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 위토’ 분쟁으로 눈길 끈 민씨 가문

지역내일 2011-05-03
명성황후 일족, 44개 종파 물리치고 일단 승소
친일 항일 얽힌 가운데 대법원장 대법관 배출

우리나라에서 민씨는 단일시조를 모시며 여흥(경기도 여주)을 본관으로 삼는 단일본이다. 현재 20여만명으로 추정되는 소수 성씨이면서도 근세사에 영욕의 큰 족적을 남겼다. 비운의 여걸 명성황후와 민영환 선생이 이름을 빛낸 반면 친일파의 거두 민병석과 그의 아들 민복기 전 대법원장, 휘문고 설립자인 민영휘의 행적이 도마에 오르기도 했다.

최근 서울중앙지법에서 여흥 민씨들간의 토지소유권 분쟁에 대한 판결이 내려졌다. '여흥 민씨 대종회'가 '여흥민씨 삼방파 종중'을 상대로 중시조의 위토 소유권을 주장했으나 패소했다. 여흥 민씨 45개 종중을 대표하는 대종회가 1개 지파에게 시조의 위토를 '빼앗긴' 판결이어서 눈길을 끌었다.

여흥 민씨는 4세조인 문경공 민영모를 씨족의 부흥을 이룬 인물로 추앙하고 있다. 문경공의 아들 대에서부터 민씨의 각 종파가 나뉘어 현재 45개 종파에 이른다. 후손들은 충북 음성군에 55필지에 달하는 토지를 마련했다. 이 가운데는 문경공의 묘지와 단소, 제사를 지내기 위한 위토가 포함돼 있다.

전국의 민씨들은 파를 가리지 않고 매년 음력 9월이면 이 위토에 모여 문경공의 시제를 함께 지내며 혈족의 우의를 다져왔다. 1971년에는 민복기 당시 대법원장이 소송을 내서 이 땅에 대해 '여흥민씨 종중' 명의로 등기를 마친 적도 있다.

그러나 삼방파 종중이 이 토지들을 2006년도에 자파 단독재산으로 소유권 등기하면서 분쟁이 발생했다.

대종회 민병성(87) 회장은 "어떻게 해서라도 법정에 서는 경우는 피하겠다는 일념에서 백방으로 노력했는데, 조상에게 죄책감을 씻을 수 없게 됐다"고 법정소송에 나서는 자괴감을 피력했다.

대종회는 위토를 찾기 위해 회원들의 성금 8000여만원을 모으기도 했다. 그러나 서울중앙지법 민사14부(노만경 부장판사)는 지난달 27일 대종회에 패소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삼방파는 조선중기 이후 다른 파에 비해 출세한 종중원을 유난히 많이 배출하면서 여흥 민씨 본관을 주도했고, 이때 이 땅을 마련한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재판부가 밝혔듯이 대종회를 굴복시킨 삼방파의 힘은 유난히 출세한 인물이 많았다는 점이다. 삼방파는 문경공의 후손 가운데 일부가 조선후기에 단독 종중을 구성했다. 3형제가 나란히 과거에 등과하여 삼방파란 이름을 얻었고, 그후 종중에서 명성황후가 간택되면서 열린 민씨 천하는 곧 삼방파 천하였다. 을사늑약에 항거해 자결한 민영환 선생이나 다수의 항일의병장이 삼방파에서 배출됐다. 일본으로부터 귀족작위를 받은 민영휘 민병석, 그리고 일제치하 판사로 시작해 대한민국 최장수 대법원장에 오른 민병석의 아들 민복기에 이르기까지 삼방파는 영욕의 이름을 날렸다.

반면 삼방파를 제외한 여흥 민씨는 해방 때까지 이렇다 할 족적을 만들지 못하다가 1970년대 들어서 본격적인 종중규합에 나섰다. 그나마 삼방파가 아닌 종중원으로 이름을 낸 경우는 늑암파 후손인 민일영 현 대법관이 있다.
진병기 기자 ji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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