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순 전 경향신문 논설실장
리비아는 잘 알려진 대로 사실상 석유 하나만 믿고 사는 나라다. 정부 수입의 80%, 수출의 95%, 국내총생산(GDP)의 30%가 석유산업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의아하겠지만 사막의 나라인 리비아는 석유가 발견되기 이전까지 농업으로 먹고 살았다. 리비아의 농업은 '역사학의 아버지' 헤로도토스가 기원전 450년 경에 쓴 인류 최초의 역사서인 '역사'에도 등장한다. 헤로도토스는 바다를 건너 직접 리비아를 방문한 뒤 토양과 3모작을 상술하고 있다.
"키레네 지방은 유목민이 사는 리비아 땅에서 가장 높은 곳(해발 600미터)으로, 놀랍게도 1년에 세 번씩이나 수확을 한다."
이처럼 석유의존도가 높아진 리비아는 세금을 걷기는커녕 석유를 다른 나라에 판 돈을 국민에게 나눠주는 것이나 다름없다. 현금으로 주는 것은 물론 아니다. 교육, 의료 같은 복지혜택을 무상으로 제공하는 형태다. 국민들이 국제가격보다 훨씬 싼 값으로 석유나 식량을 사는 것도 분배정책에 속한다.
하지만 리비아의 철권 독재자 무아마르 카다피는 석유수입을 국민에게 공정하게 분배하지 않았다. 당연히 자신의 몫을 엄청나게 많이 챙겼다. 나머지도 피붙이, 친인척, 같은 부족, 같은 고향, 친위대에게 유리하게 돌아갔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불평등 분배로 사회불안과 정권 안보에 위협이 되기 십상일 게다. 유감스럽게도 그것이 권력유지 방식이었다. 위기 때 배신하지 않을 충성조직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리비아에 정치적 민주화는 물론 경제적 민주화가 절실한 까닭이다.
시민혁명으로 시작된 반정부 세력의 공세에 밀려 카다피의 독재가 종말을 고하는 것은 이제 시간문제처럼 보인다. 하지만 앞으로가 더 걱정이다. 리비아는 통일된 국가 정체성이 취약하다. 리비아의 역사가 헤로도토스의 '역사'에 등장할 만큼 길긴 하지만, 부족·종교·도시들의 역사인 동시에 그들이 속해 있던 제국의 역사였기 때문이다.
이질적인 세 지역이 합쳐진 나라
현대의 리비아도 2차 세계대전 이후 1951년 이탈리아로부터 독립하면서 각각 독자적인 역사를 가진 세 지역이 합쳐져 만들어진 것이다. 세 지역은 북서쪽에 자리 잡은 트리폴리타니아, 남서쪽에 위치한 페잔, 동쪽 절반을 차지하는 키레나이카다.
이 때문에 세 지역은 지금도 이질적인 요소가 많다. 세부적으로는 연결고리가 약한 140여 부족 간의 갈등이 불거질 개연성까지 안고 있다. 카다피의 위협이 사라지면 일체감에 다시 균열이 올 수 있어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라크와는 달리 동질적인 수니파 이슬람 국가여서 종파 간 갈등은 적다는 사실이다.
이번 리비아 혁명 내전과정에서 반군 측이 카다피의 쿠데타로 물러난 이드리스 왕의 사진과 이드리스 왕 시절의 삼색기를 흔들며 다닌 것도 자신들의 결속을 돕고 정체성을 과시한 측면이 있지만 향후 국가 전체의 통합에는 부담이 될 수 있다. 실제로 이것이 트리폴리타니아 지역민들의 경계심을 자극했고 카다피 측의 좋은 선전거리가 되기도 했다. 반 카다피 세력의 대표기구인 리비아 과도국가위원회(NTC)에 수많은 난제가 남은 것이다.
카다피 이후 리비아가 신속히 민주정권을 수립하고 내전 피해를 재건하도록 물심양면으로 도와야 할 국제사회의 역할이 무엇보다 소중하게 됐다. 기본적으로 리비아 내부의 이해당사자들이 풀어나갈 문제지만 초기의 갈등을 조정하는 것은 오롯이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몫이다.
미국이 유럽 국가들이 책임의 대부분을 맡아야 할 지역 문제로 여기는 점은 한편으론 다행이다. 실제로 식민 통치를 했던 이탈리아와 프랑스 등 유럽의 주요 국가들은 자신들의 문제로 본다. 석유 문제만 해도 주요 유럽 국가들이 10% 이상의 원유 수입을 리비아에 의존하고 있으며, 미국의 리비아산 석유 의존도는 0.5%에 불과하다.
미국, 리비아산 석유 의존도 0.5%
미국은 지정학적으로도 중동의 아랍 국가들과는 비중을 다르게 치부한다. 미국이 반군 지원과정에서 나토를 전면에 내세운 것도 이런 배경이 어느 정도 깔려 있는 듯하다.
리비아 국민들의 희망대로 '자유롭고 민주적인 국가'를 이루는 과정에서 이해당사국들의 따뜻한 보살핌을 보여주는 게 도리다. 석유는 그 다음 문제다. 마음이 벌써부터 콩밭에 가 있어 쉽지는 않겠지만.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 편집방침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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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비아는 잘 알려진 대로 사실상 석유 하나만 믿고 사는 나라다. 정부 수입의 80%, 수출의 95%, 국내총생산(GDP)의 30%가 석유산업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의아하겠지만 사막의 나라인 리비아는 석유가 발견되기 이전까지 농업으로 먹고 살았다. 리비아의 농업은 '역사학의 아버지' 헤로도토스가 기원전 450년 경에 쓴 인류 최초의 역사서인 '역사'에도 등장한다. 헤로도토스는 바다를 건너 직접 리비아를 방문한 뒤 토양과 3모작을 상술하고 있다.
"키레네 지방은 유목민이 사는 리비아 땅에서 가장 높은 곳(해발 600미터)으로, 놀랍게도 1년에 세 번씩이나 수확을 한다."
이처럼 석유의존도가 높아진 리비아는 세금을 걷기는커녕 석유를 다른 나라에 판 돈을 국민에게 나눠주는 것이나 다름없다. 현금으로 주는 것은 물론 아니다. 교육, 의료 같은 복지혜택을 무상으로 제공하는 형태다. 국민들이 국제가격보다 훨씬 싼 값으로 석유나 식량을 사는 것도 분배정책에 속한다.
하지만 리비아의 철권 독재자 무아마르 카다피는 석유수입을 국민에게 공정하게 분배하지 않았다. 당연히 자신의 몫을 엄청나게 많이 챙겼다. 나머지도 피붙이, 친인척, 같은 부족, 같은 고향, 친위대에게 유리하게 돌아갔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불평등 분배로 사회불안과 정권 안보에 위협이 되기 십상일 게다. 유감스럽게도 그것이 권력유지 방식이었다. 위기 때 배신하지 않을 충성조직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리비아에 정치적 민주화는 물론 경제적 민주화가 절실한 까닭이다.
시민혁명으로 시작된 반정부 세력의 공세에 밀려 카다피의 독재가 종말을 고하는 것은 이제 시간문제처럼 보인다. 하지만 앞으로가 더 걱정이다. 리비아는 통일된 국가 정체성이 취약하다. 리비아의 역사가 헤로도토스의 '역사'에 등장할 만큼 길긴 하지만, 부족·종교·도시들의 역사인 동시에 그들이 속해 있던 제국의 역사였기 때문이다.
이질적인 세 지역이 합쳐진 나라
현대의 리비아도 2차 세계대전 이후 1951년 이탈리아로부터 독립하면서 각각 독자적인 역사를 가진 세 지역이 합쳐져 만들어진 것이다. 세 지역은 북서쪽에 자리 잡은 트리폴리타니아, 남서쪽에 위치한 페잔, 동쪽 절반을 차지하는 키레나이카다.
이 때문에 세 지역은 지금도 이질적인 요소가 많다. 세부적으로는 연결고리가 약한 140여 부족 간의 갈등이 불거질 개연성까지 안고 있다. 카다피의 위협이 사라지면 일체감에 다시 균열이 올 수 있어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라크와는 달리 동질적인 수니파 이슬람 국가여서 종파 간 갈등은 적다는 사실이다.
이번 리비아 혁명 내전과정에서 반군 측이 카다피의 쿠데타로 물러난 이드리스 왕의 사진과 이드리스 왕 시절의 삼색기를 흔들며 다닌 것도 자신들의 결속을 돕고 정체성을 과시한 측면이 있지만 향후 국가 전체의 통합에는 부담이 될 수 있다. 실제로 이것이 트리폴리타니아 지역민들의 경계심을 자극했고 카다피 측의 좋은 선전거리가 되기도 했다. 반 카다피 세력의 대표기구인 리비아 과도국가위원회(NTC)에 수많은 난제가 남은 것이다.
카다피 이후 리비아가 신속히 민주정권을 수립하고 내전 피해를 재건하도록 물심양면으로 도와야 할 국제사회의 역할이 무엇보다 소중하게 됐다. 기본적으로 리비아 내부의 이해당사자들이 풀어나갈 문제지만 초기의 갈등을 조정하는 것은 오롯이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몫이다.
미국이 유럽 국가들이 책임의 대부분을 맡아야 할 지역 문제로 여기는 점은 한편으론 다행이다. 실제로 식민 통치를 했던 이탈리아와 프랑스 등 유럽의 주요 국가들은 자신들의 문제로 본다. 석유 문제만 해도 주요 유럽 국가들이 10% 이상의 원유 수입을 리비아에 의존하고 있으며, 미국의 리비아산 석유 의존도는 0.5%에 불과하다.
미국, 리비아산 석유 의존도 0.5%
미국은 지정학적으로도 중동의 아랍 국가들과는 비중을 다르게 치부한다. 미국이 반군 지원과정에서 나토를 전면에 내세운 것도 이런 배경이 어느 정도 깔려 있는 듯하다.
리비아 국민들의 희망대로 '자유롭고 민주적인 국가'를 이루는 과정에서 이해당사국들의 따뜻한 보살핌을 보여주는 게 도리다. 석유는 그 다음 문제다. 마음이 벌써부터 콩밭에 가 있어 쉽지는 않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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