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인, 전 서울신문 편집국장
생태계는 치열하게 경쟁하면서, 먹고 먹히는 먹이사슬로 이어져 있으며, 적응하는 자만이 살아남는 세계다. 나무들이 빽빽한 숲에서는 서로 햇빛을 더 받기 위해 나무들이 경쟁적으로 키를 키운다.
이른 봄, 숲 속 바닥 식물들은 키 큰 나무들이 빛을 차단하기 전에 빨리 꽃을 피우고 잎을 틔운다. 소나무들은 신갈나무 등 참나무류에 밀려 계속 자리를 내주고 줄어들고 있다. 소나무보다 키가 빨리 자라는 활엽수인 신갈나무가 햇빛을 다 차지해버리기 때문이다.
정원의 여린 찔레 순마다 연두색 진딧물이 성찬을 즐긴다. 진딧물이 꽁지에서 달콤한 분비물을 흘리면 개미들이 몰려들어 핥아먹는다. 어디서 날아왔는지 무당벌레는 진딧물을 잡아먹는다.
물론 생태계는 포식자와 피식자의 먹이사슬과는 달리 서로 함께 살아가는 공생관계도 있다. 뿌리혹박테리아와 콩과 식물의 경우처럼 뿌리혹에 서식하는 박테리아가 질소 화합물을 콩과 식물에 주는 대신 콩과 식물은 박테리아에게 탄수화물을 준다.
공생도 서로 도와주는 상리(相利)공생도 있지만, 고래의 피부에 붙어 여기저기 이동하는 따개비처럼 한쪽은 이득을 얻지만, 다른 쪽은 이득도 손해도 없는 '편리(片利 )공생도 있다. 기생충 같이 다른 한쪽이 피해를 보는 것도 있는데, 생태학적으로는 모두 넓은 의미의 공생이다.
이명박 대통령(MB)이 올 광복절 경축사에서 밝힌 '공생 발전'이 요즘 국정의 화두가 되고 있다. 그런데 김두우 청와대 홍보수석은 이 '공생 발전'을 영어로는 'Ecosystemic Development'라고 하며 "영문 번역 그대로 '생태계형 발전'이라고 말하면 더 쉽게 이해될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생태계에서 어떤 특정 개체가 크게 늘거나 줄어들면 생태계가 파괴되듯이 다양한 주체들이 함께 발전하려면 평형과 균형이 반드시 필요하며, 대기업, 중소기업도 하나의 건강한 '기업생태계'를 조성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
작은 정부로 돌아가야 하는데
생태계는 본래 적자생존의 원칙에 따라 진화하고, 삼림은 천이(遷移)과정을 밟기도 하지만, 파괴의 주범은 인간이다. 인간의 탐욕에 기반한 자본주의적 개발이 생태계를 혼란에 빠뜨리게 한다. DMZ 일대가 생태자원의 보고라고 하는 것도 60년 동안 인간이 발을 들여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기본적으로 '생태계형' 이라고 말할 때는 인위적인 변경 조작이 배제된 것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공생 발전'을 '생태계형 발전'이라고 바꾸어 말하면, MB정부는 '야경 국가'의 '작은 정부'로 되돌아 가야한다. 현재 국정 기조로 내걸고 있는 동반 성장, 친서민 중도실용, 공정한 사회의 구현은 물론, 정국의 최대 쟁점으로 부각되고 있는 복지 모델 선택도 결국 정부의 개입을 확대하는 것이지 축소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공생 발전'의 일부 실천 안으로 제시한 비정규직 차별 해소, 골목상권 보호, 임대주택 공급확대를 하려해도 마찬가지다. MB가 강조하고 있는 △탐욕 경영 → 윤리 경영 △자본의 자유 → 자본의 책임 △빈익빈 부익부 → 상생 번영으로 가는 시장 모델을 만들기 위해서는 '큰 정부'가 되지 않을 수 없다.
공생은 생태계 현상 가운데 극히 작은 한 부분에 불과하다. '공생'에다 '생태계형'을 치환할 수는 없다.
다음으로 '공생 발전'이라는 국정 지표는 한 마디로 MB의 뒤늦은 반성문이라고 본다. 임기 말 1년여를 남겨 둔 정권 종반기에 와서 '공생 발전'의 깃발을 높이 든 것은 정권 초기에 내세웠던 가치를 축소할 수밖에 없다는 신호로 읽히기 때문이다.
정권 출범 때 출자총액제한제도 완전 폐지, 금산분리 대폭 완화 등 비즈니스 프렌들리로 재벌 위주의 성장정책을 취했고, 그 결과 대기업에 일감 몰아주기, 내부자 거래 등 부작용이 속출했다.
대기업엔 돈이 쌓였지만, 일자리 창출로 연결되지는 않았다. 고환율, 저금리가 지속되는 가운데 부자감세에 고물가의 고통으로 빈부의 격차 등 양극화 현상은 더 심화되고 있으니, 지금 와서 '자본의 책임'과 '윤리 경영'을 새삼 강조하고 나선 것이다.
반성문만 있지 행동은 없는 것 아닌가
또 2013년까지 균형재정 달성을 얘기하면서 부자감세 정책은 밀어붙이고, 복지 포퓰리즘을 탓하는 것도 '공생 발전'의 진정성에 고개를 갸우뚱하게 한다.
MB의 '반성문'은 구체적인 후속 액션 플랜들이 나오지 않아 아직은 수사에 그치고 있다. 그 동안 강조해왔던 '친 서민'이나 '공정사회'도 제대로 안 되는 마당에 그다지 큰 기대가 없는 것도 사실이다. '반성문'은 반성의 행동을 보일 때, 가치가 있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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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계는 치열하게 경쟁하면서, 먹고 먹히는 먹이사슬로 이어져 있으며, 적응하는 자만이 살아남는 세계다. 나무들이 빽빽한 숲에서는 서로 햇빛을 더 받기 위해 나무들이 경쟁적으로 키를 키운다.
이른 봄, 숲 속 바닥 식물들은 키 큰 나무들이 빛을 차단하기 전에 빨리 꽃을 피우고 잎을 틔운다. 소나무들은 신갈나무 등 참나무류에 밀려 계속 자리를 내주고 줄어들고 있다. 소나무보다 키가 빨리 자라는 활엽수인 신갈나무가 햇빛을 다 차지해버리기 때문이다.
정원의 여린 찔레 순마다 연두색 진딧물이 성찬을 즐긴다. 진딧물이 꽁지에서 달콤한 분비물을 흘리면 개미들이 몰려들어 핥아먹는다. 어디서 날아왔는지 무당벌레는 진딧물을 잡아먹는다.
물론 생태계는 포식자와 피식자의 먹이사슬과는 달리 서로 함께 살아가는 공생관계도 있다. 뿌리혹박테리아와 콩과 식물의 경우처럼 뿌리혹에 서식하는 박테리아가 질소 화합물을 콩과 식물에 주는 대신 콩과 식물은 박테리아에게 탄수화물을 준다.
공생도 서로 도와주는 상리(相利)공생도 있지만, 고래의 피부에 붙어 여기저기 이동하는 따개비처럼 한쪽은 이득을 얻지만, 다른 쪽은 이득도 손해도 없는 '편리(片利 )공생도 있다. 기생충 같이 다른 한쪽이 피해를 보는 것도 있는데, 생태학적으로는 모두 넓은 의미의 공생이다.
이명박 대통령(MB)이 올 광복절 경축사에서 밝힌 '공생 발전'이 요즘 국정의 화두가 되고 있다. 그런데 김두우 청와대 홍보수석은 이 '공생 발전'을 영어로는 'Ecosystemic Development'라고 하며 "영문 번역 그대로 '생태계형 발전'이라고 말하면 더 쉽게 이해될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생태계에서 어떤 특정 개체가 크게 늘거나 줄어들면 생태계가 파괴되듯이 다양한 주체들이 함께 발전하려면 평형과 균형이 반드시 필요하며, 대기업, 중소기업도 하나의 건강한 '기업생태계'를 조성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
작은 정부로 돌아가야 하는데
생태계는 본래 적자생존의 원칙에 따라 진화하고, 삼림은 천이(遷移)과정을 밟기도 하지만, 파괴의 주범은 인간이다. 인간의 탐욕에 기반한 자본주의적 개발이 생태계를 혼란에 빠뜨리게 한다. DMZ 일대가 생태자원의 보고라고 하는 것도 60년 동안 인간이 발을 들여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기본적으로 '생태계형' 이라고 말할 때는 인위적인 변경 조작이 배제된 것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공생 발전'을 '생태계형 발전'이라고 바꾸어 말하면, MB정부는 '야경 국가'의 '작은 정부'로 되돌아 가야한다. 현재 국정 기조로 내걸고 있는 동반 성장, 친서민 중도실용, 공정한 사회의 구현은 물론, 정국의 최대 쟁점으로 부각되고 있는 복지 모델 선택도 결국 정부의 개입을 확대하는 것이지 축소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공생 발전'의 일부 실천 안으로 제시한 비정규직 차별 해소, 골목상권 보호, 임대주택 공급확대를 하려해도 마찬가지다. MB가 강조하고 있는 △탐욕 경영 → 윤리 경영 △자본의 자유 → 자본의 책임 △빈익빈 부익부 → 상생 번영으로 가는 시장 모델을 만들기 위해서는 '큰 정부'가 되지 않을 수 없다.
공생은 생태계 현상 가운데 극히 작은 한 부분에 불과하다. '공생'에다 '생태계형'을 치환할 수는 없다.
다음으로 '공생 발전'이라는 국정 지표는 한 마디로 MB의 뒤늦은 반성문이라고 본다. 임기 말 1년여를 남겨 둔 정권 종반기에 와서 '공생 발전'의 깃발을 높이 든 것은 정권 초기에 내세웠던 가치를 축소할 수밖에 없다는 신호로 읽히기 때문이다.
정권 출범 때 출자총액제한제도 완전 폐지, 금산분리 대폭 완화 등 비즈니스 프렌들리로 재벌 위주의 성장정책을 취했고, 그 결과 대기업에 일감 몰아주기, 내부자 거래 등 부작용이 속출했다.
대기업엔 돈이 쌓였지만, 일자리 창출로 연결되지는 않았다. 고환율, 저금리가 지속되는 가운데 부자감세에 고물가의 고통으로 빈부의 격차 등 양극화 현상은 더 심화되고 있으니, 지금 와서 '자본의 책임'과 '윤리 경영'을 새삼 강조하고 나선 것이다.
반성문만 있지 행동은 없는 것 아닌가
또 2013년까지 균형재정 달성을 얘기하면서 부자감세 정책은 밀어붙이고, 복지 포퓰리즘을 탓하는 것도 '공생 발전'의 진정성에 고개를 갸우뚱하게 한다.
MB의 '반성문'은 구체적인 후속 액션 플랜들이 나오지 않아 아직은 수사에 그치고 있다. 그 동안 강조해왔던 '친 서민'이나 '공정사회'도 제대로 안 되는 마당에 그다지 큰 기대가 없는 것도 사실이다. '반성문'은 반성의 행동을 보일 때, 가치가 있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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