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산도호부의 위상을 재현해 구미시의 새로운 상징물로 기대되고 있는 낙남루가 복원된다.
26일 구미시는 지역의 역사와 문화유산에 대한 시민의 자긍심을 높이고 역사의 현장을 관광 명소로 만든다는 취지로 낙남루 중창을 추진, 26일 오후 선산읍 1호 광장에서 기공식을 개최한다.
선상읍성 남문인 낙남루는 조선조 500년 동안 선산도호부와 선산군의 관문으로 선산을 지켜온 역사적인 문화유산. 낙남루는 고려말에 처음 축조된 것으로 조선시대 말기까지 수 백년 동안 선산 사람들과 선산을 거쳐간 모든 사람들이 드나든 관문으로 전해진다.
특히 선산읍성의 연혁은 ‘신증동국여지승람’ ‘일선지’ ‘여지도서’ 등 인문지리지와‘선산부 관안’ 등을 통해 구체적으로 전해진다. 이를 종합하면 다음과 같다.
“(선산읍성은) 흙으로 쌓았다. 고려말에 지군(知郡) 이득진(李得辰)이 쌓았는데, 둘레가 2740척이요, 안에 9개의 샘과 3개의 못이 있었으나 없어진지 이미 오래고, 지금은 다만 남문과 서문 두 문이 남아 있을 뿐이다. (조선시대에 들어와서) 갑인년 부사 조두수(趙斗壽)가 석축을 하였는데 둘레가 1448척이고 높이가 9척이며 동서남북 4문이 있다. 그 후 1790년∼1793년경에 선산부사 박수원이 남문루를 중수하고 단청하였다. 또 1808년∼1811년경에 선산부사 이재항이 남문루를 수리하였다.”
하지만 선산읍성은 한말에서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허물어지고 그 기능이 잊혀져 가며 낙남루 또한 옛 지도에만 남게 됐다.
이 같은 역사적 배경을 가진 선산읍성 성문의 중창은 경북지역은 물론 전국에서도 매우 드문 일이라는 게 구미시의 설명이다.
이에 따라 시는 낙남루 중창을 위해 철저한 고증과 기초자료를 수집할 학술용역과 실시설계를 이미 마쳤으며 앞으로 약 1년의 공사를 거쳐 내년 10월경 준공할 예정이다.
26일 구미시는 지역의 역사와 문화유산에 대한 시민의 자긍심을 높이고 역사의 현장을 관광 명소로 만든다는 취지로 낙남루 중창을 추진, 26일 오후 선산읍 1호 광장에서 기공식을 개최한다.
선상읍성 남문인 낙남루는 조선조 500년 동안 선산도호부와 선산군의 관문으로 선산을 지켜온 역사적인 문화유산. 낙남루는 고려말에 처음 축조된 것으로 조선시대 말기까지 수 백년 동안 선산 사람들과 선산을 거쳐간 모든 사람들이 드나든 관문으로 전해진다.
특히 선산읍성의 연혁은 ‘신증동국여지승람’ ‘일선지’ ‘여지도서’ 등 인문지리지와‘선산부 관안’ 등을 통해 구체적으로 전해진다. 이를 종합하면 다음과 같다.
“(선산읍성은) 흙으로 쌓았다. 고려말에 지군(知郡) 이득진(李得辰)이 쌓았는데, 둘레가 2740척이요, 안에 9개의 샘과 3개의 못이 있었으나 없어진지 이미 오래고, 지금은 다만 남문과 서문 두 문이 남아 있을 뿐이다. (조선시대에 들어와서) 갑인년 부사 조두수(趙斗壽)가 석축을 하였는데 둘레가 1448척이고 높이가 9척이며 동서남북 4문이 있다. 그 후 1790년∼1793년경에 선산부사 박수원이 남문루를 중수하고 단청하였다. 또 1808년∼1811년경에 선산부사 이재항이 남문루를 수리하였다.”
하지만 선산읍성은 한말에서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허물어지고 그 기능이 잊혀져 가며 낙남루 또한 옛 지도에만 남게 됐다.
이 같은 역사적 배경을 가진 선산읍성 성문의 중창은 경북지역은 물론 전국에서도 매우 드문 일이라는 게 구미시의 설명이다.
이에 따라 시는 낙남루 중창을 위해 철저한 고증과 기초자료를 수집할 학술용역과 실시설계를 이미 마쳤으며 앞으로 약 1년의 공사를 거쳐 내년 10월경 준공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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