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발유통 들고 불이라도 지르고 싶은 심경”

지역내일 2011-08-16 (수정 2011-08-16 오후 1:41:45)
대기업, 94년엔 대형마트 99년 SSM·대리점 싹쓸이 … 정부는 뒷짐진 채 방관만
인천에서 식자재 대리점 운영하는 조중목씨

"골수 한나라당 지지층 9명 중 2~3명 빼고 다 돌아서"
"노후준비도 안된 내가 SSM 반대 동학운동처럼 나선 이유를 알아야"

"정부가 공정한 심판관이 돼 줘야 하는 거 아닙니까. 대기업이 동네 상권까지 치고 들어오고, 상인들이 맞장 뜨는데도 정부는 그냥 방치만 합니다."

10일 인천 부평시장 입구 창고같은 가게에서 작은 선풍기를 벗 삼아 앉아있던 조중목(58)씨가 기자에게 털어놓은 얘기다.

조씨는 현재 슈퍼마켓과 식자재 납품 대리점을 경영한다. 처음 유통업에 뛰어든 게 33살 되던 1983년이니 벌써 30년 가까이 한 우물을 파고 있지만 요즘처럼 답답할 때가 없다고 털어놓았다.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지금처럼 나쁘지 않았다. 주위의 식당과 슈퍼마켓에 물건을 중개해주고 중간 마진을 먹는 대리점이었지만, 수입도 나쁘지 않았고, 젊어서인지 그다지 힘들다거나 고되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잘 나갈 때도 있었다.

"1990~91년 즈음에는 1년에 1억원씩 벌어들였어요. 그 당시 프로야구 선수인 선동열의 연봉이 9500만원이었으니, 당대 최고 스타보다 더 많이 번 셈이죠."

그러나 그것도 잠시였다. 1994년 동네에 대형마트가 들어오면서 상황은 뒤집혔다. 이마트와 킴스클럽 등 대형마트가 저가로 동네상권을 치고 들어왔고, 사람들은 '대형마트들이 공짜로 물건을 나눠준다'는 생각에 이곳으로 몰렸다.

당연히 조씨 대리점도 폭탄을 맞았다. 매출이 20~30% 줄어든 것. 주변의 슈퍼마켓 40~50개가 문을 닫았다.

문제는 외상거래였다. 한 가게에 40만~50만원 정도의 외상이 남아 있었다. 슈퍼들은 야반도주하듯 몰래 가게를 정리하고 떠나버렸다. 외상은 고스란히 대리점 빚으로 남았다.

"당시 풍파로 2억원의 빚을 졌어요. 인천의 아파트 한 채 가격이 1억원이 안됐을 때니, 아파트 두 채를 그냥 날려버린 거죠."

99년엔 빚이 9억원으로 늘었다. 조씨 역시 도망가려고 했지만 세금연체 의료보험 등이 줄줄이 묶여 있어 어쩔 도리가 없었다. 가압류만 14건이었다. 결국 신용불량자로 전락했다.

2000년 슈퍼마켓을 시작했다. 처남에게 보증금만 받고 내줬던 건물을 "아이들 대학 보내려면 슈퍼를 해야겠다"면서 돌려받았다. 건강도 나쁜데다 신용도 나쁜 상황이었다. 보증금을 돌려주기 위해 돈을 빌러 다니면서 "원래 돈이 없었잖아. 어떻게든 해봐"라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슈퍼의 하루 매출은 250만원 정도. 이자, 운영비, 생활비를 빼면 남는 게 없었다. 2001년에 세무서에서 오라 했다. 연체된 세금을 내라고 압박했다.

"대학 다니는 자식 둘이 있어 졸업시킬 때까지는 세금 못 낸다. 그동안 세금 꼬박꼬박 냈으면 이럴 때 도와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따졌다. 5년 유예를 받았다. 세무서 당국도 어쩔 수 없다고 판단한 것 같았다.

4년째부터 수익이 안정적으로 들어왔다. 2009년에는 신용불량자에서 빠져나왔다.

하지만 또 다시 악재가 찾아왔다. 유통대기업들이 동네의 목 좋은 자리에 수퍼슈퍼마켓 (SSM)을 열기 시작했다. 당장 가게 임대료부터 뛰기 시작했다. 월 150만~200만원하던 슈퍼 임대료가 500만~600만원으로 뛰었다. 슈퍼만 아니라 미장원 등 동네 가게의 임대료도 덩달아 올랐다. 동네가 완전히 뒤집어졌다.

CJ와 대상 같은 식품 대기업도 도매사업에 뛰어들었다. 이들 대기업들은 중간 유통 한 단계만 빠져도 물건 값이 크게 싸진다고 소비자들에게 광고했다. 상인들마저도 소비자들에게 좋다는 것을 반박만 할 수 있느냐며 한발 빠졌다.

대기업들이 매출 큰 식당과 슈퍼를 먼저 공략했다. 결국 영세식당은 미수가 쌓이고, 이들이 장사가 안 되면 다시 대리점이 받아 안아야 하는 악순환이 반복됐다.

"우리 모두 누구에게 맞는지도 모르면서 죽어가고 있는 꼴입니다. 점포도 없이 차 하나 끌고 다니며 우리 물건 떼서 식당에 대주는 영세 자영업자들도 죽을 맛일 것이고, 그 타격을 곧바로 받는 나도 죽을 맛입니다."

조씨는 "나이 60이 다 된 내가 왜 SSM·대리점 입점 반대에 적극 나섰겠나"고 기자에게 되물었다. "노후도 준비되지 않은 내가 동학운동처럼 일어선 이유를 알아야 해요. 휘발유통 들고 불을 지를 수도 있을 것 같은 심정입니다."

얘기는 결국 정부로 향했다.

이번엔 조중목씨 얘기를 듣고 있던 이웃 사조대림 대리점의 김천환 사장이 나섰다. 그는 먼저 자신을 "뼛속까지 파란색"이라고 소개했다. 한나라당을 나타내는 색깔이 푸른색임을 빗대, 자신이 한나라당의 골수지지층이었다고 밝힌 것이다.

2007년 대선 때는 '경제독재 좀 해달라'고 이명박 후보에게 지지표를 던졌다고 했다. 진보정권 10년 간 나라경제를 거들냈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 출범 후 생각이 달라졌다. 정부의 친 대기업정책으로 자영업자들이 얼마나 피해를 보는 지 눈에 팍팍 들어왔다고 했다.

"내 스스로가 기득권이라고 착각했던 거죠. 10년간 내가 혜택을 봤는데도 욕을 했구나 하는 후회가 들더라구요.".

경상도 출신인 김씨는 자주 만나는 고향동기들의 정치성향도 크게 바뀌었다고 전했다. "9명 중 8명이 파란피를 가졌었는데, 지금은 골수파 2~3명 빼고 모두 돌아섰어요. 막연했던 정치가 피부에 와 닿는다는 것을 50대 들어 처음 느꼈는데 이 대통령에게 고마워해야 하나?"

조중묵씨는 정부가 공정한 심판관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영업자들은 상대적으로 정보·기술·자금이 부족하다. 소비자들은 가격도 떨어지고 편해지는데 왜 SSM, 대형 대리점을 반대하냐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자영업자를 위한 논리를 찾아줘야 하는 게 아니냐는 게 조씨의 생각이다.

"유통서비스업도 중소기업 고유업종으로 지정해줘야 합니다. 하지만 실태조사조차 안돼 있어요."

특별기획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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