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부한 에너지, 외교자산으로 활용 … '세력균형' 게임에 능숙
1993년 북한의 NPT(핵확산방지조약) 탈퇴로 발생한 1차 북핵위기가 고조되던 1994년 일이다. 당시 러시아 외무성은 한국 대사관 관계자들을 불러 러시아를 비롯한 남북과 미일중 등 6개국과 유엔(UN),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참여하는 8자회담을 제안했다.
당시 북핵문제 해법은 경수로 건설사업 지원, 대북 중유 공급 등 경제적인 보상 방식이 중심이었다. 러시아는 이러한 경제적 지원만으로는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며 북한에 대한 안전보장, 관계정상화 등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제안이었다. 그 후 북핵문제가 더욱 복잡해지고, 2003년 북한이 다시 NPT에서 일방적으로 탈퇴하는 등 상황은 악화됐다. 사태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중국은 6자회담을 제안해 첫 회담이 베이징에서 열렸다. 러시아의 제안이 10년 후 중국에 의해 6자회담으로 구체화된 것이다.
미국과 함께 세계를 동서 두 진영으로 갈랐던 구소련의 외교력을 이어 받은 러시아는 세계적 차원에서 진행되고 있는 복잡한 세력균형게임을 능숙하게 치러내고 있다. 미국에 편승하는 정책을 펴면서도 다양한 수단을 동원해 견제정책을 동시에 쓰고 있다. 중국과 관계를 개선해 미국을 견제하면서도, 중국의 지나친 성장에 따른 세력 확장도 적절히 견제하는 현실주의를 바탕으로 하는 외교노선을 구사하고 있다.
천안함 사건이 발생 후 러시아는 중국과 달리 조사단을 파견하는 등 독자적인 외교행보를 보였다. 또한 한국 정부가 연평도 사격훈련 강행 방침을 밝히자 훈련 철회를 촉구한 뒤 돌연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으로서 긴급회의를 소집해 우리 정부를 곤혹스럽게 하기도 했다.
지난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미국과 중국의 양강(G2)구도가 형성되고 있지만 국제외교 무대에서 러시아의 영향력은 상당하다. 특히 이란과 북핵문제 해결에서 미국식 해법에 이견을 표시하면서 중재자 역할을 통해 영향력을 확장해 나가고 있다.
지난 3월 알렉세이 보로다브킨 러시아 6자회담 대표가 평양을 방문해 핵실험과 탄도미사일 발사 임시 중지 등 의미 있는 제안을 하기도 했다. 또한 북한 최고 지도자를 초청, 경제협력과 북핵문제 논의를 계기로 미국과 중국이 주도하고 있는 한반도 사태에서 목소리를 키우고 있다.
러시아 외교의 최대 자산은 에너지 자원이다. 러시아는 석유 천연가스 수출국이라는 입지를 활용해 영향력을 확대해왔다. 러시아는 유럽 천연가스 절반 이상을, 유라시아 구소련 국가들이 사용하는 에너지의 대부분을 공급하고 있다. 중국과 일본도 러시아 에너지를 두고 물밑 전쟁을 벌이고 있다.
러시아의 한 일간지는 김정일 방러와 관련 22일 "러시아 협상카드는 북한이 핵프로그램을 포기하는 대가로 가스관과 전력망 건설, 러시아와 한국간 가스통과료 확보를 제안하는 것"이라며 "크렘린은 한반도 핵문제 해결과 관련한 중대한 계획을 갖고 있다"고 전했다. 24일 공개된 북러 정상회담 결과는 이러한 보도에 미치지 못하지만 전체 내용이 공개되지 않은 상황에서 성과를 속단하기에 이르다.
러시아 정부는 내년 9월로 예정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극동·시베리아 지역 개발을 위한 투자유치 기회로 삼으려 하고 있다. 이런 러시아에 동북아 지역 안보의 핵심인 한반도 상황의 안정화는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이 때문에 APEC을 계기로 러시아 수뇌부가 한반도와 관련, 의미있는 외교 제안을 내놓은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80년대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이 극동에서 대아시아정책을 발표한 몇 년 뒤 한러 수교가 이루어졌다. 외교부 고위당국자는 2012년도 유사한 상황이 다시 올 수 있다고 전망했다.
김기수 기자 ks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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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북한의 NPT(핵확산방지조약) 탈퇴로 발생한 1차 북핵위기가 고조되던 1994년 일이다. 당시 러시아 외무성은 한국 대사관 관계자들을 불러 러시아를 비롯한 남북과 미일중 등 6개국과 유엔(UN),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참여하는 8자회담을 제안했다.
당시 북핵문제 해법은 경수로 건설사업 지원, 대북 중유 공급 등 경제적인 보상 방식이 중심이었다. 러시아는 이러한 경제적 지원만으로는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며 북한에 대한 안전보장, 관계정상화 등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제안이었다. 그 후 북핵문제가 더욱 복잡해지고, 2003년 북한이 다시 NPT에서 일방적으로 탈퇴하는 등 상황은 악화됐다. 사태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중국은 6자회담을 제안해 첫 회담이 베이징에서 열렸다. 러시아의 제안이 10년 후 중국에 의해 6자회담으로 구체화된 것이다.
미국과 함께 세계를 동서 두 진영으로 갈랐던 구소련의 외교력을 이어 받은 러시아는 세계적 차원에서 진행되고 있는 복잡한 세력균형게임을 능숙하게 치러내고 있다. 미국에 편승하는 정책을 펴면서도 다양한 수단을 동원해 견제정책을 동시에 쓰고 있다. 중국과 관계를 개선해 미국을 견제하면서도, 중국의 지나친 성장에 따른 세력 확장도 적절히 견제하는 현실주의를 바탕으로 하는 외교노선을 구사하고 있다.
천안함 사건이 발생 후 러시아는 중국과 달리 조사단을 파견하는 등 독자적인 외교행보를 보였다. 또한 한국 정부가 연평도 사격훈련 강행 방침을 밝히자 훈련 철회를 촉구한 뒤 돌연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으로서 긴급회의를 소집해 우리 정부를 곤혹스럽게 하기도 했다.
지난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미국과 중국의 양강(G2)구도가 형성되고 있지만 국제외교 무대에서 러시아의 영향력은 상당하다. 특히 이란과 북핵문제 해결에서 미국식 해법에 이견을 표시하면서 중재자 역할을 통해 영향력을 확장해 나가고 있다.
지난 3월 알렉세이 보로다브킨 러시아 6자회담 대표가 평양을 방문해 핵실험과 탄도미사일 발사 임시 중지 등 의미 있는 제안을 하기도 했다. 또한 북한 최고 지도자를 초청, 경제협력과 북핵문제 논의를 계기로 미국과 중국이 주도하고 있는 한반도 사태에서 목소리를 키우고 있다.
러시아 외교의 최대 자산은 에너지 자원이다. 러시아는 석유 천연가스 수출국이라는 입지를 활용해 영향력을 확대해왔다. 러시아는 유럽 천연가스 절반 이상을, 유라시아 구소련 국가들이 사용하는 에너지의 대부분을 공급하고 있다. 중국과 일본도 러시아 에너지를 두고 물밑 전쟁을 벌이고 있다.
러시아의 한 일간지는 김정일 방러와 관련 22일 "러시아 협상카드는 북한이 핵프로그램을 포기하는 대가로 가스관과 전력망 건설, 러시아와 한국간 가스통과료 확보를 제안하는 것"이라며 "크렘린은 한반도 핵문제 해결과 관련한 중대한 계획을 갖고 있다"고 전했다. 24일 공개된 북러 정상회담 결과는 이러한 보도에 미치지 못하지만 전체 내용이 공개되지 않은 상황에서 성과를 속단하기에 이르다.
러시아 정부는 내년 9월로 예정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극동·시베리아 지역 개발을 위한 투자유치 기회로 삼으려 하고 있다. 이런 러시아에 동북아 지역 안보의 핵심인 한반도 상황의 안정화는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이 때문에 APEC을 계기로 러시아 수뇌부가 한반도와 관련, 의미있는 외교 제안을 내놓은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80년대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이 극동에서 대아시아정책을 발표한 몇 년 뒤 한러 수교가 이루어졌다. 외교부 고위당국자는 2012년도 유사한 상황이 다시 올 수 있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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