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종 언론인, 전 한국일보 주필
화석연료가 급격히 소진되어가는 시점에서 지구가 100억명의 인구를 지탱할 수 있을지는 인류에게 다가온 가장 크고 절박한 과제다.
"딩동댕." 누군가 아파트 출입문 초인종을 눌렀다. 수화기를 들었더니 여자 목소리가 들렸다. 문을 열었더니 젊은 여자가 서 있었다. "아래층에 사는데 백일 떡 드세요."
하얀 백설기의 담백한 맛을 보면서 백일 된 아기를 그려보았다. 식구들의 입에서 한 마디씩 나왔다.
"얼마 전부터 애기 우는 소리가 들리더니 아래층이었구나."
"오랫만에 애기 소리를 들었다."
인구 폭증을 비관적으로 보고 걱정하며 산아제한을 강제하다시피 하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지금은 애를 낳지 않아 나라가 망하게 됐다고 염려하는 세상이 됐다.
애를 보면 모두가 신기하게 바라본다. 동네에 애 우는 소리를 들을 수 없고, 초등학교 학생 수가 줄어들어 학급이 폐쇄되는가 하면 농촌지역에서는 아예 초등학교가 없어져버리기도 한다. 인구 정체의 파급은 중고교와 대학으로 밀려오고 있다. 겨우 20여년 만에 인구 문제가 이렇게 돌변해버렸다.
그런데 한국이 인구 감소를 걱정하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세계 인구는 20세기에 이어 21세기에도 풍선처럼 불어나고 있다. 세계 인구는 오는 10월 31일 70억 명을 돌파한다. 유엔 인구기금(UNFPA)에서 사용하는 인구 시계의 예측 값이다. 세계 인구 시계가 60억을 알린 것이 1999년 10월 12일이었으니 인구가 10억 증가하는 데 12년 밖에 안 걸렸다. 지구 크기는 그대로인데 어물어물하는 사이 지구상에는 인도가 하나 더 생긴 꼴이다.
인구 숫자가 너무 크다보니 감을 잡기가 힘들다. '내셔널지오그래픽'이 1998년 '세계 인구 60억 시대'를 알리면서 게재했던 기사가 생각난다. 아직도 유효하고 인구 증가의 긴박함을 잘 설명하고 있어 소개한다.
10억 늘어나는 데 12년밖에 안 걸렸다
"지구에는 하루 23만명의 인구가 증가한다. 내년 한해 동안 1억3700만명이 태어나고 5300만명이 죽어 8400만명의 인구 증가가 예상된다. 오늘 태어난 23만명은 앞으로 1년 간 엄마젖을 빨며 자랄 것이나, 그로부터 66년(인간 평균수명) 동안 음식과 마실 물을 대자연에 의존하게 된다. 그러나 23만명은 오늘 늘어난 인구일 뿐이다. 내일도 모래도 이렇게 매일매일 늘어나는 23만명이 이어질 것이다."
유엔 인구기금은 2050년에 세계 인구가 94억명이 될 것이라고 추산한다. 상당히 보수적인 예측인 것 같다. 어찌됐건 21세기 지구는 100억명이 넘는 인구를 지고 가게 될 것이다. 인구는 개별국가의 경제발전 정도에 따라, 짐이 되기도 하지만 국력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지구촌 전체의 차원에서 보면 인구 증가는 큰 짐이다. 인류 문명은 대자연을 소모하며 발전해 왔다. 식량, 에너지, 수자원 확보를 위해 세계는 살벌해지고 있다. 인구 증가에 따라 자연 자원이 빠른 속도로 고갈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200년간 인류문명의 에너지를 공급했던 화석연료가 급격히 소진되어가는 시점에서 금세기 안에 도달할 100억 인구를 지탱할 수 있을지는 인류에게 다가온 가장 크고 절박한 과제다.
근래 과학계에는 새로운 용어, 즉 '인류세'(人類世 : Anthropocene)라는 말이 나왔다. 과학자들은 지구 역사상 인간처럼 박테리아가 분열하듯이 개체수를 늘려온 영장류는 없었다며 이렇게 번창하는 인류가 지구의 모습을 바꿔놓고 있다고 판단하고, 지질 연대기에 '인류세'를 공식적으로 편입하는 문제를 논의하기 시작한 것이다.
인류문명에 어두운 전망 암시
아주 쉽게 말하면 지구가 온통 공룡으로 덮였던 지질시대를 '쥬라기'라고 표현하듯이 인간이 날뛰는 현재의 지질 연대를 '인류세'로 정의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용어를 보고 우리가 자랑스러워해야 할 이유는 없을 것 같다. 과학자들이 이런 지질연대 이름을 붙이는 것은 인류 문명에 대한 어두운 전망을 암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지구 생명권은 지질시대가 변하면서 과거 5차례에 걸쳐 대멸종을 경험했다.
예를 들어 기후변화든 핵전쟁이든 재앙이 일어나 도시가 붕괴하면 철근, 콘크리트, 유리가 땅속에 묻혀 훗날 인류가 번창했던 대표적 흔적으로 남을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인류가 없는 지구에서 인류 문명의 찬란함을 자랑하고 칭송해줄 존재는 누구일까. 아래층에 들리는 아기 울음소리의 주인공이 살아갈 21세기 후반기의 지구는 지금과는 판이하게 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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