통신장에게 근처에 있던 캘리포니안호로부터 갑작스런 무선통신이 접수됐다. '우리는 지금 유빙에 갇혀 움직이지 못하고 있음.'

귀청이 떨어질 정도의 큰 소리에 화가 난 통신장은 '조용히 하세요! 당신은 지금 나의 신호를 방해하고 있습니다. 나는 지금 레이스곶과 통신하느라 바쁩니다!'라고 하면서 이 무선통신을 무시해버렸다. 당시 캘리포니안호는 타이타닉호에서 북쪽으로 20마일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다.

1912년 4월 14일 11시 40분, 쌍안경도 없이 선수 마스트에서 근무하고 있던 견시원의 눈에 산봉우리 모양의 검은색 물체가 다가오는 것이 발견됐다. 견시원은 즉시 이를 선교에 알렸다. 연락을 받은 일등항해사는 빙산과 정면충돌을 막기 위해 22.5노트의 속력으로 항해하던 타이타닉호를 우현으로 꺾고, 전속후진을 명령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그것은 최악의 시나리오가 되고 말았다.

견시원의 최초 경고 후 40초가 지나자 뱃머리에서 험악한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와 함께 타이타닉호의 종말이 시작됐다. 뱃머리에서 우현으로 철판 약 90미터가 찢어지고 5개의 수밀구획이 침수된 것이다.

15일 새벽 2시 20분 경, 당시 세계 최고의 기술로 건조된 초호화여객선 타이타닉호는 사우샘프턴을 떠난 지 불과 4일 17시간 30분만에 뉴펀들랜드 세인트존으로부터 동남쪽 375마일 해상에서 두동강이 났다. 뱃머리 쪽이 먼저 물에 잠겼고, 이어 배 후미부가 위로 높이 치솟았다가 깊고 찬 밤바다 속으로 가라앉고 말았다.


인적 과실과 안전관리시스템의 부재

타이타닉호의 가장 핵심적인 사고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첫째, 빙산의 존재에 대한 정보가 계속 제공되고 있었으므로 가장 중요한 사고 원인은 안전정보의 보고체계 미흡과 대응 부족이라고 볼 수 있다.

둘째로 전방을 경계하던 선원들의 경계 부적절을 들 수 있다. 경계 선원들은 쌍안경을 소지하지 아니한 채 경계에 임했다. 물론 야간항해였고 달빛 하나 없는 그믐밤(사고일은 음력 2월 28일)이었으며, 여객선의 밝은 불빛으로 인해 주위 상황에 대한 경계가 쉽지 않은 상황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당시 시정이나 해상상황이 양호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주변 물체를 발견하는 것이 전혀 불가능한 조건은 아니었을 것이다. 또한, 사전에 빙산에 관한 경고를 해당 선원들에게 제공해 경각심을 갖게 했더라면 충분한 거리를 두고 대형 빙산을 발견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불충분한 구명설비와 퇴선훈련 미실시

타이타닉호 사고는 1500여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는 점에서 문제가 된다.

빙산 충돌 후 침몰까지 2시간 40분밖에 걸리지 않았으니 빠른 속도로 선박의 침몰이 진행됐다고 볼 수는 있지만, 2223여명의 승객들 중 700여명만이 구조됐다는 것은 구명시스템에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타이타닉호의 구명정 정원수는 1176명이었다.

타이타닉호는 당시 최고의 기술로 건조된 선박이었다. 이중저(二重低) 구조에 16개의 수밀구획으로 나눠져 있었고 수밀격벽에는 침수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센서(Float)를 부착했으며 자동수밀문 장착으로 선교에서 원격조종이 가능한 배였다.

그러나 수밀격벽(물을 차단하는 벽)의 높이가 10피트밖에 되지 않는 구조적 문제를 내재하고 있었다. 1862년 빙산과 충돌했던 그레이트 이스턴호는 수밀격벽이 30피트로 제작됐는데, 55m × 3m의 균열이 발생해 침수됐지만 침몰하지는 않았다.


SOLAS의 탄생과 IMO의 출범

1912년 타이타닉호가 침몰한 후, 영국에서는 해난심판이 열려 사고조사를 실시하게 됐다. 1913년 제기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영국 런던에서 처음 회의를 개최한 후, 1914년 최초의 SOLAS협약(해상인명안전협약)이 탄생하게 된다.

1945년 국제연합(UN)이 출범하고 나서 1948년에 산하 전문기관인 IMCO(정부간해사자문기구)가 처음 설립됐다. IMCO는 이후 1982년 국제해사기구(IMO)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

IMCO(정부간해사자문기구)가 설립된 후, 첫 번째 과제는 SOLAS의 새로운 버전(60 SOLAS)을 채택하는 일이었고, 1965년 5월 26일 '60 SOLAS'가 발효됐다.

IMCO(정부간해사자문기구)는 1954년 북해에서 토리캐년호 좌초를 계기로 '유류오염에 관한 국제협약'(MARPOL, 1973년 국제해양오염방지협약으로 대체)을 제안하고 계속해서 긴급조난신호 송신을 위한 '세계 해상조난 안전제도'(GMDSS, 1988년)를 채택하는 등, UN산하 전문기구 중에서 가장 역동적인 활동을 유지하고 있다.

해양안전심판원에서 과거의 해양사고를 분석해 본 결과, 전체 해난사고의 80% 이상이 인적과실에서 기인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를 위해 IMO는 1998년부터는 육상의 작업표준화절차(ISO)를 도입해 선박운용에 관한 모든 작업들을 시스템 관리 하에서 이루어지도록 하고 있다. 2010년 1월부터는 사고의 근원적 원인을 파악, 이를 제거함으로써 인적과실에 의한 해양사고를 저감하기 위해 '해양사고 조사코드' 제도를 도입해 시행하고 있다.

해양사고 조사코드는 사고의 직접적 원인보다는 근원적 이유를 찾아 해소될 수 있도록 하는 국제규정이다. 해양안전심판원에서도 이를 국내법으로 수용함으로써 중요 해양사고에 대해 특별조사를 통해 인적과실 분야를 집중적으로 분석하고 이를 대외에 공표함으로써 인적과실에 의한 사고를 방지하고 있다.


해양안전을 위한 향후 과제

선박의 안전은 더 이상 선장만의 책임이 아니다. 회사의 지원과 감독을 바탕으로 시스템에 따라 안전관리가 이뤄져야 하며, 사고예방을 위한 표면적 원인보다 근본적 문제 해결에 집중될 수 있도록 투자와 노력이 집중된다면 인적과실에 의한 해양사고 감소에 많은 도움이 되리라 생각된다.

우리나라는 IMO에서 A그룹(주요 해운국) 이사국 및 세계 조선 수주량 1위라는 명실상부한 해운ㆍ조선강국이다. 그런 위상에 맞게 해사 분야의 이슈를 선도하고 해양안전의 흐름을 주도해나가는 국제적 노력에도 소홀함이 없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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