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관이 힘 모으면 줄일 수 있습니다"
교육활동과 지역사회 연결 네트워크 구축 필요
핀란드 사례 확산 … 노원구 활동 눈에 띄어
1년 반 전에 대학을 졸업한 A씨. 지난 시간이 지옥 같다. 졸업을 했지만 입사시험이 그를 괴롭혔다. 수없이 원서를 쓰고 면접을 봤지만 결과는 번번이 실패. 학자금 대출도 갚아야 하는데 언제 직장을 얻게 될지 기약이 없다. 시골에 계신 부모님께도 더 이상 손 벌릴 염치가 없다. 설상가상으로 최근 여자 친구마저 이별을 통보해 왔다. 삶을 지탱하기 힘들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A씨는 어느 순간 한남대교 위에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그래, 더 이상 미련을 두지 말자….'
그런데 다리 한복판 난간에 전화기(생명의 전화) 한 대가 보인다. 마지막으로 세상에 욕이라도 질펀하게 해주고 싶다는 생각에 수화기를 들었다. 상담원이 전화를 받는다. 상담원은 차분하지만 따뜻한 목소리로 얘기를 들어주며 상담을 이어간다. 그 사이 서울소방재난본부에는 출동요청이 들어갔다. 한남대교에서 7분 거리에 있는 광진수난구조대가 접수했다. 그런데 하소연하던 A씨가 갑자기 격한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강으로 뛰어내렸다. 다행히 구조대는 이미 출동한 상태. A씨를 구한 뒤 용산소방서에서 출동한 앰뷸런스를 통해 응급실로 이송했다. 소중한 한 생명이 다시 살아났다.
◆한강다리에도 생명의 전화가 = 앞의 사연은 한강다리에 설치된 '생명의 전화'를 둘러싼 가상 시나리오다. 자살을 막는 데 민관(民官)이 따로 있을 수 없다. 25일 오전 한남대교 상류 330m 지점(21번 가로등)에 자살예방 긴급전화인 '생명의 전화' 개통식이 열렸다. 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이 서울시 소방재난본부, 한국생명의전화와 함께 투신 자살률이 높은 마포대교와 한남대교에 각 4대씩 '생명의 전화' 8대를 설치했다. 자살을 시도하려는 사람에게 마지막 전화통화를 유도해 마음을 돌리도록 하거나 또는 목격한 사람이 신속하게 신고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하는 것이 '생명의 전화'다. 전화 수화기를 들고 버튼을 누르면 자살예방전문가의 상담과 119구조팀의 출동이 동시에 이뤄진다.
이시형 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 이사장은 "생명의전화가 자살기도자들의 마음을 돌리기를 바란다"며 "전화기 설치 효과를 지켜본 뒤 주무관청과 협의해 다른 지역으로도 설치를 확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생명의 전화는 우리나라에는 이번에 처음 도입됐지만 세계적으로는 자살장소로 이름이 높은 곳에는 생명의 전화가 설치돼 있는 곳이 상당수다. 1927년 다리가 개통된 이후 1500명이 넘는 자살자가 발생하고 있는 미국 샌프란시스코 금문교에는 전화와 난간이 설치됐고, 호주 갭 팍 절벽에는 긴급전화, 감시카메라, 철책을 설치돼 있다.

◆자살률 줄인 핀란드 모범 확산 = 우리사회에서 자살사망률과 증가율이 급속도로 확산되는 것과 달리 해외에서는 국가적인 차원에서 이 문제를 접근하면서 실질적인 효과를 거두고 있는 곳이 적지 않다. 자살이 예방가능하다는 의미다. 특히 핀란드는 자살예방프로젝트의 모범사례로 꼽히는 국가다. 핀란드 역시 1965년부터 1990년까지 25년간 자살사망률은 3배 증가했고, 1990년에는 인구 10만명 당 50명이 자살로 사망하는 등 심각한 국가적 문제로 부각됐다. 이에 핀란드 정부는 1987년부터 국가차원의 자살예방프로젝트를 10년 동안 가동했다. 정신질환 탐지와 치료대책, 약물남용대책, 학생 자살예방교육, 자살시도자 관리, 실업대책, 미디어와 대중교육 등 12개 분야의 프로그램을 역점적으로 실시한 결과 핀란드의 자살률은 2005년에는 10만명당 18명, 2008년에는 16.7명으로 떨어졌다.
특이한 점으로는 언론의 자살관련 보도 자제도 자살예방 프로그램에 포함됐다는 점이다. 핀란드에서는 '자살'이라는 단어를 미디어에서 찾아보기 힘들고, 자살 방법에 대한 자세한 보도도 금지된다.
핀란드의 성공사례는 영국, 미국, 아일랜드, 호주, 스칸디나비아 지역 국가 등 10여개 나라에도 영향을 줘 국가 차원의 자살예방 프로젝트를 수립하게 했고, WHO와 UN의 자살예방 지침도 핀란드 사례를 근거로 작성됐다.
또 가까운 일본도 1998년 이후 13년간 연속적으로 자살자 수가 3만 명을 넘어서고 있는 등 심각한 사회문제가 됐다. 이에 따라 일본 후생 노동성은 '생명의 주간'을 만들어 캠페인을 진행하고, 정부차원의 자살예방대책을 수립했다. 또 2006년에는 자살대책기본법도 통과시키면서 자살이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적 문제로 부각됐다. 이 같은 활동이 서서히 성과를 보이기 시작했다. 2009년 3월 3103명이던 자살자 수는 2010년에는 2945명으로 감소했다.
◆ 정부, 지자체, 민간단체가 협력해야 = 국내에서도 조금씩 긍정적인 신호가 감지되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지난 3월 처음으로 자살예방법을 제정해 법적인 근거를 마련했다. 또 한국자살예방협회와 한국생명의전화 등 민간단체의 다양한 노력도 점점 더 공감대를 얻어가고 있다.
하지만 민간의 힘만으로는 역부족이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함께 나서 민간단체와 네크워크를 구성해야 실질적인 효과를 볼 수 있다는 지적이 높다.
현재 정부차원에서는 광역정신보건센터가 설치돼 자살예방사업의 허브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하지만 담당자의 주업무가 정신보건영역이고, 자살예방은 부수적인 업무에 불과하다는 게 중론이다. 이런 측면에서 지난 6월 국내에서 처음으로 자살예방사업 관련 실무자 및 전문가가 한자리에 모인 '자살예방 활성화 워크숍'은 의미가 남다르다.
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과 한국생명의전화, 한국자살예방협회가 함께 준비해 전국적 민관 협력체계 구축의 시발점을 마련했기 때문이다. 또 한국자살예방협회가 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과 함께 개발하고 있는 '한국형 자살예방 교육과정'도 기대를 모으고 있다.
또 최근에는 지방자치단체들도 자살문제에 자발적으로 관심을 갖는 곳이 조금씩 생겨나고 있다.
특히 서울 노원구의 경우 김성환 구청장이 자살문제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면서 구 차원의 생명존중사업계획도 수립하고, 유관기관의 협력체계도 구축하는 등 선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또 올 1월에는 구청장이 위원장이 되는 생명존중위원회를 구축했고, 자살시도자 및 유가족 사후관리 등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이를 위한 법적 근거마련을 위해 전국최초로 조례와 시행규칙도 제정하는 등 전방위적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김성환 구청장은 이에 대해 "절대적 위기상황만 벗어나면 (자살을) 이겨낼 수 있을 것"이라며 "올해는 체계를 완비하고 내년부터는 실질적인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재철 기자 jcju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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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활동과 지역사회 연결 네트워크 구축 필요
핀란드 사례 확산 … 노원구 활동 눈에 띄어
1년 반 전에 대학을 졸업한 A씨. 지난 시간이 지옥 같다. 졸업을 했지만 입사시험이 그를 괴롭혔다. 수없이 원서를 쓰고 면접을 봤지만 결과는 번번이 실패. 학자금 대출도 갚아야 하는데 언제 직장을 얻게 될지 기약이 없다. 시골에 계신 부모님께도 더 이상 손 벌릴 염치가 없다. 설상가상으로 최근 여자 친구마저 이별을 통보해 왔다. 삶을 지탱하기 힘들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A씨는 어느 순간 한남대교 위에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그래, 더 이상 미련을 두지 말자….'
그런데 다리 한복판 난간에 전화기(생명의 전화) 한 대가 보인다. 마지막으로 세상에 욕이라도 질펀하게 해주고 싶다는 생각에 수화기를 들었다. 상담원이 전화를 받는다. 상담원은 차분하지만 따뜻한 목소리로 얘기를 들어주며 상담을 이어간다. 그 사이 서울소방재난본부에는 출동요청이 들어갔다. 한남대교에서 7분 거리에 있는 광진수난구조대가 접수했다. 그런데 하소연하던 A씨가 갑자기 격한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강으로 뛰어내렸다. 다행히 구조대는 이미 출동한 상태. A씨를 구한 뒤 용산소방서에서 출동한 앰뷸런스를 통해 응급실로 이송했다. 소중한 한 생명이 다시 살아났다.
◆한강다리에도 생명의 전화가 = 앞의 사연은 한강다리에 설치된 '생명의 전화'를 둘러싼 가상 시나리오다. 자살을 막는 데 민관(民官)이 따로 있을 수 없다. 25일 오전 한남대교 상류 330m 지점(21번 가로등)에 자살예방 긴급전화인 '생명의 전화' 개통식이 열렸다. 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이 서울시 소방재난본부, 한국생명의전화와 함께 투신 자살률이 높은 마포대교와 한남대교에 각 4대씩 '생명의 전화' 8대를 설치했다. 자살을 시도하려는 사람에게 마지막 전화통화를 유도해 마음을 돌리도록 하거나 또는 목격한 사람이 신속하게 신고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하는 것이 '생명의 전화'다. 전화 수화기를 들고 버튼을 누르면 자살예방전문가의 상담과 119구조팀의 출동이 동시에 이뤄진다.
이시형 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 이사장은 "생명의전화가 자살기도자들의 마음을 돌리기를 바란다"며 "전화기 설치 효과를 지켜본 뒤 주무관청과 협의해 다른 지역으로도 설치를 확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생명의 전화는 우리나라에는 이번에 처음 도입됐지만 세계적으로는 자살장소로 이름이 높은 곳에는 생명의 전화가 설치돼 있는 곳이 상당수다. 1927년 다리가 개통된 이후 1500명이 넘는 자살자가 발생하고 있는 미국 샌프란시스코 금문교에는 전화와 난간이 설치됐고, 호주 갭 팍 절벽에는 긴급전화, 감시카메라, 철책을 설치돼 있다.


특이한 점으로는 언론의 자살관련 보도 자제도 자살예방 프로그램에 포함됐다는 점이다. 핀란드에서는 '자살'이라는 단어를 미디어에서 찾아보기 힘들고, 자살 방법에 대한 자세한 보도도 금지된다.
핀란드의 성공사례는 영국, 미국, 아일랜드, 호주, 스칸디나비아 지역 국가 등 10여개 나라에도 영향을 줘 국가 차원의 자살예방 프로젝트를 수립하게 했고, WHO와 UN의 자살예방 지침도 핀란드 사례를 근거로 작성됐다.
또 가까운 일본도 1998년 이후 13년간 연속적으로 자살자 수가 3만 명을 넘어서고 있는 등 심각한 사회문제가 됐다. 이에 따라 일본 후생 노동성은 '생명의 주간'을 만들어 캠페인을 진행하고, 정부차원의 자살예방대책을 수립했다. 또 2006년에는 자살대책기본법도 통과시키면서 자살이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적 문제로 부각됐다. 이 같은 활동이 서서히 성과를 보이기 시작했다. 2009년 3월 3103명이던 자살자 수는 2010년에는 2945명으로 감소했다.
◆ 정부, 지자체, 민간단체가 협력해야 = 국내에서도 조금씩 긍정적인 신호가 감지되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지난 3월 처음으로 자살예방법을 제정해 법적인 근거를 마련했다. 또 한국자살예방협회와 한국생명의전화 등 민간단체의 다양한 노력도 점점 더 공감대를 얻어가고 있다.
하지만 민간의 힘만으로는 역부족이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함께 나서 민간단체와 네크워크를 구성해야 실질적인 효과를 볼 수 있다는 지적이 높다.
현재 정부차원에서는 광역정신보건센터가 설치돼 자살예방사업의 허브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하지만 담당자의 주업무가 정신보건영역이고, 자살예방은 부수적인 업무에 불과하다는 게 중론이다. 이런 측면에서 지난 6월 국내에서 처음으로 자살예방사업 관련 실무자 및 전문가가 한자리에 모인 '자살예방 활성화 워크숍'은 의미가 남다르다.
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과 한국생명의전화, 한국자살예방협회가 함께 준비해 전국적 민관 협력체계 구축의 시발점을 마련했기 때문이다. 또 한국자살예방협회가 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과 함께 개발하고 있는 '한국형 자살예방 교육과정'도 기대를 모으고 있다.
또 최근에는 지방자치단체들도 자살문제에 자발적으로 관심을 갖는 곳이 조금씩 생겨나고 있다.
특히 서울 노원구의 경우 김성환 구청장이 자살문제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면서 구 차원의 생명존중사업계획도 수립하고, 유관기관의 협력체계도 구축하는 등 선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또 올 1월에는 구청장이 위원장이 되는 생명존중위원회를 구축했고, 자살시도자 및 유가족 사후관리 등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이를 위한 법적 근거마련을 위해 전국최초로 조례와 시행규칙도 제정하는 등 전방위적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김성환 구청장은 이에 대해 "절대적 위기상황만 벗어나면 (자살을) 이겨낼 수 있을 것"이라며 "올해는 체계를 완비하고 내년부터는 실질적인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재철 기자 jcju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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