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의회, 인사권·입법권 찾아와야"
단체장 눈치보는 지방의회 공무원
벌칙조항 없는 있으나마나한 조례
지방의회가 부활한지 20년이 넘었다. 사람으로 치면 성년이 지났다. 하지만 지방의회는 아직도 중앙정치와 중앙정부의 권력에 구속돼 있다. 나이는 어른이 됐지만 자립할 수 있는 권한은 없다. 성년이 된 지방의회의 독립을 가로막는 것은 무엇인지, 주요과제와 해법을 모색해본다.
지방의회가 홀로서기 위해서는 잃어버린 인사권과 입법권을 찾아와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는 지방의회에 제대로 된 성장기회를 줘야 한다는 주장이다.
헌법과 지방자치법은 '국회'와 '지방의회'를 각각 정부와 집행기관보다 앞세우고 있다. 이들이 국민과 주민을 대신해 입법권과 집행부에 대한 견제·감시권 등을 행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은 반대다. 여전히 정부와 집행기관은 국회와 지방의회보다 우위를 점하고 있다. '강 집행부-약 의회'라는 말도 이 때문에 나온다. 특히 지방의회는 입법권과 독립성에 심각한 제약을 받고 있다.
◆눈 올 때마다 조롱받는 '눈치우기 조례' = 2010년 1월 수도권에 폭설이 내린 후 서울시 '내집 앞 눈치우기 조례'가 논란을 빚었다. 이 조례는 2006년 제정된 이래 강제조항이 없어 폭설이 내릴 때마다 조롱거리가 됐다. 1992년 부천시의회가 제정했던 담배자판기 금지조례는 법률위임이 없어 무효화됐다.
현재 지방자치법 제22조는 조례에 관해 '지방자치단체는 법령의 범위 안에서 그 사무에 관하여 조례를 제정할 수 있다. 다만 주민의 권리제한 또는 의무부과에 관한 사항이나 벌칙을 정할 때에는 법률의 위임이 있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일본의 경우 '법령의 범위 안에서'가 아니라 '법령에 위반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로 규정하고 있는 것과 비교하면 하늘과 땅 차이다.
조례의 위법성은 법원 판단에 맞기면 된다는 게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주장이다. 국회가 제정한 법률을 헌법재판소가 판단하는 것과 같은 원리다.
특히 벌칙을 정할 때 법률의 위임이 있어야 한다는 대목은 조례를 사실상 허수아비로 만들고 있다. 정세욱 명지대 명예교수는 "벌칙조항 없는 조례는 휴지조각에 불과하다"고 잘라 말했다.
◆국회와는 너무 다른 지방의회 = 견제·감시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의회의 독립성도 심각한 수준이다.
경기도의회는 최근 대법원에 위헌법률심판제청을 신청했다. 도가 대법원에 조례안재의결무효확인 청구소송을 냈기 때문이다. 도의회는 앞서 도의원마다 1명씩 정책연구원(보좌관)을 두고 의회사무처 직원에 대한 인사권을 도의회 의장이 행사하는 내용의 조례 2건을 의결했다.
무상급식을 둘러싸고 마찰을 빚고 있는 서울시와 서울시의회. 서울시의회 한 공무원은 "솔직히 업무를 보는데 많은 어려움이 있다"며 "시장이 인사권을 갖고 있는 상황에서 양측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고 털어놨다.
현재 국회는 의회 공무원에 대한 인사권이 국회의장에게 있다. 국회는 사무처 외에도 전문성을 강화하기 위해 입법조사처 예산정책처 등을 두고 있다. 모두 국회의원의 의정활동을 보좌하는 기구다.
하지만 '작은 국회'라고 할 수 있는 지방의회 사정은 전혀 다르다. 소수의 별정직 공무원을 제외하고 의회공무원은 모두 자치단체장이 임명한다. 전문성도 없는 순환직이다.
김회창 인천 동구의회 전문위원은 "대통령이 국회 공무원을 인사한다면 누가 대통령 비판하는 일에 앞장서겠느냐"며 "지방의회도 마찬가지로 자신의 인사권을 쥔 단체장에 대한 비판에 어떤 공무원이 감히 나서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집행부를 제대로 견제·감시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의회의 인사권을 단체장으로부터 찾아와야 한다"며 "그래야 전문성 갖춘 의회 공무원도 만들어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정세욱 명예교수는 "제대로 된 입법권과 인사권만 지방의회에 주어진다고 해도 지방의회는 지금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바뀔 것"이라고 말했다.
◆"지방의원, 문제해결에 스스로 나서야" = 지방자치법이 이처럼 누더기로 변한 이유는 중앙정부와 정치권 탓이 크다.
지방자치법은 지난 1988년 탄생했다. 하지만 총선을 앞둔 국회가 선거구 조정에 신경을 쓰는 사이 지방자치법은 얼떨결에 당시 내무부가 올린 안대로 통과됐다. 총선 이후 여소야대 국회에서 사태의 심각성을 느낀 야당들이 앞다퉈 개정안을 냈지만 이 역시 1990년 3당합당으로 물 건너갔다.
정세욱 명예교수는 "우리나라 의회민주주의의 역사는 짧다"며 "국회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지방의회까지 이어지면서 이를 변화시키는 게 쉽지 않다"고 진단했다.
전문가들은 우선 행정안전부와 국회, 단체장의 인식전환을 요구했다. 육동일 충남대 교수는 "제도적 개혁은 중앙의 인식 전환과 결단이 필요하다"며 "단체장도 강한 의회가 지방자치를 위해 훨씬 효율적이라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방의원의 자각도 요구했다. 육 교수는 "의원이 제대로 공부할 수 있는 연수원이나 프로그램을 장기적으로 운영할 필요가 있다"며 "지방의회도 상임위별 공동보좌관제 등 전문성을 강화하기 위한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김회창 전문위원은 "지방의원 스스로 문제해결을 위해 움직이지 않으면 아무도 움직이지 않는다"며 제도개혁을 위해 지방의원이 적극 나설 것을 주문했다.
윤여운 기자 yuyoo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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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체장 눈치보는 지방의회 공무원
벌칙조항 없는 있으나마나한 조례
지방의회가 부활한지 20년이 넘었다. 사람으로 치면 성년이 지났다. 하지만 지방의회는 아직도 중앙정치와 중앙정부의 권력에 구속돼 있다. 나이는 어른이 됐지만 자립할 수 있는 권한은 없다. 성년이 된 지방의회의 독립을 가로막는 것은 무엇인지, 주요과제와 해법을 모색해본다.
지방의회가 홀로서기 위해서는 잃어버린 인사권과 입법권을 찾아와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는 지방의회에 제대로 된 성장기회를 줘야 한다는 주장이다.
헌법과 지방자치법은 '국회'와 '지방의회'를 각각 정부와 집행기관보다 앞세우고 있다. 이들이 국민과 주민을 대신해 입법권과 집행부에 대한 견제·감시권 등을 행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은 반대다. 여전히 정부와 집행기관은 국회와 지방의회보다 우위를 점하고 있다. '강 집행부-약 의회'라는 말도 이 때문에 나온다. 특히 지방의회는 입법권과 독립성에 심각한 제약을 받고 있다.
◆눈 올 때마다 조롱받는 '눈치우기 조례' = 2010년 1월 수도권에 폭설이 내린 후 서울시 '내집 앞 눈치우기 조례'가 논란을 빚었다. 이 조례는 2006년 제정된 이래 강제조항이 없어 폭설이 내릴 때마다 조롱거리가 됐다. 1992년 부천시의회가 제정했던 담배자판기 금지조례는 법률위임이 없어 무효화됐다.
현재 지방자치법 제22조는 조례에 관해 '지방자치단체는 법령의 범위 안에서 그 사무에 관하여 조례를 제정할 수 있다. 다만 주민의 권리제한 또는 의무부과에 관한 사항이나 벌칙을 정할 때에는 법률의 위임이 있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일본의 경우 '법령의 범위 안에서'가 아니라 '법령에 위반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로 규정하고 있는 것과 비교하면 하늘과 땅 차이다.
조례의 위법성은 법원 판단에 맞기면 된다는 게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주장이다. 국회가 제정한 법률을 헌법재판소가 판단하는 것과 같은 원리다.
특히 벌칙을 정할 때 법률의 위임이 있어야 한다는 대목은 조례를 사실상 허수아비로 만들고 있다. 정세욱 명지대 명예교수는 "벌칙조항 없는 조례는 휴지조각에 불과하다"고 잘라 말했다.
◆국회와는 너무 다른 지방의회 = 견제·감시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의회의 독립성도 심각한 수준이다.
경기도의회는 최근 대법원에 위헌법률심판제청을 신청했다. 도가 대법원에 조례안재의결무효확인 청구소송을 냈기 때문이다. 도의회는 앞서 도의원마다 1명씩 정책연구원(보좌관)을 두고 의회사무처 직원에 대한 인사권을 도의회 의장이 행사하는 내용의 조례 2건을 의결했다.
무상급식을 둘러싸고 마찰을 빚고 있는 서울시와 서울시의회. 서울시의회 한 공무원은 "솔직히 업무를 보는데 많은 어려움이 있다"며 "시장이 인사권을 갖고 있는 상황에서 양측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고 털어놨다.
현재 국회는 의회 공무원에 대한 인사권이 국회의장에게 있다. 국회는 사무처 외에도 전문성을 강화하기 위해 입법조사처 예산정책처 등을 두고 있다. 모두 국회의원의 의정활동을 보좌하는 기구다.
하지만 '작은 국회'라고 할 수 있는 지방의회 사정은 전혀 다르다. 소수의 별정직 공무원을 제외하고 의회공무원은 모두 자치단체장이 임명한다. 전문성도 없는 순환직이다.
김회창 인천 동구의회 전문위원은 "대통령이 국회 공무원을 인사한다면 누가 대통령 비판하는 일에 앞장서겠느냐"며 "지방의회도 마찬가지로 자신의 인사권을 쥔 단체장에 대한 비판에 어떤 공무원이 감히 나서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집행부를 제대로 견제·감시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의회의 인사권을 단체장으로부터 찾아와야 한다"며 "그래야 전문성 갖춘 의회 공무원도 만들어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정세욱 명예교수는 "제대로 된 입법권과 인사권만 지방의회에 주어진다고 해도 지방의회는 지금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바뀔 것"이라고 말했다.
◆"지방의원, 문제해결에 스스로 나서야" = 지방자치법이 이처럼 누더기로 변한 이유는 중앙정부와 정치권 탓이 크다.
지방자치법은 지난 1988년 탄생했다. 하지만 총선을 앞둔 국회가 선거구 조정에 신경을 쓰는 사이 지방자치법은 얼떨결에 당시 내무부가 올린 안대로 통과됐다. 총선 이후 여소야대 국회에서 사태의 심각성을 느낀 야당들이 앞다퉈 개정안을 냈지만 이 역시 1990년 3당합당으로 물 건너갔다.
정세욱 명예교수는 "우리나라 의회민주주의의 역사는 짧다"며 "국회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지방의회까지 이어지면서 이를 변화시키는 게 쉽지 않다"고 진단했다.
전문가들은 우선 행정안전부와 국회, 단체장의 인식전환을 요구했다. 육동일 충남대 교수는 "제도적 개혁은 중앙의 인식 전환과 결단이 필요하다"며 "단체장도 강한 의회가 지방자치를 위해 훨씬 효율적이라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방의원의 자각도 요구했다. 육 교수는 "의원이 제대로 공부할 수 있는 연수원이나 프로그램을 장기적으로 운영할 필요가 있다"며 "지방의회도 상임위별 공동보좌관제 등 전문성을 강화하기 위한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김회창 전문위원은 "지방의원 스스로 문제해결을 위해 움직이지 않으면 아무도 움직이지 않는다"며 제도개혁을 위해 지방의원이 적극 나설 것을 주문했다.
윤여운 기자 yuyoo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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