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역사를 바꾸는 시민불복종운동

최근 우리 사회에서 두 건의 장엄한 시민불복종 운동이 전개됐다. 하나는 서울시장이 밀어붙인 무상급식(반대) 주민투표에 대한 서울시민의 불복종. 초·중등 아이들에 대한 전면 무상급식이 '복지 포퓰리즘'이라며 서울 시민을 압박했던 180억원 짜리 정치 쇼는 결국 시민들의 외면으로 심대한 상처를 입고 초라하게 끝났다.
다른 하나는 지금도 국토 남단 제주도 강정마을에서 진행 중인 시민 불복종. 민항(民港)위주의 '민군복합형 관광미항'을 조건으로 국회를 통과한 강정기지를 군항으로 개발하려는 군 당국에 맞서 강정마을 주민과 시민단체가 연대투쟁을 벌이고 있다. 서울에서 한창 주민투표가 실시되던 그제 오후, 강정마을에선 마을 주민과 활동가 등 5명이 업무방해 혐의로 경찰에 연행됐다.
기지 건설을 강행하려는 업체의 장비를 점거해 업무를 방해한 혐의다.
때마침 시민 불복종과 관련된 책자가 잇따라 출간됐다. 문정현 신부의 삶의 궤적을 다룬 '다시 길을 떠나다'와 헨리 데이빗 소로우의 '시민의 불복종'이 그것. 예나 지금이나 권력에 횡포는 여전하다.
아니 전보다 더 교활하고 계산적이다. 두 권의 책은 앞으로도 시민사회가 부단히 맞닥뜨릴 권력의 횡포나 위협에 '시민 불복종'으로 의연하게 맞설 수 있는 담력과 지혜를 키우는데 제격일 강력한 방어병기다.
#길 위의 신부 문정현-다시 길을 떠나다(김중미 지음, 낮은산, 340쪽, 1만6000원)
문정현 신부는 지금 길 위에 있다. 그는 지난달 6일 서귀포시 강정마을로 거처를 옮겼다. 스스로 제주해군기지 개발반대 투쟁의 일꾼이 되기 위해서다. 시민 불복종의 대부로 강정기지의 해군기지화를 현 사안 중 가장 심각한 권력의 횡포로 인식했다는 방증이다.
'다시 길을~' 출판기념회 역시 지난 17일 강정마을 중덕 삼거리 노상에서 가졌다. 그는 바로 전엔 미 공군기지(캠프 울프팩) 감시 차 군산시민으로 살아왔다. 용산참사만 일찍 마무리됐어도 벌써 강정에 가 있었을 거다. 그러니 그는 '지금 길 위에 있다'보다 '지금도 길 위에 있다'고 해야 적확하다.
책은 문 신부가 작년 한겨레신문에 연재한 '길을 찾아서'를 바탕으로, 작가 김중미가 그동안 구술 받아온 문 신부의 삶의 궤적을 풀어쓴 것이다. 세인들(주로 꼴통보수들)은 그를 돈키호테 같은 허황된 이상주의자라고 조롱하거나 소영웅주의자라고 비난하기도 한다. 때로 '빨갱이', '깡패'라는 고약한 애칭(?)을 선서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는 특정 사상이나 정파에 기울지 않았고 스스로를 가두지도 않았다. 노동자·농민·철거민들의 인권과 생명, 평화를 위한 것이라면 몸을 사리지 않고 앞장섰다.
부당한 권력과 불의에 맞서는 게 예수를 닮고 따르는 거라는 그의 신념은 그렇기에 눈물겹도록 진지하다.
책에는 신부가 된 과정과 사회참여 과정, 매향리와 대추리, 부안, 용산 남일당에서의 시민 불복종 투쟁 등 그의 사제 생활 45년, 생명·평화 운동 37년의 궤적이 영화처럼 생생하게, 그러나 담담하게 담겨 있다.
독실한 가톨릭 가정에서 자라 동생 문규현과 함께 평범한 사제의 길을 걸을 것으로 보였던 그.
그러나 1974년 유신 체제를 더욱 공고히 하려는 박정희 철권독재에 분개해 민주화 인권운동을 시작했고, 90년대에는 남북통일 운동을, 이후 효순·미선 양 압사사건(2002년)과 매향리·대추리 사건 등 반미 평화운동과 전쟁 없는 세상을 위해 현장을 뛰어다녔다. 만년 까칠한 청년 사제일 것만 같았던 문정현, 그러나 어언간 허연 수염이 덮힌 얼굴에선 고희를 넘긴 성자의 모습이 읽힌다.
"짐승조차 몸의 일부가 아프면 온 몸의 세포들이 몰려서 치료하려고 한다. 하물며 인간이랴. 사회가 아프면 사회 구성원이 관심을 가지고 해결하려고 해야 하는데…"
그는 경찰이 강정마을 사람들을 연행하는 과정에서 문 신부를 개밟듯 짓밟던데, 많이 다치지나 않았는지.
#시민의 불복종(헨리 데이빗 소로우 지음, 강승영 옮김, 은행나무, 231쪽,1만원)
"나는 '가장 좋은 정부는 가장 적게 다스리는 정부'라는 표어를 진심으로 받아들이며 그것이 하루빨리 조직적으로 실현되기를 바라 마지않는다." '세계 역사를 바꾼 (27권의) 책'에 등재된 책. 인도 독립운동의 거장 마하트마 간디조차 자신의 운동 캠프 이름을 이 책에서 따 명명했을 정도로 시민운동의 바이블로 신봉되는 책. 하지만 정작 출간 후 반세기 가까이 세상으로부터 외면당했던 책.
'시민의 불복종'을 세상에 널리 알린 이는 러시아의 대문호 레프 톨스토이였다.
그 후 책은 영국의 노동운동가들, 나치 점령하의 프랑스 레지스탕트 대원들, 마틴 루터 킹같은 흑인 인권운동가들, 베트남전 반대운동가들, 함석헌같은 양심가들, 중국의 민주화운동가들 등 현대사에 족적을 남긴 주역들을 '의식화하는 연모'로 지대한 역할을 한다.
"우리는 먼저 인간이어야 하고, 그 다음에 국민이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법에 의한 존경심보다는 먼저 정의에 의한 존경심을 기르는 것이 바람직하다."
소로우의 확신에 찬 역설은 이 책이 지구 전역에 '정당한 시민 불복종의 바이러스'를 전파하는 매개체가 될 수밖에 없었던 당위성을 함축하고 있다. 하버드대 출신의 엄친아였으나, 부와 명성을 쫓지 않고 고향인 메사추세츠주 콩코드 통나무집에서 생의 대부분을 보낸 그.
29세였던 1846년, 그는 '정당하지 않은 법에 대해 시민은 세금 거부같은 방식으로 불복종해야 하고, 그럼으로써 동료 시민에게 잘못된 것을 자각시켜, 올바르게 정정하도록 해야 한다'는 신념을 활자화한다.
책엔 그의 신념이 갈피갈피 녹아있다. 미국 정부가 흑인 노예제도를 계속 용납하고 멕시코 전쟁까지 일으킨 것에 항의하기 위해 6년간 세금을 내지 않다가 잠시 감옥에 갇혔던 경험도 녹아있기 때문이다. '돼지 잡아들이기', '야생사과' 등 그의 질박한 전원생활을 엿볼 수 있는 에세이도 즐거운 보너스다.
빠트리면 서운할 정보 하나. 이 책의 역자인 강승영은 미국 유학 중 소로우가 한국에 알려지지 않은 것을 늘 안타깝게 생각해왔단다. 그 후 사업을 정리하고 다시 미국으로 건너가, 소로우의 고향인 콩코드 일대를 답사함은 물론, 소로우 관련 각종 자료를 구하기 위해 미국 내의 수많은 도서관을 방문했단다. 1993년 봄, 출판사를 직접 세우고 첫 책 '월든'을 펴냄으로써 제대로 된 소로우의 문학과 사상을 국내 독자들에게 처음으로 소개했고, 이듬해엔 '시민의 불복종'을 펴냈다.
소로우에 병적인 집착을 보여온 그는, 두 책의 첫 간행물에서 발견된 오류와 거친 문장을 재정리해 최근 개정판을 냈다.
윤재석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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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우리 사회에서 두 건의 장엄한 시민불복종 운동이 전개됐다. 하나는 서울시장이 밀어붙인 무상급식(반대) 주민투표에 대한 서울시민의 불복종. 초·중등 아이들에 대한 전면 무상급식이 '복지 포퓰리즘'이라며 서울 시민을 압박했던 180억원 짜리 정치 쇼는 결국 시민들의 외면으로 심대한 상처를 입고 초라하게 끝났다.
다른 하나는 지금도 국토 남단 제주도 강정마을에서 진행 중인 시민 불복종. 민항(民港)위주의 '민군복합형 관광미항'을 조건으로 국회를 통과한 강정기지를 군항으로 개발하려는 군 당국에 맞서 강정마을 주민과 시민단체가 연대투쟁을 벌이고 있다. 서울에서 한창 주민투표가 실시되던 그제 오후, 강정마을에선 마을 주민과 활동가 등 5명이 업무방해 혐의로 경찰에 연행됐다.
기지 건설을 강행하려는 업체의 장비를 점거해 업무를 방해한 혐의다.
때마침 시민 불복종과 관련된 책자가 잇따라 출간됐다. 문정현 신부의 삶의 궤적을 다룬 '다시 길을 떠나다'와 헨리 데이빗 소로우의 '시민의 불복종'이 그것. 예나 지금이나 권력에 횡포는 여전하다.
아니 전보다 더 교활하고 계산적이다. 두 권의 책은 앞으로도 시민사회가 부단히 맞닥뜨릴 권력의 횡포나 위협에 '시민 불복종'으로 의연하게 맞설 수 있는 담력과 지혜를 키우는데 제격일 강력한 방어병기다.
#길 위의 신부 문정현-다시 길을 떠나다(김중미 지음, 낮은산, 340쪽, 1만6000원)
문정현 신부는 지금 길 위에 있다. 그는 지난달 6일 서귀포시 강정마을로 거처를 옮겼다. 스스로 제주해군기지 개발반대 투쟁의 일꾼이 되기 위해서다. 시민 불복종의 대부로 강정기지의 해군기지화를 현 사안 중 가장 심각한 권력의 횡포로 인식했다는 방증이다.
'다시 길을~' 출판기념회 역시 지난 17일 강정마을 중덕 삼거리 노상에서 가졌다. 그는 바로 전엔 미 공군기지(캠프 울프팩) 감시 차 군산시민으로 살아왔다. 용산참사만 일찍 마무리됐어도 벌써 강정에 가 있었을 거다. 그러니 그는 '지금 길 위에 있다'보다 '지금도 길 위에 있다'고 해야 적확하다.
책은 문 신부가 작년 한겨레신문에 연재한 '길을 찾아서'를 바탕으로, 작가 김중미가 그동안 구술 받아온 문 신부의 삶의 궤적을 풀어쓴 것이다. 세인들(주로 꼴통보수들)은 그를 돈키호테 같은 허황된 이상주의자라고 조롱하거나 소영웅주의자라고 비난하기도 한다. 때로 '빨갱이', '깡패'라는 고약한 애칭(?)을 선서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는 특정 사상이나 정파에 기울지 않았고 스스로를 가두지도 않았다. 노동자·농민·철거민들의 인권과 생명, 평화를 위한 것이라면 몸을 사리지 않고 앞장섰다.
부당한 권력과 불의에 맞서는 게 예수를 닮고 따르는 거라는 그의 신념은 그렇기에 눈물겹도록 진지하다.
책에는 신부가 된 과정과 사회참여 과정, 매향리와 대추리, 부안, 용산 남일당에서의 시민 불복종 투쟁 등 그의 사제 생활 45년, 생명·평화 운동 37년의 궤적이 영화처럼 생생하게, 그러나 담담하게 담겨 있다.
독실한 가톨릭 가정에서 자라 동생 문규현과 함께 평범한 사제의 길을 걸을 것으로 보였던 그.
그러나 1974년 유신 체제를 더욱 공고히 하려는 박정희 철권독재에 분개해 민주화 인권운동을 시작했고, 90년대에는 남북통일 운동을, 이후 효순·미선 양 압사사건(2002년)과 매향리·대추리 사건 등 반미 평화운동과 전쟁 없는 세상을 위해 현장을 뛰어다녔다. 만년 까칠한 청년 사제일 것만 같았던 문정현, 그러나 어언간 허연 수염이 덮힌 얼굴에선 고희를 넘긴 성자의 모습이 읽힌다.
"짐승조차 몸의 일부가 아프면 온 몸의 세포들이 몰려서 치료하려고 한다. 하물며 인간이랴. 사회가 아프면 사회 구성원이 관심을 가지고 해결하려고 해야 하는데…"
그는 경찰이 강정마을 사람들을 연행하는 과정에서 문 신부를 개밟듯 짓밟던데, 많이 다치지나 않았는지.
#시민의 불복종(헨리 데이빗 소로우 지음, 강승영 옮김, 은행나무, 231쪽,1만원)
"나는 '가장 좋은 정부는 가장 적게 다스리는 정부'라는 표어를 진심으로 받아들이며 그것이 하루빨리 조직적으로 실현되기를 바라 마지않는다." '세계 역사를 바꾼 (27권의) 책'에 등재된 책. 인도 독립운동의 거장 마하트마 간디조차 자신의 운동 캠프 이름을 이 책에서 따 명명했을 정도로 시민운동의 바이블로 신봉되는 책. 하지만 정작 출간 후 반세기 가까이 세상으로부터 외면당했던 책.
'시민의 불복종'을 세상에 널리 알린 이는 러시아의 대문호 레프 톨스토이였다.
그 후 책은 영국의 노동운동가들, 나치 점령하의 프랑스 레지스탕트 대원들, 마틴 루터 킹같은 흑인 인권운동가들, 베트남전 반대운동가들, 함석헌같은 양심가들, 중국의 민주화운동가들 등 현대사에 족적을 남긴 주역들을 '의식화하는 연모'로 지대한 역할을 한다.
"우리는 먼저 인간이어야 하고, 그 다음에 국민이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법에 의한 존경심보다는 먼저 정의에 의한 존경심을 기르는 것이 바람직하다."
소로우의 확신에 찬 역설은 이 책이 지구 전역에 '정당한 시민 불복종의 바이러스'를 전파하는 매개체가 될 수밖에 없었던 당위성을 함축하고 있다. 하버드대 출신의 엄친아였으나, 부와 명성을 쫓지 않고 고향인 메사추세츠주 콩코드 통나무집에서 생의 대부분을 보낸 그.
29세였던 1846년, 그는 '정당하지 않은 법에 대해 시민은 세금 거부같은 방식으로 불복종해야 하고, 그럼으로써 동료 시민에게 잘못된 것을 자각시켜, 올바르게 정정하도록 해야 한다'는 신념을 활자화한다.
책엔 그의 신념이 갈피갈피 녹아있다. 미국 정부가 흑인 노예제도를 계속 용납하고 멕시코 전쟁까지 일으킨 것에 항의하기 위해 6년간 세금을 내지 않다가 잠시 감옥에 갇혔던 경험도 녹아있기 때문이다. '돼지 잡아들이기', '야생사과' 등 그의 질박한 전원생활을 엿볼 수 있는 에세이도 즐거운 보너스다.
빠트리면 서운할 정보 하나. 이 책의 역자인 강승영은 미국 유학 중 소로우가 한국에 알려지지 않은 것을 늘 안타깝게 생각해왔단다. 그 후 사업을 정리하고 다시 미국으로 건너가, 소로우의 고향인 콩코드 일대를 답사함은 물론, 소로우 관련 각종 자료를 구하기 위해 미국 내의 수많은 도서관을 방문했단다. 1993년 봄, 출판사를 직접 세우고 첫 책 '월든'을 펴냄으로써 제대로 된 소로우의 문학과 사상을 국내 독자들에게 처음으로 소개했고, 이듬해엔 '시민의 불복종'을 펴냈다.
소로우에 병적인 집착을 보여온 그는, 두 책의 첫 간행물에서 발견된 오류와 거친 문장을 재정리해 최근 개정판을 냈다.
윤재석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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