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명절에 처가 식구 초청하는 게 꿈
명절에도 부모 친구 만나기 어려워
나이 서른의 한국남성이 동갑내기 인도네시아 여자를 만났다. 그는 그녀와 결혼하기 위해 무슬림이 됐고, 인도네시아로 날아가 결혼식을 올렸다. 1997년의 일이다.
14년째 그들은 한국에서 추석을 맞는다. 이마 유니타(43)씨는 한국 명절이면 인도네시아에 있는 부모님이 더욱 그립다. 그럴 때마다 남편이 했던 약속이 원망스럽다. 남편 이풍관(43)씨는 "결혼할 때 2년에 한 번씩 처가에 보내주기로 했고, 10년 후에 이민을 가겠다"고 아내에게 약속했다.
그래도 이들에게 명절은 즐거운 날이다. 부모 친척은 아니지만 무슬림들이 대거 집에 찾아온다. 인도네시아는 물론 말레이시아에서 온 유학생과 산업연수생들이 명절만 되면 집으로 몰려오기 때문에 음식을 준비하는 것도 큰 일이다. 집에서 스무명이 한꺼번에 잠을 잔 적도 있다.
◆부모 위해 기도하지 못하는 한국 무슬림의 삶 = 남편의 이민 약속은 아직 유효했다. 이씨는 "지금은 경제적으로 어려워 힘들지만 언젠가는 약속을 꼭 지킬 겁니다"라고 말했지만, 그날을 준비하기 위해 참아온 고통도 만만치 않아 보였다. 특히 그는 가정을 위기까지 몰고 간 종교문제의 해결점을 찾기가 힘들었다.
이씨가 지난 일을 회고하며 말했다. "한국에서 무슬림으로 산다는 것은 곧 가족을 버려야 한다는 것과 같은 의미입니다. 차례상에 절을 하지 못해 가족들이 등을 돌린 경우가 거의 대부분이죠. 그 때마다 크고 작은 갈등이 있었지만 항상 참아왔고, 잘 견뎌온 것 같습니다."
기독교처럼 차례상을 차리고 기도를 할 것을 제안하자 "무슬림은 이슬람교를 믿지 않는 사람을 위해 기도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부모가 무슬림이 아니면 그들을 위해 기도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의 말처럼 한국에서 무슬림으로 산다는 것은 과연 어떤 느낌일까. 이씨는 단적인 예를 들었다. "친구들을 만나도 술을 마시지 못하니, 친구 관계가 모두 깨집니다."
호텔 나이트클럽에서 일하는 이씨는 저녁에 일하러 가서 다음날 새벽에야 들어온다. 오전시간과 오후시간 대부분을 수면시간으로 써야한다. 결국 그는 기도 시간을 맞추지 못한다. 하루 다섯 번씩 해야 하는 기도를 어떤 때는 세 번만 할 때도 있다. 그럴 때마다 마음이 아팠고, 아내가 섭섭해하지 않을까 걱정이다. 어느덧 그도 한국땅에서 무슬림으로 뿌리를 내린 것이다.
불교 신자인 이씨의 어머니는 이씨가 처음 무슬림이 되겠다고 했을 때 크게 반대하지 않았다. 하지만 무슬림이 됐고, 인도네시아 여자와 결혼을 했다는 것이 못내 미안했다.
공장에서 아내를 만났고, 그녀와 결혼하기 위해 이국땅인 인도네시아를 혼자 찾은 그 였기에 한국에서 '이단아' 취급은 견딜 수 있었다. 하지만 병원에 누워있는 어머니의 그림자는 항상 그를 따라 다녔다.
◆제2의 인생은 무슬림의 땅에서 = 한국인 무슬림은 4만5000명 정도로 추정된다. 한국에 체류중인 외국인 무슬림이 대략 9만2000여명. 모두 13만7000여명의 무슬림이 한국에 살고 있다. 전세계 무슬림 인구에 비하면 적은 인원이지만 이슬람 사원을 중심으로 모여 살기 때문에 집단성이 높다.
무슬림 남성과 결혼한 여성이 무슬림이 되는 경우가 많다. 이씨의 경우는 반대지만 그는 '과감하게' 아내의 종교를 따랐다. "한국 여성들은 외국에 유학을 가거나 여행을 가서 무슬림 남성을 만나 개종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무슬림 여성과 결혼하기 위해 제가 종교를 선택한 것이죠. 드문 일'입니다."
우여곡절 끝에 이씨 부부와 세 딸도 이태원 이슬람교 중앙성원을 연결하는 경사가 급한 계단 아래에 가정을 꾸렸다. 인근에 무슬림이 많이 살고 있어 종교적 불편함은 없었다. 아내는 이슬람사원에서 유치원 교사로 일할 정도로 동네 일에 적극적이어서 생활은 더 풍요롭다.
하지만 걱정거리가 생겼다. 중학교 1학년이 된 큰 딸이 계속 한국에서 학교를 다녀야 하느냐를 놓고 고민에 빠진 것이다. 아내 이마씨가 아직도 인도네시아 국적을 가지고 있는 것도 같은 이유다. 그녀가 한국 국적을 포기한 것도 인도네시아는 언젠가는 돌아가야 할 땅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곳에서 한국문화를 전하며 살고자 한다. 다문화의 완성을 위해서라고 한다.
아내 이마씨는 이런 말을 전했다. "작은 소원이 하나 있어요. 명절에 맞춰 인도네시아에 있는 부모님을 한국으로 모셔오는 겁니다. 부모와 친지들이 사위 나라의 문화를 알고 이해하는 것이 진정한 다문화 아닌가요."
이마씨는 한 번도 한국 땅을 밟아보지 못한 친정 부모에게 한국의 맛을 전하기 위해 이번 주말에도 송편을 빚을 계획이다.
김성배 기자 sb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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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에도 부모 친구 만나기 어려워
나이 서른의 한국남성이 동갑내기 인도네시아 여자를 만났다. 그는 그녀와 결혼하기 위해 무슬림이 됐고, 인도네시아로 날아가 결혼식을 올렸다. 1997년의 일이다.
14년째 그들은 한국에서 추석을 맞는다. 이마 유니타(43)씨는 한국 명절이면 인도네시아에 있는 부모님이 더욱 그립다. 그럴 때마다 남편이 했던 약속이 원망스럽다. 남편 이풍관(43)씨는 "결혼할 때 2년에 한 번씩 처가에 보내주기로 했고, 10년 후에 이민을 가겠다"고 아내에게 약속했다.
그래도 이들에게 명절은 즐거운 날이다. 부모 친척은 아니지만 무슬림들이 대거 집에 찾아온다. 인도네시아는 물론 말레이시아에서 온 유학생과 산업연수생들이 명절만 되면 집으로 몰려오기 때문에 음식을 준비하는 것도 큰 일이다. 집에서 스무명이 한꺼번에 잠을 잔 적도 있다.
◆부모 위해 기도하지 못하는 한국 무슬림의 삶 = 남편의 이민 약속은 아직 유효했다. 이씨는 "지금은 경제적으로 어려워 힘들지만 언젠가는 약속을 꼭 지킬 겁니다"라고 말했지만, 그날을 준비하기 위해 참아온 고통도 만만치 않아 보였다. 특히 그는 가정을 위기까지 몰고 간 종교문제의 해결점을 찾기가 힘들었다.
이씨가 지난 일을 회고하며 말했다. "한국에서 무슬림으로 산다는 것은 곧 가족을 버려야 한다는 것과 같은 의미입니다. 차례상에 절을 하지 못해 가족들이 등을 돌린 경우가 거의 대부분이죠. 그 때마다 크고 작은 갈등이 있었지만 항상 참아왔고, 잘 견뎌온 것 같습니다."
기독교처럼 차례상을 차리고 기도를 할 것을 제안하자 "무슬림은 이슬람교를 믿지 않는 사람을 위해 기도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부모가 무슬림이 아니면 그들을 위해 기도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의 말처럼 한국에서 무슬림으로 산다는 것은 과연 어떤 느낌일까. 이씨는 단적인 예를 들었다. "친구들을 만나도 술을 마시지 못하니, 친구 관계가 모두 깨집니다."
호텔 나이트클럽에서 일하는 이씨는 저녁에 일하러 가서 다음날 새벽에야 들어온다. 오전시간과 오후시간 대부분을 수면시간으로 써야한다. 결국 그는 기도 시간을 맞추지 못한다. 하루 다섯 번씩 해야 하는 기도를 어떤 때는 세 번만 할 때도 있다. 그럴 때마다 마음이 아팠고, 아내가 섭섭해하지 않을까 걱정이다. 어느덧 그도 한국땅에서 무슬림으로 뿌리를 내린 것이다.
불교 신자인 이씨의 어머니는 이씨가 처음 무슬림이 되겠다고 했을 때 크게 반대하지 않았다. 하지만 무슬림이 됐고, 인도네시아 여자와 결혼을 했다는 것이 못내 미안했다.
공장에서 아내를 만났고, 그녀와 결혼하기 위해 이국땅인 인도네시아를 혼자 찾은 그 였기에 한국에서 '이단아' 취급은 견딜 수 있었다. 하지만 병원에 누워있는 어머니의 그림자는 항상 그를 따라 다녔다.
◆제2의 인생은 무슬림의 땅에서 = 한국인 무슬림은 4만5000명 정도로 추정된다. 한국에 체류중인 외국인 무슬림이 대략 9만2000여명. 모두 13만7000여명의 무슬림이 한국에 살고 있다. 전세계 무슬림 인구에 비하면 적은 인원이지만 이슬람 사원을 중심으로 모여 살기 때문에 집단성이 높다.
무슬림 남성과 결혼한 여성이 무슬림이 되는 경우가 많다. 이씨의 경우는 반대지만 그는 '과감하게' 아내의 종교를 따랐다. "한국 여성들은 외국에 유학을 가거나 여행을 가서 무슬림 남성을 만나 개종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무슬림 여성과 결혼하기 위해 제가 종교를 선택한 것이죠. 드문 일'입니다."
우여곡절 끝에 이씨 부부와 세 딸도 이태원 이슬람교 중앙성원을 연결하는 경사가 급한 계단 아래에 가정을 꾸렸다. 인근에 무슬림이 많이 살고 있어 종교적 불편함은 없었다. 아내는 이슬람사원에서 유치원 교사로 일할 정도로 동네 일에 적극적이어서 생활은 더 풍요롭다.
하지만 걱정거리가 생겼다. 중학교 1학년이 된 큰 딸이 계속 한국에서 학교를 다녀야 하느냐를 놓고 고민에 빠진 것이다. 아내 이마씨가 아직도 인도네시아 국적을 가지고 있는 것도 같은 이유다. 그녀가 한국 국적을 포기한 것도 인도네시아는 언젠가는 돌아가야 할 땅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곳에서 한국문화를 전하며 살고자 한다. 다문화의 완성을 위해서라고 한다.
아내 이마씨는 이런 말을 전했다. "작은 소원이 하나 있어요. 명절에 맞춰 인도네시아에 있는 부모님을 한국으로 모셔오는 겁니다. 부모와 친지들이 사위 나라의 문화를 알고 이해하는 것이 진정한 다문화 아닌가요."
이마씨는 한 번도 한국 땅을 밟아보지 못한 친정 부모에게 한국의 맛을 전하기 위해 이번 주말에도 송편을 빚을 계획이다.
김성배 기자 sb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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