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인지 강인지 구분이 안 갔다. 대한민국에서 제일 번듯한 강남대로에서 밤새 내린 비를 배수하지 못해 자동차가 둥둥 떠다니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졌다. 지난해 폭우 때 자동차들이 침수돼 시민들의 항의를 받았던 광화문 앞도 마찬가지였다. 중심가인 을지로도 침수돼 자동차가 움직이지 못했다. 모두가 서울의 상징인 주요 간선도로다.
우면산 일대는 산사태로 16명이 숨지고 2명이 실종됐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잘 살고 기반시설이 잘 된 것으로 보였던 곳에서 일어난 일이다. 서울시민들은 '화장빨'이었다며 자조섞인 한숨을 쉬고 있다.
우면산 산사태, 전형적인 치산치수 실패
우면산 산사태에 대해 주민들은 "전형적인 치산치수의 실패"라고 항의하고 있다. 서울시는 우면산 정상에 생태공원을 만든다며 산을 파헤치고, 나무를 뽑아냈다. 산허리에는 주택이나 건축물들을 건설한다며 무분별하게 산을 절개했다. 등산로를 만든다며 계곡을 메우고, 제멋대로 물길을 막았다.
지난해 9월 태풍 곤파스 때 산사태로 나무 3000그루가 뽑혀나가는 등 산이 황폐화 됐는데도 방치했다. 이번 폭우는 산 정상에 만들어 놓은 저수지 둑을 무너뜨렸고, 거대한 물줄기가 정말 터진 봇물처럼 물길을 가로막은 흙과 건축물들을 쓸어내렸다. 6명이 사망해 최대의 인명피해를 낸 전원마을 주민들은 해마다 물에 잠겨 몇년째 민원을 넣었으나 전혀 대책을 세워주지 않았다고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우면산 산사태는 '치산치수 무대책으로 빚어진 인재'라고 해도 할 말이 없다. 오세훈 시장은 행정의 기본인 재난 대비에는 관심이 없고, 겉만 번듯하게 꾸미는 '디자인 서울'과 대권을 노린 '무상급식 반대'에만 매달렸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
치산치수는 치국의 기본이다. 조선시대 임금들은 대형재난 때 백성들의 민심이반을 막기 위해 노심초사했다. 세종대왕은 측우기를 개발하여 강우량을 점검하고 수리시설을 정비하여 재난 대비 및 농사를 짓는 백성들의 노고를 달래려고 노력했다.
이상기후는 몇 년 전부터 계속됐고, 국지성 호우도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미리 대비할 수 있는 시간이 있었다. 이번 폭우 피해는 정부와 서울시가 기본 책무인 재난대비를 소홀히 한 인재다. 디자인을 추구하고, G20으로 서울을 홍보했지만 재난에 대한 대비는 없었던 것이다. 지난해 추석 때 폭우로 물에 잠겨 시민들로부터 혹독한 비판을 받았던 광화문 네거리도 1년째 '공사중'이다.
재난에 무방비한 정부와 서울시로 인해 발생한 피해는 막심했다. 인명피해는 말할 것도 없고, 침수로 물에 잠긴 차량이 400여대에 이른다. 차량침수 피해액만 300억~400억원이라고 하니 전체 피해는 어마어마할 것이다.
침수로 물이 넘쳐 서울시내 시중은행 영업점 70여곳이 문을 닫았다. 통신시설이 마비되고 전기가 나갔으며 신호등도 기능을 잃었다. 도시 주요기능이 마비된 것이다. 곳곳에서 배수가 제대로 되지 않아 하수도물이 가정으로 넘쳐 흘렀다.
대통령은 이번 폭우 피해를 천재지변 탓으로 돌렸고, 국영방송인 KBS는 이날 아침 재난방송을 소홀히 해 출근길 시민들에게 제대로 된 정보를 제공하지 못했다. 나라 전체가 재난대비에 무감각해진 것이다. 지난 3일에도 강남역과 삼성역이 집중호우로 한바탕 물난리를 겪었지만 서울시는 이후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민생부터 챙기라는 시민 요구에 귀 기울여야
오세훈 시장은 서울시를 디자인 도시로 만들겠다며 막대한 예산으로 도시를 꾸미고 있다. 시민들은 민생을 돌보라고 소리치지만 오 시장은 들리지 않는 듯하다.
한강에 막대한 예산을 들여 인공섬을 만들고 그 곳에서 고급 모피 패션쇼를 벌이기도 했다. 그는 지금도 한강에 크루즈를 도입한다며 시의회에 막대한 예산을 요구하고 있다. 반면 어린이들 무상급식에 대해서는 돈이 많이 드는 포퓰리즘 정책이라며 주민투표를 요구한다. 민생을 챙기는 건 반대하면서 겉을 꾸미는 데 드는 돈은 펑펑 쓴다.
세종로가 자주 침수당하는 것은 도로의 중심기능 중 하나인 배수로를 제대로 만들지 않고 광화문광장 조성 등 겉만 번듯하게 꾸몄기 때문이다. 시장이 고상한 디자인에 심취해 있을 때 시민들은 위험에 방치돼 있었다.
지금이라도 서울시내 주요 지점에 지하 저류지를 만들고, 집중호우에 대비해 빗물관을 정비하는 사업부터 최우선으로 해야 한다.
문진헌 기획특집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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