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철 국민은행 인재개발원 팀장
요즘 물가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으면서 금융상품 가입자들 사이에서"티끌 모아 티끌이다."라는 우스갯소리가 유행하고 있다.
사실은 '우스갯소리'가 아니라 금융상품에 붙는 이자가'물가상승률'을 쫓아가기도 버거운'실질금리 마이너스시대'에 대한'푸념'이다.
기준금리가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밑도는'마이너스 실질금리'가 20개월 넘게 이어지고 있다. 1995년 금리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이후로 최장 마이너스 상태다.
예금자들 입장에서는"저축하나 마나" 혹은"앉아서 돈 까먹는다"는 탄식이 절로 나오는 상황이다.
특히 직장생활을 하다 은퇴 후 예금이자만으로 생활하는 퇴직자들은 말 그대로'죽을 맛'이다.
요즘 이자를 많이 붙여준다는 특판 예금의 금리도 고작 4%를 넘나든다. 1억원을 맡겨봐야 세금까지 제하면 월 20만~30만원 남짓이다.
하지만 은퇴를 하고 소득이 줄었다고 해서 덩달아 지출까지 줄어들지는 않는다. 오히려 자녀 학자금에 나아가 결혼비용까지 돈 들어갈 곳을 따지면'첩첩산중'이다. 이런 지출을 감당하려면 재취업이나 창업하는 수밖에 없다.
실제 2010년 말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썰물 은퇴'를 눈 앞에 둔 베이비붐 세대 10명 중 6명이 노후에도 재취업이나 창업을 통해 계속 일하기를 희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청년실업이 횡행하는 상황에서 퇴직자들의 재취업은 말 그대로 "낙타가 바늘구멍 뚫기"다.
'창업'은 더더욱 녹록하지 않다. 사업의 세계는 비정하다.
10명이 창업한다면 잘해야 한 두 명 성공한다. 불경기로 산전수전 다 겪은 백전노장들도 하던 장사를 털어먹기 일쑤인데 퇴직자들이 회사를 그만두고 나와 생판 해보지도 않은 장사판에 뛰어들어 성공한다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다. 자칫 피 같은 퇴직금을 날리는 것은 물론이고 순식간에 빚더미에 올라 앉을 수도 있다. 준비되지 않은 창업의 꿈은 순식간에 악몽으로 변한다. 한 마디로 청년실업 못지 않게 심각한 퇴직자들의 재취업과 창업대란이다.
돈 굴릴 곳 없는 퇴직자들
결론은 퇴직자들 입장에서 돈 굴릴 곳이 마땅치 않다는 얘기다.
그러다 보니 요즘 짧은 기간에 높은 수익을 올리고 싶어하는 퇴직자들의 욕심을 파고든 유사수신이 성행하면서 피해자가 속출하고 있는 상황이다.
'유사수신'이란 제도권금융기관이 아니면서 고수익을 미끼로 불특정 다수로부터 돈을 끌어 모으는 행위다. 주로 부동산개발, 주식상장, 인수합병(M&A) 등의 호재를 앞세우며 투자자금을 모집한다.
예컨대, 부동산개발만 되면 대박을 터뜨릴 수 있다거나 상장이 되자마자 바로 몇 십 배의 시세차익을 남길 수 있다는 식으로 투자자를 유혹한다.
또 처음에는 약속한 고율의 이자를 꼬박꼬박 지급해 환심을 샀다가 투자금액이 커지면 이윽고 본색을 드러낸다.
특히 은퇴 후 경제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퇴직자들이 순식간에 한몫을 잡을 수 있다는 유혹에 이끌려 유사수신의 '늪'에 빠져들고 있다. 그것도 주변에서까지 돈을 끌어들여 투자하다가 낭패를 당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퇴직자 노리는 유사수신업체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보면 유사수신은 도무지 말이 되지 않는 얘기다.
돈은 본래 남들 모르게 조용히 버는 법이다. 남들이 알아채고 달려들면 귀찮고 성가신 일만 생기는데 돈 버는 특급비결을 떠들어댈 필요가 없다.
그렇게까지 기막힌 돈벌이라면 가족이나 친구들과 조용히 하지 왜 다른 사람들을 끌어들이겠는가? 무슨 자선사업을 하는 것도 아니면서 굳이 한 번 본적도 없는 남에게까지'대박의 기회'를 나눠줄 이유가 없다.
돈이 되는 곳에는 사람들이 알아서 모여들기 마련이다. 그렇지 않으니 광고까지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뻔한 유사수신의 유혹에 넘어가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다.
'내일은 향해 쏴라'라는 영화가 있었다. 한탕주의에 빠져 은행을 털다가 허망한 최후를 맞이하는 두 사나이의 이야기다.
뜬금없이 웬 지나간 영화얘기냐고 하겠지만 고금리의 유혹에 빠져 유사수신에 돈을 맡기는 퇴직자들도 마찬가지 신세가 되기 십상이다.
그래서 퇴직금을 어떻게 굴릴지를 섣부르게 결정하기 보다는 철저한 계획과 준비가 필요하다.
아무런 사전준비 없이 퇴직금을 불리겠다고 나서는 것은 불구덩이 속에 전 재산을 짊어지고 뛰어드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바로 퇴직자들이 빠지기 쉬운 '실질금리 마이너스시대의 함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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