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의경 생활문화개선대책 6개월째] ‘깨스’ 대물림에 영창 3번 전출 4번,부적응자였던 이 일경

지역내일 2011-07-11
사물놀이하는 '행복한 의경'으로 변신
구타·가혹행위 등 군부대 고질적 악습 근절 대안으로 주목
기수별 '내리갈굼' 스스로 파괴 … 사후징계보다 현장점검

#2010년 4월 1일 군에 입대한 이영만(가명) 일경. 경찰관이 꿈이었던 그는 4주간의 군사훈련을 마친 뒤 처음 경찰 기동대에 전입했을때만 해도 '선임에게 잘하고 후임에겐 따뜻한' 의경이 되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현실은 그의 다짐을 한순간에 무너뜨렸다. 경남경찰청 기동 6중대에 배치된 뒤 거의 매일 '깨스'(가혹행위)에 시달렸다. 잠은 물론 물도 제대로 먹지 못하게 하는 깨스에 이골이 날 즈음, 몇 안되는 후임들에게 욕설을 퍼붓고 일 처리를 못한면 때리기까지 하는 자신을 발견했다. 이경 신분으로 15일 근신이란 징계를 받게 될 정도로 그는 자신도 모르게 선임에게 받은 가혹행위를 그대로 답습했고 악습의 구렁텅이로 빠져들었다. 이 일경은 이후 구타 가해자로 지목돼 3번의 영창과 4번의 전출을 했다.

영창을 들락날락하는 사이 결혼을 약속했던 여자친구마저 떠나버렸다. 삶의 회의를 느꼈다. 의경생활을 포기하고 싶었다. 그러다 묵묵히 내 할일만 하다 제대하기로 마음을 바꿔 먹었다. 그냥 조용히 살고 싶었다. 더이상 후임을 괴롭히지 않겠다고 몇번이나 다짐했다.

하지만 후임기수를 챙겨야 하는 기수('챙')가 되버린 그는 어쩔수 없이 또다시 후임을 괴롭혀야 했다. 군기확립이란 명목으로 깨스는 당연시 됐고 후임 챙기는 기수들이 깨스를 도맡았다. 분대장 등 지휘부 묵인하에 이뤄졌던 만큼 반기를 들수도 없었다. 내 의사와 상관없이 남을 괴롭혀야 하는 고통스런 나날의 연속이었다. 특히 선의로 한 장난이 후임들에겐 가혹행위로 받아들여 또다시 전출을 가게됐을 때는 삶의 의욕마저 잃었다.

하지만 네번째 전출은 전화위복의 계기가 됐다. 지난해말 경남경찰청 산하 기동3중대로 배치받으며 이 일경 생활은 달라졌다. 부적응자로 낙인찍인 그를, 3중대원들은 전우로서 보듬어주었다. 친구처럼 친하게 대했다. 자연스럽게 '깨스' 악습이 사라졌다. 기수별 명령과 복종만 있었던 전 부대와 달리 부대원들은 많은 대화를 나눴다. 전엔 관심도 안두던 동아리활동에도 참여했다. 사물놀이 풍물패에 들어간 이 일경은 꽹과리를 치는 동안 지난날의 가혹행위 고통을 잊을 수 있었다. 의경 생활 중 처음 행복하다는 느낌을 받았을 정도다. 심지어 과거 전력으로 기율교육대(군기교육대)에까지 가게됐지만 불평도 불만도 없었다. 그냥 의경생활의 한 과정으로 받아들일수 있었다. 이 일경은 이젠 "자주 그리고 많이 웃는 3중대에 있다"고 자신을 소개한다. 이 일경이 깨스라는 악습의 고리를 끊을 수 있었던 것은 올 2월부터 시작된 '전의경 생활문화 개선대책'덕분이다.




경찰청의 '전의경 생활문화 개선대책'이 군부대의 고질적인 가혹행위 근절을 위한 새대안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가혹행위를 당하다 백혈병으로 숨진 충남경찰청 소속 의경, 강원도경찰청 소속 307전경대원 집단 탈영, 부대복귀를 앞두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인천중부서 방범순찰대 의경 등 경찰 전의경부대는 지난해만해도 가혹행위 온상으로 지목됐다. 전의경 창설 이후 40년간 선임의 후임에 대한 괴롭힘 행위가 지속돼 왔던 것. 하지만 올 2월부터 '선임대원 중심 부대운영'에서 '지휘요원 중심 부대관리'로 패러다임을 바꾸면서 전의경부대의 고질적인 악습을 하나하나 제거하기 시작했다. 당장엔 전의경부대에서 일어난 가혹행위는 숨김없이 외부에 공개했다. 일시적인 책임을 피하기 위해 은폐하고 축소하는 것은 되레 악습을 더욱 고착화시킨다는 게 경찰 수뇌부 판단이었다.

경찰청은 우선 전의경대원간 관계를 수평적 동료관계로 바꾸고 고질적인 기수문화를 깨는 데 주력했다. 이 과정에서 형식적으로 운영되던 분대장 역할도 다시 부여했다. 분대장은 자기 분대원에 대해서만 지도·감독할 수 있고 다른 분대원에 대해선 지시를 못하게 했다. 분대장 외에 선임대원이라도 대원 상호간에는 일체의 지시나 간섭도 못하게 했다. 기수별 '내리갈굼'이란 병폐를 대원 스스로 깨도록 유도한 것. 예컨대 과거엔 식판닦기 청소 등 사역을 후임이 다 했지만 지금은 분대별로 선임과 후임이 돌아가며 하고 있다.

전의경을 상대로 인성 인권교육을 늘리고 분대장 등 지휘요원에 대한 리더십 및 관리교육도 강화했다.

경찰청 직속 전의경 복무점검단을 신설해 전의경 생활문화 개선대책 이행 실태를 확인·점검하고 있다.

가혹행위가 발생한 뒤 사후징계보단 현장중심 악습점검과 진단으로 사전에 가혹행위를 차단하겠다는 의미였다. 여기에 전의경부대 적정근무시간을 준수토록 유도해 여가나 자기개발시간을 충분히 보장하도록 했다. 경찰청 관계자는 "올 2월부터 부단한 현장점검을 통해 인권침해사례 382건을 적발, 엄중 조치하는 등 지속적인 점검을 하고 있다"면서 "지난 1월 전입 6개월 이하 전의경 대상 소원수리를 한 결과 372명이 피해신고를 했는데 6월엔 9명만이 소원수리를 통해 피해신고를 할 정도로 개선효과가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또 지난 6월초 실시한 전의경 부모 및 전의경 대상 만족도 조사결과, 90% 이상의 부모와 전의경 들이 현재 부대생활에 만족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고 덧붙였다.

이태백 서울 성동경찰서 방범순찰대 일경은 "아내가 임신한 상태에서 부대에 입대했는데 올 1월 아들을 낳았다"면서 "당시만 해도 적응도 되지 않고 탈영을 생각할 정도로 걱정이 많았지만 특별외출과 주2회 휴무제, 근무예고제 등 생활문화 개선과 대원들의 배려 덕분에 이젠 정기적으로 가족을 만날 수 있어 걱정을 덜게 됐다"고 말했다.
고병수 기자 byng8@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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