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회담, 녹음기 2대씩 켜놓는 게 관례
정부 "이번에는 녹음파일 없어, 있다면 북한이 공개하면 될 것"
북한이 1일에 이어 9일 남북 비밀접촉을 폭로하고 나섰다. 자신들의 요구에 남측이 응하지 않으면 녹음기록을 공개할 수 있다고 엄포도 놓았다. 이번 폭로전의 시작은 어디서부터인지, 누구에게 어떤 책임이 있는 지 문답형식으로 풀어보았다.
- 비밀접촉 폭로, 누가 먼저 했나
이 부분은 우리 정부가 북한에 책잡힐 수 있는 대목이다.
청와대는 5월 12일 이명박 대통령의 베를린 제안(내년 서울 핵안보정상회의에 김정일 위원장 초청)과 관련, "남북간 실무적인 접촉이 있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라는 내용을 한 일간지에 흘렸고 18일에는 김희정 청와대 대변인이 직접 "핵안보 정상회의에 김정일 위원장을 초청하는 문제에 대한 정부의 진의가 북측에 전달됐다"며 비밀접촉 자체를 인정했다.
이는 전례가 없는 일로 2009년 9월과 11월 비밀접촉설이 불거졌을 때 정부는 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았다. 정부로서는 '우리가 대화에 무성의한 게 아니다'라는 메시지를 주고 싶었는지 모르나 정부 당국자가 공개적으로 비밀접촉을 시인해 북한이 폭로할 수 있는 빌미를 주고 말았다.
- 비밀접촉 몇 차례나 있었나
북한 국방위원회 정책국 대표는 9일 기자 문답을 통해 "앞서 진행된 두 차례의 비밀접촉 때에는 내놓지 않던 돈 봉투를 결렬이 확실해진 마지막 비밀접촉에서…"라면서 비밀접촉이 모두 3차례 정도 있었음을 시사했다. 하지만 이것이 2009년 9월과 11월 싱가포르와 개성 접촉을 포함한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앞서 1일 비밀접촉 폭로에서 "남측이 5월9일부터 (시작된) 비밀접촉에서…"라고 이미 밝힌 바 있기 때문이다. 우리 정부는 북한의 연이은 폭로에도 누가, 어디서 북한과 첫 접촉했는가는 함구하고 있다.
- 폭로전 몰아가는 북한은 과연 떳떳한가
북한은 '남쪽이 먼저 비밀접촉을 공개, 어쩔 수 없었다'는 불가피론을 펴고 있지만 책임을 모두 피해가기는 어려워 보인다. 북한의 비밀접촉 폭로목적이 남한 정부 모욕주기라고밖에 해석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정상회담 애걸', '돈봉투 제시' 등 모욕적 표현을 쓰는 것이나 추가폭로를 예고하는 방식의 협박 태도 등을 봐도 그렇다.
더구나 북한은 남측 책임자는 실명(김태효, 김천식, 홍창화)을 모두 밝히면서도 자신들은 누구를 대표로 내보냈는가 밝히지 않고 있다. 만약 북한이 진실규명에 목적을 두는 것이라면 자신들은 어떤 이유로 이번 비밀접촉에 응했으며 누구를 대표단으로 내보냈고 과거에도 소위 출장비 성격의 '돈봉투'를 받은 적이 없는가 밝히면 된다.
과거 회담장에 나온 북한 대표들이 각종 선물 등의 명목으로 금품을 요구했다는 것은 공공연하게 알려진 사실이며 그 중에는 현재 북한 유력인사들도 포함돼 있다.
- 남북회담 녹음파일 있나, 없나
외교관례상 회담은 녹음하지 않는 것이 의전에 맞다. 배석자가 받아적거나 통역이 기록하는 것이 관례다. 하지만 남북회담에서는 이 의전을 따르지 않는다.
공식 회담장(판문점 평화의 집 등)에는 아예 녹음·녹화시설이 돼 있고 이를 서울과 평양에서 각각 볼 수도 있다. 1994년 3월 19일 남북특사교환 실무접촉에서 박영수 북한대표의 '서울 불바다' 발언이 큰 논란을 불러온 것도 당시 비디오 화면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공식 회담장이 아닌 곳에서도 녹음기를 남북한 각각 2대씩을 틀어놓는 게 관례다. 1대만 가동했다가 고장난 적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정부 당국자는 "이번 비공개접촉은 그 성격상 우리는 녹음을 하지 않았다"며 "만약 북한이 녹음한 파일이 있다면 더 이상 왜곡하지 말고 이를 전부 공개하면 될 것"이라고 요구했다.
조숭호 기자 shcho@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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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이번에는 녹음파일 없어, 있다면 북한이 공개하면 될 것"
북한이 1일에 이어 9일 남북 비밀접촉을 폭로하고 나섰다. 자신들의 요구에 남측이 응하지 않으면 녹음기록을 공개할 수 있다고 엄포도 놓았다. 이번 폭로전의 시작은 어디서부터인지, 누구에게 어떤 책임이 있는 지 문답형식으로 풀어보았다.
- 비밀접촉 폭로, 누가 먼저 했나
이 부분은 우리 정부가 북한에 책잡힐 수 있는 대목이다.
청와대는 5월 12일 이명박 대통령의 베를린 제안(내년 서울 핵안보정상회의에 김정일 위원장 초청)과 관련, "남북간 실무적인 접촉이 있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라는 내용을 한 일간지에 흘렸고 18일에는 김희정 청와대 대변인이 직접 "핵안보 정상회의에 김정일 위원장을 초청하는 문제에 대한 정부의 진의가 북측에 전달됐다"며 비밀접촉 자체를 인정했다.
이는 전례가 없는 일로 2009년 9월과 11월 비밀접촉설이 불거졌을 때 정부는 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았다. 정부로서는 '우리가 대화에 무성의한 게 아니다'라는 메시지를 주고 싶었는지 모르나 정부 당국자가 공개적으로 비밀접촉을 시인해 북한이 폭로할 수 있는 빌미를 주고 말았다.
- 비밀접촉 몇 차례나 있었나
북한 국방위원회 정책국 대표는 9일 기자 문답을 통해 "앞서 진행된 두 차례의 비밀접촉 때에는 내놓지 않던 돈 봉투를 결렬이 확실해진 마지막 비밀접촉에서…"라면서 비밀접촉이 모두 3차례 정도 있었음을 시사했다. 하지만 이것이 2009년 9월과 11월 싱가포르와 개성 접촉을 포함한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앞서 1일 비밀접촉 폭로에서 "남측이 5월9일부터 (시작된) 비밀접촉에서…"라고 이미 밝힌 바 있기 때문이다. 우리 정부는 북한의 연이은 폭로에도 누가, 어디서 북한과 첫 접촉했는가는 함구하고 있다.
- 폭로전 몰아가는 북한은 과연 떳떳한가
북한은 '남쪽이 먼저 비밀접촉을 공개, 어쩔 수 없었다'는 불가피론을 펴고 있지만 책임을 모두 피해가기는 어려워 보인다. 북한의 비밀접촉 폭로목적이 남한 정부 모욕주기라고밖에 해석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정상회담 애걸', '돈봉투 제시' 등 모욕적 표현을 쓰는 것이나 추가폭로를 예고하는 방식의 협박 태도 등을 봐도 그렇다.
더구나 북한은 남측 책임자는 실명(김태효, 김천식, 홍창화)을 모두 밝히면서도 자신들은 누구를 대표로 내보냈는가 밝히지 않고 있다. 만약 북한이 진실규명에 목적을 두는 것이라면 자신들은 어떤 이유로 이번 비밀접촉에 응했으며 누구를 대표단으로 내보냈고 과거에도 소위 출장비 성격의 '돈봉투'를 받은 적이 없는가 밝히면 된다.
과거 회담장에 나온 북한 대표들이 각종 선물 등의 명목으로 금품을 요구했다는 것은 공공연하게 알려진 사실이며 그 중에는 현재 북한 유력인사들도 포함돼 있다.
- 남북회담 녹음파일 있나, 없나
외교관례상 회담은 녹음하지 않는 것이 의전에 맞다. 배석자가 받아적거나 통역이 기록하는 것이 관례다. 하지만 남북회담에서는 이 의전을 따르지 않는다.
공식 회담장(판문점 평화의 집 등)에는 아예 녹음·녹화시설이 돼 있고 이를 서울과 평양에서 각각 볼 수도 있다. 1994년 3월 19일 남북특사교환 실무접촉에서 박영수 북한대표의 '서울 불바다' 발언이 큰 논란을 불러온 것도 당시 비디오 화면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공식 회담장이 아닌 곳에서도 녹음기를 남북한 각각 2대씩을 틀어놓는 게 관례다. 1대만 가동했다가 고장난 적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정부 당국자는 "이번 비공개접촉은 그 성격상 우리는 녹음을 하지 않았다"며 "만약 북한이 녹음한 파일이 있다면 더 이상 왜곡하지 말고 이를 전부 공개하면 될 것"이라고 요구했다.
조숭호 기자 shcho@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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