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청년 '골방신세' 일본노인 '무인도'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독립한 나라 중 경제성장과 민주화를 이룩한 유일한 나라. 오늘 대한민국을 지칭하는 화려한 수사(修辭)다. 그러나 '88만원 세대'로 불리는 젊은이들과 고령화 사회의 주구성원인 어르신들의 삶은 이렇다 할 대책없이 팍팍할 뿐이다. 이 같은 현실을 살펴 볼 수 있는 책 두 권이 나왔다. 하나는 우리 젊은이들의 신산스런 삶을 조명한 책이고, 다른 하나는 우리보다 먼저 고통을 겪고 있는 일본의 노인 실태다.

자기만의 방
정민우 지음
이매진, 1만7천원
자기만의 방 - 고시원에 갖힌 청춘
고시원의 시작은 창대했다. 이름에 걸맞게 국가고시 수험생을 위한 공간으로 출발했다. 당연히 고시촌이 많은 관악구와 공무원 학원이 밀집한 노량진 근처에서 성업을 이뤘다.
그러나 IMF 외환위기를 지나면서 고시원의 정체성은 무너졌다. 비정규직, 반실업자, 취업준비생, 이주노동자, 대학생에 직장인까지 다양한 군상들이 익명 속에 자신을 감추는 1평 남짓의 '쪽방'으로 전락한 것이다. '고시원에는 고시생이 없다'는 슬픈 조크까지 생겨났다.
고시원의 분포와 확산 구도 역시 엄청나게 바뀐다. 형성 초기 관악·동작구에 국한됐던 고시원은, 이제 사무직 노동자가 많은 서초·강남·송파, 일용직이 거주하는 영등포·동대문·광진구와 대학밀집지역인 서대문·성북구 등에까지 세력을 확장했다.
전국적으로 6126개(2009년 1월1일 현재)에 이르는 고시원 중 3분의 2가 서울에 몰려 있다. 2001년 811곳에서 10년 새 5배로 늘었다. 거주민은 줄잡아 11만명. 단기 거주까지 감안하면 서울 인구의 3~5%가 고시원을 '경유'하는 셈이다.
집 아닌 집, 이 사회의 아웃사이더들이 점유하고 있는 고시원은 과연 어떤 존재인가. 스스로 음습한 반지하에서 생활하고 있는 저자는 '인간의 삶을 이루는 필수적 공간인 방에 대한 연구를 하고 싶다'는 다소 순박한 동기에서 고시원 탐사를 시작한다.
고시원에 대한 사회학적 고찰을 마친 후, 한달 동안 아예 고시원으로 거처를 옮겨 그들의 삶을 탐색했다. 그리고 7개월 동안 20여명의 청년들을 심층 인터뷰해 그 중 10명의 사연을 정리해 연구에 리얼리티를 더했다.
고시원 해부는 값진 성과물을 냈다. 그곳이 월 15~30만원이면 머물 수 있는 단순한 공간이 아니라, 우리의 청년세대와 필연적 상관관계를 지닌 슬프고도 엄숙한 공간임을 발견한 것이다.
고시원은 불확실한 미래를 위해 머무는 공간이란 점에서, 청년세대가 처한 현실의 시간과 절묘하게 들어맞는다. 고시원이 이행기적 공간이라면, 청년세대는 이행기적 시간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들 '방살이 청춘'들에겐 이행기적 시간의 종착점이 미지수라는 것이다. 아니 미지수이기는커녕 늙어 지칠 때까지 고시원을 벗어나지 못하지 않을까 하는 불안마저 팽배하다. 청년실업과 주거대란으로 집은 고사하고 지상의 방 한 칸 마련하기조차 서글픈 현실이 눈앞에 놓여 있으니까.

은퇴대국의 빈곤보고서
전영수 지음
맛있는책.1만6천원
은퇴대국의 빈곤보고서 - 노인고립
일본이 요즘 심각한 중병에 시달리고 있다. 이른바 '격차심화' 현상 때문이다. 근로격차→소득(자산)격차→소비격차→교육격차→건강격차→미래격차 등이 최악의 악순환고리까지 작동되면서 사회적 우울증이 심화되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현상의 가장 큰 희생양은 다름 아닌 노인층. '무연사회(無緣社會)'라는 용어 역시 그런 맥락에서 나왔다. 돈 없는 노인들의 인간관계가 끊기고, 일본 특유의 사회적 네트워크가 붕괴됐다는 의미다. 무연은 숨지고 한참 뒤에야 발견되는 고독사(孤獨死)를 양산했다. 연간 3만2,000여명의 고독사가 일본에서 발생하고 있다. 물론 고령의 독신자들이다.
세계 2위의 경제대국 일본은 초고령사회다. 전체 인구 1억2,700만명 중 65세 이상 노인은 2,900만명으로 22%에 달한다. 일본의 노인은 부유층으로 알려져 있다. 경제성장의 과실을 누려 유유자적한 노후생활도 기대됐었다. 실제로 1500조엔의 금융자산 중 60% 이상을 노인층이 보유하고 있다.
저자는 수적으로는 가난한 노인들이 훨씬 많고, 그 가난은 사회안전망의 붕괴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일본의 사회안전망은 기업 중심으로 이뤄졌다. 기업들은 종신고용ㆍ연공서열을 통해 생활을 보장해주었다. 회사는 사원의 결혼, 육아, 퇴직 후의 생활까지 뒷받침했다. 지방경제 종사자는 중앙정부의 공공투자로 일자리가 보장됐다. 정부의 복지시스템은 여성ㆍ고령근로자 등 극히 일부에 한정됐다. 비율로는 기업복지 60%, 공공투자 30%, 최후복지 10%였다.
그런데 1990년대 들어 경제가 장기침체에 빠진 가운데 신자유주의가 유입되면서 기업의 복지안전망이 붕괴되자 중산층 이하의 삶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노인들은 고립됐다.
고립은 젊은 세대로까지 확대되고 있다. 30~40대의 독신세대가 그들이다. 일본의 독신가구는 1,500만에 육박한다. 저소득·비정규직 근로자들은 결혼을 엄두도 못 낸다. 2005년 기준 남성의 생애미혼율(50세 시점에서 한 번도 결혼하지 않은 사람의 비율)은 약 16%다.
이른바 '트릴레마'로 불리는 3대 인생고충의 부담 때문이다. 본인 노후, 부모 간병, 자녀 교육의 세 가지 고충 가운데 어느 것도 만만한 것이 없다. 이 때문에 일본 사회가 '돈 걱정을 둘러싼 집단우울'을 겪고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우리의 사회적 변화는 일본을 거의 답습해 왔다. 고령화 사회의 양상도 예외는 아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보다 앞서 고령화 사회의 충격을 겪고 있는 일본의 사례는 타산지석의 텍스트로서 충분하다. 더욱이 최근엔 2050년 한국이 세계 최고령국가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지 않은가.
'길어진 인생 후반기와 정부 재정을 고려하면 장수사회의 딜레마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은 평생 현역을 통한 근로소득 확보뿐이다.' 책이 맺은 결론이다.
윤재석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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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독립한 나라 중 경제성장과 민주화를 이룩한 유일한 나라. 오늘 대한민국을 지칭하는 화려한 수사(修辭)다. 그러나 '88만원 세대'로 불리는 젊은이들과 고령화 사회의 주구성원인 어르신들의 삶은 이렇다 할 대책없이 팍팍할 뿐이다. 이 같은 현실을 살펴 볼 수 있는 책 두 권이 나왔다. 하나는 우리 젊은이들의 신산스런 삶을 조명한 책이고, 다른 하나는 우리보다 먼저 고통을 겪고 있는 일본의 노인 실태다.

자기만의 방
정민우 지음
이매진, 1만7천원
자기만의 방 - 고시원에 갖힌 청춘
고시원의 시작은 창대했다. 이름에 걸맞게 국가고시 수험생을 위한 공간으로 출발했다. 당연히 고시촌이 많은 관악구와 공무원 학원이 밀집한 노량진 근처에서 성업을 이뤘다.
그러나 IMF 외환위기를 지나면서 고시원의 정체성은 무너졌다. 비정규직, 반실업자, 취업준비생, 이주노동자, 대학생에 직장인까지 다양한 군상들이 익명 속에 자신을 감추는 1평 남짓의 '쪽방'으로 전락한 것이다. '고시원에는 고시생이 없다'는 슬픈 조크까지 생겨났다.
고시원의 분포와 확산 구도 역시 엄청나게 바뀐다. 형성 초기 관악·동작구에 국한됐던 고시원은, 이제 사무직 노동자가 많은 서초·강남·송파, 일용직이 거주하는 영등포·동대문·광진구와 대학밀집지역인 서대문·성북구 등에까지 세력을 확장했다.
전국적으로 6126개(2009년 1월1일 현재)에 이르는 고시원 중 3분의 2가 서울에 몰려 있다. 2001년 811곳에서 10년 새 5배로 늘었다. 거주민은 줄잡아 11만명. 단기 거주까지 감안하면 서울 인구의 3~5%가 고시원을 '경유'하는 셈이다.
집 아닌 집, 이 사회의 아웃사이더들이 점유하고 있는 고시원은 과연 어떤 존재인가. 스스로 음습한 반지하에서 생활하고 있는 저자는 '인간의 삶을 이루는 필수적 공간인 방에 대한 연구를 하고 싶다'는 다소 순박한 동기에서 고시원 탐사를 시작한다.
고시원에 대한 사회학적 고찰을 마친 후, 한달 동안 아예 고시원으로 거처를 옮겨 그들의 삶을 탐색했다. 그리고 7개월 동안 20여명의 청년들을 심층 인터뷰해 그 중 10명의 사연을 정리해 연구에 리얼리티를 더했다.
고시원 해부는 값진 성과물을 냈다. 그곳이 월 15~30만원이면 머물 수 있는 단순한 공간이 아니라, 우리의 청년세대와 필연적 상관관계를 지닌 슬프고도 엄숙한 공간임을 발견한 것이다.
고시원은 불확실한 미래를 위해 머무는 공간이란 점에서, 청년세대가 처한 현실의 시간과 절묘하게 들어맞는다. 고시원이 이행기적 공간이라면, 청년세대는 이행기적 시간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들 '방살이 청춘'들에겐 이행기적 시간의 종착점이 미지수라는 것이다. 아니 미지수이기는커녕 늙어 지칠 때까지 고시원을 벗어나지 못하지 않을까 하는 불안마저 팽배하다. 청년실업과 주거대란으로 집은 고사하고 지상의 방 한 칸 마련하기조차 서글픈 현실이 눈앞에 놓여 있으니까.

은퇴대국의 빈곤보고서
전영수 지음
맛있는책.1만6천원
은퇴대국의 빈곤보고서 - 노인고립
일본이 요즘 심각한 중병에 시달리고 있다. 이른바 '격차심화' 현상 때문이다. 근로격차→소득(자산)격차→소비격차→교육격차→건강격차→미래격차 등이 최악의 악순환고리까지 작동되면서 사회적 우울증이 심화되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현상의 가장 큰 희생양은 다름 아닌 노인층. '무연사회(無緣社會)'라는 용어 역시 그런 맥락에서 나왔다. 돈 없는 노인들의 인간관계가 끊기고, 일본 특유의 사회적 네트워크가 붕괴됐다는 의미다. 무연은 숨지고 한참 뒤에야 발견되는 고독사(孤獨死)를 양산했다. 연간 3만2,000여명의 고독사가 일본에서 발생하고 있다. 물론 고령의 독신자들이다.
세계 2위의 경제대국 일본은 초고령사회다. 전체 인구 1억2,700만명 중 65세 이상 노인은 2,900만명으로 22%에 달한다. 일본의 노인은 부유층으로 알려져 있다. 경제성장의 과실을 누려 유유자적한 노후생활도 기대됐었다. 실제로 1500조엔의 금융자산 중 60% 이상을 노인층이 보유하고 있다.
저자는 수적으로는 가난한 노인들이 훨씬 많고, 그 가난은 사회안전망의 붕괴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일본의 사회안전망은 기업 중심으로 이뤄졌다. 기업들은 종신고용ㆍ연공서열을 통해 생활을 보장해주었다. 회사는 사원의 결혼, 육아, 퇴직 후의 생활까지 뒷받침했다. 지방경제 종사자는 중앙정부의 공공투자로 일자리가 보장됐다. 정부의 복지시스템은 여성ㆍ고령근로자 등 극히 일부에 한정됐다. 비율로는 기업복지 60%, 공공투자 30%, 최후복지 10%였다.
그런데 1990년대 들어 경제가 장기침체에 빠진 가운데 신자유주의가 유입되면서 기업의 복지안전망이 붕괴되자 중산층 이하의 삶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노인들은 고립됐다.
고립은 젊은 세대로까지 확대되고 있다. 30~40대의 독신세대가 그들이다. 일본의 독신가구는 1,500만에 육박한다. 저소득·비정규직 근로자들은 결혼을 엄두도 못 낸다. 2005년 기준 남성의 생애미혼율(50세 시점에서 한 번도 결혼하지 않은 사람의 비율)은 약 16%다.
이른바 '트릴레마'로 불리는 3대 인생고충의 부담 때문이다. 본인 노후, 부모 간병, 자녀 교육의 세 가지 고충 가운데 어느 것도 만만한 것이 없다. 이 때문에 일본 사회가 '돈 걱정을 둘러싼 집단우울'을 겪고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우리의 사회적 변화는 일본을 거의 답습해 왔다. 고령화 사회의 양상도 예외는 아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보다 앞서 고령화 사회의 충격을 겪고 있는 일본의 사례는 타산지석의 텍스트로서 충분하다. 더욱이 최근엔 2050년 한국이 세계 최고령국가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지 않은가.
'길어진 인생 후반기와 정부 재정을 고려하면 장수사회의 딜레마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은 평생 현역을 통한 근로소득 확보뿐이다.' 책이 맺은 결론이다.
윤재석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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