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구로구 '토론식 간부회의' 도입
"빗물받이가 너무 띄엄띄엄 설치돼있습니다. 간격을 좁혀야 합니다." "빗물받이가 적정 간격을 유지하고 설치돼 있는지 종합 점검을 해보겠습니다."
매달 1·3주 화요일. 서울 구로구에서 한달에 두차례 진행하는 확대간부회의. 구청장과 부구청장을 비롯해 과장·동장·국장들이 참석하는 이 회의가 언제부턴가 열띤 토론장이 됐다. 본인 업무 외에는 나서지도 않고 언급하기도 꺼린다는 공무원사회의 묵계도 깨졌다. 3월 토론식 간부회의를 도입한 뒤부터다.
◆이른 장마 앞서 수해대책 논의 = 본격적인 장마를 앞두고 열린 이달 회의 주제는 '풍수해 저감을 위한 비상대처방안'. 전 같으면 담당부서인 치수방재과에서 수해방지대책 보고를 한 뒤 구청장과 부구청장 지시사항으로 회의가 마무리됐을 게다. 토론식 회의에서는 다르다. 지난해 피해가 컸던 지역 동장들이 지형적 특징과 피해유형에 따른 재발방지대책과 함께 현장에서 느끼는 어려움을 털어놓는다.
"직원들이 수방장비에 대한 인식이 낮아 회의때마다 펌프 사용법 교육을 합니다. 주민들에게 빌려줄 때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는 요령을 알려줄 수 있어야거든요." "방수판 설치가 어려운 가구에 모래자루를 배포하는데 미관상 좋지 않다고 거부하는 가구들이 있습니다." "빗물받이가 막히면 도로에 금세 빗물이 고이는데 일부 상가에서 냄새가 난다고 빗물받이 위를 덮어버립니다. 퇴근시간 이후에 많은 비가 내리면 침수피해가 생길 수 있습니다."
장마때 일시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이동식 장비를 고안하자, 가구주가 바뀐 경우 공무원이 찾아가 지난해 피해상황과 유형을 알려줘 스스로 대비할 수 있게 하자는 제안이 뒤따른다. 수해가 발생할 경우 대처력을 높일 수 있는 의견도 제시됐다. 가구별 담당 공무원과 통·반장이나 주민단체 회원 연계, 지난해처럼 시간당 80㎜에 달하는 집중호우를 가정한 가상훈련 등이다. 자연재해를 100% 예방할 수 없는 상황에서 추가적 인재나 주민 불편을 덜기 위한 의견도 나왔다. 피해가구에 엇비슷한 중복질문을 던지는 걸 막을 수 있는 표준화된 피해조사양식을 개발하고 학기 중 피해를 감안해 학교 이외의 이재민 시설을 준비하자는 얘기들이었다.
회의는 예정됐던 1시간 30분을 넘겨 2시간 가까이 진행된 뒤에야 끝났다. 이 성 구청장은 말미에 "이른 장마에 시기적절한 주제였다"며 "지난해 피해를 입은 2311가구에 대해 위치와 침수요인 집주인 등을 정확히 파악하고 실효성있게 대처해달라"고 당부했다.
◆토론이 필요한 내용 공개 접수 = 토론회의에서는 이번처럼 시기적으로 필요한 내용부터 지방 행정기관에서 고민해야 할 다양한 주제들을 다룬다. 앞서 회의에서는 공공기관의 최우선 과제인 청렴도 높이기 방안부터 서울지역에서도 '뜨거운 감자'가 된 주택정비사업 문제점과 개선방안, 비정규직 처우개선과 정규직화 방안 등을 논의했다.
토론이 필요한 내용이나 공지사항 등은 기획예산과에서 공개 접수를 받는다. 토론할 주제가 정해지면 회의가 열리기 1주일 전에 행정전산망에 게시해 전체 간부들이 공유하고 토론준비를 할 수 있도록 한다.
김재순 감사담당관은 "한번도 경험해보지 않은 업무라도 직원들과 함께 사전에 주제를 점검한 뒤 회의에 참여한다"며 "간부부터 일반 직원까지 구 주요 업무에 대해 공부하고 역량을 강화하는 계기가 됐다"고 평했다.
물론 익숙치 않은 회의 방식에 서로 눈치만 보던 시절도 있었다. 김경호 부구청장은 "몇차례 진행하다보니 이제는 익숙해졌다"며 "다들 활발하게 의견을 내놓는다"고 자신했다. 박종평 복지문화국장은 "30년 이상 여러 부서에서 근무한 공무원들이 그간 경험을 토대로 노하우를 공유한다"며 "엄숙하고 딱딱한 회의가 실수나 잘못한 점도 지적할 정도로 화기애애해졌다"고 말했다.
◆"직원들 얘기 더 끌어내야" = 토론식 간부회의는 서울시에서 오랜 공직생활을 해온 이 성 구청장 제안으로 도입했다. 이 구청장은 "얘기를 주고받고 반박도 있어야 하는데 서로의 생각을 이야기할 기회가 없다"며 "시에 근무할 때부터 토론 없는 회의에 답답함을 느꼈다"고 말했다. 담당 부서에서 추진하는 정책에 대한 반대의견도 듣고 더 좋은 의견도 들어야 완결성 있는 정책이 나온다는 것이다. 이 구청장은 "구청장 생각과 다르면 어떡하나 하는 불안감이 있었겠지만 토론을 통해 간부들 스스로 결정을 이끌어낸다"며 "직원들 생각을 더 많이 이끌어내야 하는 스스로의 과제가 남았다"고 덧붙였다.
김진명 기자 jm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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