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순의 세상톺아보기] 시리아의 광주, 하마의 비극

지역내일 2011-08-08
전 경향신문 논설실장

하마는 시리아의 광주(光州)다. 아니, 민주화를 위해 흘린 피의 양만 따지면 광주는 하마에 명함을 내밀기 어려울 정도다. 하마는 광주보다 100배에 가까운 피를 더 흘렸다.

공식 집계로 200여명의 목숨을 잃은 광주민주화운동이 일어난 지 2년 뒤인 1982년 하마에서는 무장봉기한 2만여 명의 시민이 보안군에 의해 무차별 학살당했다. 당시 독재자 하페즈 알-아사드 대통령은 탱크와 대포는 물론 전투기까지 동원해 하마를 휩쓸었다.

하마에 뼈아픈 과거가 재현되고 있다. 학살의 주인공이 아버지의 권력을 이어받은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시위를 주도한 핵심 역시 30년 전 희생자들의 후손이나 친인척들이다.

지난주 시리아 정부군의 무차별 포격으로 140명 이상의 하마 시민이 숨졌다고 인권단체들은 전한다. 한 맺힌 시민들은 이번엔 결단코 과거의 비극에 머물지 않겠다면서 결사항전의 의지를 다지고 있다는 소식이다.

사실 올해 시위는 하마에 그치지 않고 시리아 전역에서 벌어지고 있다. 튀니지, 이집트, 바레인, 예멘의 민중 봉기에 힘입어 5개월째 이어지고 있는 시리아의 민주화 시위로 이미 1천700여명이 숨지고 수천 명이 체포됐다고 인권단체는 추산한다.

아사드는 지난 3월 중순 시위가 촉발한 이래 하마에 대한 무력 탄압만은 자제해왔다. 30년 전의 학살에 대한 부담감 때문이다. 하지만 상황이 심각해지자 바샤르 알-아사드는 강경 진압을 선택했다.

이처럼 상황이 악화되는 국면이지만 국제사회는 말로만 비난할 뿐 뾰족한 압력수단을 동원하지 못하고 있다. 이는 난마처럼 얽힌 중동정치와 시리아의 특수 상황 탓이 크다.

군부 동원 강압정치로 정권 유지

수니파가 대종을 이루고 있는 시리아에서 40년이 넘는 아사드 일가의 장기집권을 뒷받침하는 세력은 인구의 12%에 불과한 알라위파이다. 국민의 74%는 수니파다. 이들은 절대다수임에도 소수 분파인 알라위파의 권력으로부터 소외당했다.

중동에선 이라크·레바논·예멘처럼 통치자들이 정통성이 없는데다 사회가 종교·부족·지역감정으로 사분오열돼 있어 군부를 동원한 강압정치가 정권유지의 수단이었다.

하페즈 알-아사드 대통령 시절에 이런 풍자 우스개가 돌았다. 대통령 선거가 끝나고 한 측근이 아사드에게 말했다. "대통령 각하, 각하는 99.7%의 지지를 얻어 선거에서 승리하셨습니다. 이는 시리아인의 1% 중 10분의 3만이 각하에게 표를 던지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더 필요한 것이 있겠습니까?" 아사드의 대답은 간단명료했다. "그들의 명단!"

아사드 부자의 정권유지 수단으로는 강도 높은 반이스라엘·반미 대외정책도 유효했다. 소련 해체로 인한 탈냉전 이후에도 국민통제 수단으로 더없이 멋진 카드였다.

이 때문에 시리아는 종종 북한과 한 묶음으로 엮여 들어간다. 시리아의 부자 권력승계와 군부를 동원한 철권통치는 북한과 판박이다. 자연히 미국을 비롯한 서방 국가들에겐 눈엣가시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서방 입장에선 이슬람 근본주의를 추구하는 '무슬림형제단'에게 정권이 넘어가는 것도 대안이 아니라는 데 시리아의 비극이 도사리고 있다. 하마는 '무슬림 형제단'의 시리아 지부의 근거지이기도 하다. 이웃 아랍 국가들도 시리아의 불길이 자기 나라에 옮겨 붙지 않을까 두려워할 뿐이다.

아랍에는 '폭정 60년이 무정부 상태의 하루보다 낫다'는 속담이 전해 내려온다. 기본적으로 상업사회인 대부분의 아랍 국가들이 혼란을 두려워했던 분위기를 반영하는 말이다. 위로부터 통제가 사라져 모든 부족과 종교 분파가 서로 대립하는 사태가 무엇보다 걱정스러웠던 것이다.

세계경제 위기 속 뒷전으로 밀리는가

얼마 전엔 하마의 한 청년이 이런 노래를 부르다 죽어갔다. "이봐, 바샤르, 거짓말쟁이. 저주받을 당신과 당신의 연설! 자유가 목전에 왔으니, 꺼져버려!" 시리아 민주화 시위의 구심점인 하마에는 바샤르 알-아사드를 비판하는 이 노래가 급속하게 번지고 있다고 한다.

미국발 세계경제위기의 소용돌이 속에 시리아는 최악의 사태를 맞이했다. 모두들 입으로만 걱정해 주는 '하마의 피눈물'은 뒷전으로 밀려버릴 것만 같아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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