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을 여는 책] ‘행복이 오지 않으면 만나러 가야지’

지역내일 2011-07-15
휴식과 사랑으로 충만한 '루앙프라방'의 시간들


예담. 최갑수 지음. 1만3000원


공항터미널에서 출발 시간을 기다리고 있노라면 가슴이 따끈하게 데워지는 것 같다고 한다. 지은이가 가장 사랑하는 순간이다. "내가 언제나 부러워하는 이들은 비행기 티켓을 손에 들고 어깨에 배낭을 메고 있는 자들이다."

요즘 비행기 티켓은 보기 어려워졌다. 하지만 여행길에 나선 들뜬 얼굴들이 공항을 가득 메우는 계절이 또다시 다가왔다. 그들은 어디로 떠나는가? "행복이 오지 않으면 만나러 가야지"라고 선언한 시인 최갑수 씨의 포토에세이에서는 무엇보다 '어디'가 중요하다.

그의 꿈이 향하는 곳, 거기엔 루앙프라방이 있다. 이 책의 부제가 밝히듯 이것은 '루앙프라방에서 만난 산책과 위로의 시간들'이다. 거기에는 라오스의 이 조그만 도시에 대해 읊는 연가(戀歌)가 열대 우기의 비처럼 쏟아진다.

"루앙프라방…… 참 사랑스러운 이름이죠? 루앙프라방 하고 발음했을 때 입에서 번져 나오는 부드러운 파동. 가슴속으로 새벽 거리의 맑은 공기가 차오르는 그런 느낌.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한 열정, 가보지 못한 곳에 대한 호기심, 끝없이 이어지는 휴식, 타인에 대한 배려와 미래에 대한 기대……"

이것은 '사무보조원 루의 독백'이라고 되어있는 글의 일부다. 그 사랑 노래는 이렇게 이어진다. "루앙프라방이라는 이름에는 이 모든 게 포함되어 있는 것만 같았어요. 나는 수첩에 루,앙,프,라,방이라고 적었어요. 아, 어쩌면 이곳에서 내 삶이 잠시나마 행복해질 수도 있겠다.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목요일의 루앙프라방'은 지은이가 이 외딴 도시에 도착한 다음날의 풍경을 노래하는 대목이다. 거기에는 "집과 작업실을 시계추처럼" 오갔던 서울에서의 피로가 전주곡으로 깔려 있다. 그 암전(暗轉)은 무엇보다 휴식의 기쁨으로 분출된다. "내 생애 이렇게 달콤한 휴식의 시간이 있었던가."

그러나 그것만은 아니다. "우리는 모두 사랑을 하기 위해 이곳에 모여들었다." 이 도시에의 찬가는 무엇보다 사랑에의 헌시다. "루앙프라방./여기는 세계라는 바다에 떠 있는 작은 섬이다./섬은 사랑으로 충만하고/섬을 적시며 목요일의 고요한 비가 내리고 있다."

그는 마치 땅을 밟게 된 난파선의 승객처럼 루앙프라방의 휴식과 사랑을 고마워하고 있다. 그것은 공항에 내리며 우선 1인당 소득으로 그 나라와 주민을 가늠해 보는 사람의 시선은 결코 아니다. 그런 사람이라면 전체 인구가 고작 4만 명에 불과하고, 시내에 살고 있는 상주인구는 8천 명밖에 되지 않는 이런 과거 속에 영원히 잠든 것 같은 데가 탐탁할 리 없다. '빨리 빨리'에 중독된 많은 사람들에게 그곳은 단 하루를 묵기에도 지겨운, 따분하고 지루한 곳에 불과하리라.

하지만 여기에서 비로소 행복의 비밀과 마주친 사람들도 있는 것이다. 가령 이곳에서 '시간의 실체'를 체험했다고 생각하는 어느 캐나다인은 이렇게 설명한다. "우리가 언제 시간과 진지하게 마주한 적이 있었을까. 우리는 시간 앞에서 옹졸했고, 급했고, 주저했고, 불안했고, 고독했지."

루앙프라방에서는 시간이 메콩 강과 같은 속도로 흘러간다고 젊은 시인은 생각한다. 그는 지금까지 그가 알고 있던 것과는 다른 시간의 정의와 만날 수 있었다. 거기에서 모든 존재들은 음표처럼 가벼웠고, 그들의 움직임은 그림자처럼 조용했다. "루앙프라방에서는 부디, 시간의 흐름에 몸을 맡기시기를./생의 유영(遊泳)을 천천히 즐기시기를."

(10여 년 전 루앙프라방을 스쳐지나갔던, 낡은 내 기억의 사진첩을 꺼내본다. 메콩 강, 그리고 시간의 황토색 흐름. 나는 메콩 강이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앉아 '비어라오'를 마시며 가끔 나룻배가 풍경화의 일부처럼 조심스럽게 강을 건너는 광경을 지켜보았다. 강이 멀리 소실점(消失點)을 향해 뻗어나간 곳에는 산들이 푸른 안개처럼 아른아른 떠있었다. 그 때의 기록. "시간은 아주 천천히 흘러갔다. 루앙프라방에는 별개의 시간대가 존재하고 있는 것 같았다.")

생의 유영. 루앙프라방의 잠에 젖은 시간 속에서 꿈은 흐드러지게 피어난다. 지은이는 이 책을 다섯 가지 빛깔의 꿈으로 나눈다. 여행의 꿈에서 시작된 글의 흐름은 자유의 꿈, 청춘의 꿈, 사랑의 꿈을 거쳐 행복의 꿈으로 흘러든다. 결국 세상의 모든 질문은 행복의 장을 향하게 마련이다. 그는 이렇게 대답한다. "당신이 원하는 것은 가까이에 있지 않다. 그것들은 멀리 있어서 반짝인다. 우리는 그것을 얻기 위해 길을 떠나온 것이다." 그는 여행자로 살기를 갈망한다고 말한다. "누군가 나를 본다면 저기 여행자가 간다고 말해 주면 좋겠어."

떠나기, 그리고 돌아오기. '연금술사'의 우화처럼 행복은 결국 내 곁에 숨어있는 지도 모른다. 그러나 세계를 반 바퀴나 돈 다음에야 그것을 알게 되는 게 어쩔 수 없는 인생의 진실이 아닌가? 행장을 꾸리는 건 우리의 숙명이다. 언젠가는 "삶이라는 곳으로 들어갈 수 있었고 삶이라는 곳에서 잠시 비켜 서 있을 수" 있는 '그곳', 영원한 시간 속에 존재하는 것 같은 그곳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돌아오는 것이다.

박순철 번역가·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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