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길본 국립산림과학원장
도시숲을 한번 들어가 보라. 무분별한 작은 길, 숲 주변의 과도한 토지 이용, 물이 스며들지 않고 곧바로 흐르는 등산로 … 우리는 이용할 줄만 알았지 숲과 대화하거나 살펴볼 마음이 없었다.
1926년 당시 우리나라 곳곳에 남아 있는 숲과 관련된 전설을 모아 출판한 '산림과 전설'이라는 책이 있다. 올해 3월 일본 대지진 이후, 교토대학 교수가 한국에 왔기에 그 책을 건네자, 몇 개 이야기를 읽어 본 후 "예나 지금이나 숲은 변함이 없습니다"는 말을 했다. 감명 깊게 읽었던 몇 개의 이야기 중 하나는 '나무의 은혜를 몰라서 전멸한 마을 이야기'였다.
어떤 마을에 홍수가 나서 마을에 밤나무 한 그루만 빼고 모두 떠내려갔는데, 이를 붙잡아서 몇 사람이 살았고, 그 이후 이 밤나무를 베지 않고 보호하였다고 한다. 그렇지만 세월이 흘러 나무의 은혜를 모르고 밤나무마저 베어 땔감으로 이용하고 난 후, 큰 홍수가 와서, 마을 전체가 없어진 이야기였다.
또 한 이야기는, 마을에 큰길이 생기자, 어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나무 다섯 그루를 심어 이 큰길 가에 소중하게 키우면, 5년쯤 후 좋은 일이 있을 것이다"라고 했다 한다. 나무는 점점 자라서 무성해지고 푸르러져 나무 그늘에서 사람들은 할아버지 덕을 칭송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큰 홍수가 났는데, 마을 큰길로 물길이 생겨 마을이 모두 잠겼지만, 나무 위로 마을 사람들이 올라가 무사했다고 한다.
나무 은혜 몰라 전멸한 마을 이야기
큰 홍수 이후, 마을 옆의 하천은 훨씬 멀리 이동하고, 마을 주변은 모래가 쌓여 한층 높고 평평한 땅이 되어서 마을은 더 넓게 형성되어 마을에 이롭게 되었다고 한다.
21세기인 지금, 1926년 채록한 이야기가 새삼스럽게 쉽게 마음에 와 닿는 것은 왜 일까?
그 때보다 지금 숲은 푸르렀고, 벌거숭이산은 없어졌다. 그렇지만, 20세기 초반 한반도에서 걱정했던 일이 21세기 IT 시대에 우리나라 서울 도심에서 일어났다.
왜 그럴까? 전문가는 100년 만에 내린 강우량, 기후변화 재해 대응 및 예방 시스템의 시급함을 주장하고 있다. 우리나라 산림과학을 연구하는 기관의 장으로서 산사태를 과학적으로 분석, 예측, 예보하는 일은 근본적인 소명임에 분명하다.
그렇지만, 현대 과학으로도 감당할 수 없는 부분은 산림, 자연에 대한 국민의 태도를 변화시키는 일이다. 돌이켜 보건대, 숲에 대한 경외심은 예전보다 낮아졌다.
도시 주변 산림 중 사유지는 쉽게 다른 용도로 변할 수 있고, 인공구조물에 의한 기술로 우리는 자연 재해를 극복하리라 자만한다.
스스로 그러한 자연의 지혜와 대화하려는 노력이 근본적으로 없었다고 자성하고 싶다.
도시숲을 들어가 보라. 무분별한 작은 길, 도시숲 주변의 과도한 토지 이용, 물이 스며들지 않고 바로 흐르는 등산로에서 우리는 도시숲을 이용할 뿐이지, 대화하거나, 살펴볼 마음이 없었음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의 헐벗은 산림을 녹화하기 위해 숲을 사랑하는 마음을 높이고자 수집했던 옛 산림과 전설은 푸르른 산림을 가진 21세기에 우리 마음을 울리고 있다.
우리나라 숲은 푸르렀지만, 과학기술의 발전과 도시화는 숲을 사랑하는 마음과 숲을 경외하는 마음을 앗아갔다.
숲은 살아있는 생명체
숲은 살아 있는 생명체이며, 우리에게 끊임없이 대화하려고 한다. 숲에 대한 경외심을 국민 모두가 다시 한번 새겨보아야 한다.
진정한 도시의 숲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도시에서 '재해에 강한 숲'이란 단지 푸르고 울창한 숲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건강한 숲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푸르고 울창한 숲은 항상 건강하다고 할 수 없으나, 건강한 숲은 언제나 푸르기 때문인 것이다. 이제야 말로 우리의 따뜻한 손길과 마음으로 가꾸어 우리를 감싸 안아 줄 수 있는 건강한 도시 숲으로 만들어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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