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광복과 민족통일의 화신 - 몽양 여운형 선생 64주기] “일본의 악랄한 간계로 합방당하고 말았다”

지역내일 2011-07-19 (수정 2011-07-19 오후 2:15:24)
파리강화회의에 조선대표 보내 야만적 침략상 폭로
수유리 묘역서 추모식 … 고향 양평에 기념관 건립

"나는 한국인이다. 조선은 일본인들의 강압과 악랄한 간계로 말미암아 합방을 당하고 말았다. 국민은 결사적으로 이를 반대해 유혈의 사투가 계속되고 있으며, 일본인들의 억압은 날로 심해져만 가고있다. 이 기회에 우리는 일제의 압박과 지배에서 해방되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파리강화회의에 우리도 대표를 파견해 우리 민족의 참상과 일본의 야만적 침략성을 폭로해야 하겠는데, 당신의 원조를 요청하는 바이다." (1918년 11월 28일 찰스 클레인 미국 윌슨 대통령 특사에게 했던 발언)

조국광복과 민족의 통일을 위해 일생을 바친 몽양 여운형 선생 64주기 추모식이 19일 오전 강북구 수유리 묘역에서 (사)몽양여운형선생기념사업회(회장 이부영) 주관으로 열렸다. 추모식엔 함세웅 민주화운동기념 사업회 이사장을 비롯 독립운동관련단체장과 광복회원, 기념사업회원 및 유족 등 200여명이 참석했다. 전창일 기념사업회 고문의 경과보고가 있었고 이부영 기념사업회장의 식사, 함세웅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의 추모사 등이 있었다. 이어 여인영 대구중공업회장의 유족인사와 헌화·분향 순으로 진행됐다.

경기도 양평에서 태어난 여운형선생(1885~1947)은 배재학당, 흥화학교 등에서 신학문을 익혔다. 1908년 기호학회 평의원으로 활동했고 1910년 강릉의 초당의숙에서 민족교육에 매진했다. 1918년 상해에서 상해고려인친목회를 조직하여 총무로 활동하면서 기관지인 '우리들 소식'을 발행했으며 8월에는 신한청년당을 조직하고 총무로 활약하였다.



1차 세계대전 후 파리강화회의에 김규식을 파견했고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독립문제를 크게 부각시키기 위해 장덕수를 일본에 보내 2·8독립선언을 촉발시켰다. 또 국내에 김철, 선우혁 등을 파견해 국내인사들과 접촉하게 하고 자신도 간도·시베리아 방면으로 가서 3·1만세운동의 분위기를 진작시켜 나갔다. 3·1운동 직후 1919년 4월 상해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자 외무부 차장, 임시의정원 의원 등을 지냈다. 같은해 11월에는 일본의 심장부인 동경을 방문해 일본 고위 관료들을 상대로 한국독립의 정당성을 역설했다. 당시 일본은 물론 국제사회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1920년 조국의 독립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써 공산당의 원조를 기대해 고려공산당에 가입했다.

1922년 1월 모스크바에서 극동피압박민족대회가 열릴 때, 조선민족 대표의 일원으로 참석해 조국의 독립을 역설했고 10월에는 상해로 돌아와 독립운동의 장기적 구도 아래 백범 김구 등과 함께 한국노병회를 조직, 군사적 투쟁을 준비하기도 했다. 독립운동계에서 임시정부의 재편문제가 논의되자 안창호와 함께 국민대표회의 개최를 주도했으며 1923년 초부터 국민대표회의가 열릴 때 안창호 등과 함께 '임시정부 개조'를 주장하였다.

1933년에는 조선중앙일보사 사장에 취임해 언론을 통한 항일투쟁을 전개했지만 1936년 8월 베를린올림픽대회 손기정 선수의 '일장기 말소사건'으로 사장직에서 물러났으며 조선중앙일보는 폐간됐다.

일본의 패망을 확신하고 1944년 8월 비밀리에 건국동맹을 결성해 조국광복을 준비했다. 광복 후에 건국준비위원회를 조직했지만 실패하고 극좌·극우 양측으로부터 소외당한 채 좌우합작운동을 추진하던 중 1947년 서울 혜화동 로터리에서 극우파의 흉탄에 맞아 서거했다. 시대를 앞선 선각자요 민족지도자로 평가 받는다. 지난 2005년 3월 1일에야 비로소 건국훈장 대통령장(2급)에 추서됐으며 2008년 3월 1일 건국훈장 대한민국장(1급)에 추서됐다.

한편 여운형 선생 64주기를 맞아 여 선생의 유품등을 모은 기념관이 오는 11월 27일 고향인 양평군 양서면 신원리에 개관한다. 이번 기념관은 유족들로부터 그동안 공개되지 않았던 몽양의 유품을 두루 확보해 선보일 예정이다. 양평군은 몽양이 일제시대에 사용했던 책상, 1946년 회갑 때 받은 병풍을 17일 기증받는 행사를 가졌다. 모두 처음 공개되는 유품이다. 양평군은 또 최근 기념관 건립과 함께 생가 복원 공사도 마쳤다. 발굴조사 결과 등을 바탕으로 안채 사랑채 화장실 방앗간닭장 등을 되살렸다. 양평군은 이미 지난 2007년 생가 인근에서 살고 있던 몽양의 외손들로부터 가구와 디딜방아 돌은 물론 암살 당시 입었던 피묻은 옷 데드 마스크 장례식에 쓰였던 만장 사진 등 160여점의 유물을 기증받아 보관하고 있다.
고병수 기자 byng8@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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