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고엽제 오염, 책임과 도리

지역내일 2011-06-03

고엽제(枯葉劑)라 하면 글자 뜻 그대로 잎을 말려 식물을 고사시키는 농약 정도로 아는 사람이 많다. 월남전 참전용사들의 고엽제 후유증이 문제가 된 뒤에도 독성이 좀 더 강한 제초제쯤으로 인식해 왔다. 이 약제에 함유된 다이옥신이라는 성분은 극히 미량만 인체에 들어가도 신경계 마비와 각종 암을 일으킨다. 그 사실을 안다면 정신이 번쩍 들 것이다.

다이옥신이란 인간이 만든 화학물질 가운데 가장 독성이 강하다. 우리의 상식 속에 맹독성 물질로 알려진 청산가리보다 1만 배나 강하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고엽제 후유증을 호소하는 월남전 참전용사들의 보상요구를 '떼법 투쟁'으로 보았던 일반의 인식도 그런 무지의 산물이다. 월남전 이후 베트남 정부는 군인과 민간인 등 200만 명이 고엽제 후유증으로 심각한 고통을 당하고 있다고 발표한 바 있다.

그런 물질을 한국 땅속에 250드럼이나 파묻고 갔다고, 한 예비역 미군병사가 폭로했다. 그 작업에 동원되었던 일로 고엽제 후유증을 앓고 있다는 그의 양심고백 이후, 부천 부평 등지의 미군부대에서도 그런 일들이 있었다는 증언이 잇따랐다. 특히 부천의 캠프 머서는 한국전쟁 이후 화학물질 매립지로 쓰였는데, 한 예비역 미군병사는 "온갖 화학물질 쓰레기를 다 파묻었다"고 말했다.


미군 주둔한 자리에는 예외없이 갖가지 오염물질

1960년대에는 비무장지대에서 광범위한 고엽제 살포작업이 있었다. 경계근무를 위한 시계 확보 작전의 일환이었다. 여기에는 아무런 방비도 없는 민간인들이 맨손으로 살포했다고 한다. 한 신문에 공개된 사진자료에는 헬기로 비무장지대 상공에서 고엽제를 살포하는 장면, 방호복도 입지 않은 미군이 고엽제 드럼통을 기지 내에 매몰하는 모습 등이 찍혀 있다.

또 다른 신문은 한국에 반환된 미군기지의 오염실태를 보도했다. 2007년 환경부가 미군에게서 돌려받은 22개 기지에서 실시한 환경오염 조사보고서를 인용, 21곳에서 기름오염이 확인되었고, 파주 의정부 등 경기북부 일부 기지에서는 중금속으로 오염된 토양의 지하수에서 맹독성 페놀이 기준치의 71배나 검출되었으며, 갖가지 중금속 성분과 발암물질 벤젠, 테트라클로로에틸렌 등이 검출되었다는 것이다.

부산 하야리야 부대 기지에는 고농도의 석면이 함유된 건축폐기물이 방치되어 있다고 한다. 서울 용산기지 주변인 녹사평 일대 미군기지 주위 토양이 폐유에 심하게 오염되어 시민들이 놀랐던 일도 오래지 않다. 이런 보도들을 종합하면 미군이 주둔한 자리는 예외 없이 갖가지 오염물질로 토양과 지하수가 오염되었다는 뜻이다.

실정이 이런데도 정부는 실태에 대하여 함구로 일관하고 있다. 2007년 공식조사 결과마저 공개하지 않는다. 미국에 일방적으로 유리하게 돼 있는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 규정 때문이다. 환경에 관한 부속조항은 모든 사항을 한미합동위원회 결정에 따르도록 돼 있어, 미군의 동의가 없으면 아무 일도 할 수 없다. 정부가 하는 일은 돌려받은 땅의 토양오염이 심한 곳에 가림막을 치고 하는 정화작업 뿐이다.

환경부의 오염도 조사라는 것도 전수조사가 아니어서 실태는 아무도 모른다. 돌려받아서 우리 땅이 되었는데도 정확한 실태를 파악하려는 노력이 없으니, 환경부라는 정부기관은 왜 있는지 모르겠다.


사과는 바라지 않지만, '이웃의 도리' 다해주었으면

왜관 캠프 캐럴 고엽제 오염의혹에 대한 현지 공동조사가 어제 시작되었다. 고엽제 드럼통이 부식해 녹아내렸을 경우에 대비해 지표조사와 수질조사를 같이 실시하자는 우리 측 주장은 관철되지 않았다. 지표조사로 고엽제 드럼통이 발견되지 않으면 적당히 끝내려는 미국 측 속셈 탓이다. 미국 측이 공동조사단 명단을 밝히지 않아 그런 의심을 자초하고 있다.

땅이란 내가 발붙이고 사는 곳이거나 남의 나라거나, 후손에게 물려줄 소중한 인류의 자산이다. 남의 나라에 빌려서 쓰는 땅이라면 더 조심스레 쓰고 곱게 돌려주는 것이 보통사람들의 예절이다.

남의 땅이라고 그렇게 오염시킨 것도 도리에 어긋나거늘, 오염원을 찾아내 원상복구를 하자는 일에 시작부터 속내를 의심받는다면, 두 나라 우의에 이로울 것이 없다. 사과까지는 바라지 않으니 미국은 이웃의 도리를 다 해주기 바란다.

문창재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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