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노숙인 등의 복지 및 자립지원에 관한 법률'이 공포됐다. 덕분에 '노숙인'에 대한 종합지원 및 관리체계가 만들어 질 것이라는 기대감이 높다. 하지만 노숙인들에게 현실은 여전히 냉혹하다. 민족 최대 명절인 한가위에도 노숙인들은 한 끼 때우기도 어렵다. 잠시 눈부칠 곳도 마땅치않다. 일할수 있는 곳을 찾기란 더더욱 난감하다. 쪽방촌 사람들에게도 추석은 서글프다. 작은 희망을 갖고 살아가지만 갈곳 없고 올리 없는 쪽방촌엔 술만이 위안이 된다.
"역 화장실도 못쓰게 하나" …
"쪽방생활접고 분식점 내는 게 꿈"
#추석 연휴 마지막 날인 지난 13일 서울역. 귀경 인파가 몰리기 시작한 오전 10시쯤 서울역 근처 노숙인 다시서기센터(용산구 갈월동)는 한산했다. 하루 전인 추석 당일엔 떡, 부침개를 만들며 음식을 나눠 먹었고 윷놀이, 노래 자랑도 했다. 하지만 그 때 뿐이었다.
2층 10평 남짓한 크기의 휴게실에는 열 서너명이 '멍하니' 텔레비전만 보고 있었다. 휴게실은 밝지 않은 불빛에 담배 연기와 냄새가 가득 배어 있었다. 그러나 이런 휴식도 잠시일 뿐, 추석연휴가 지나면 뿔뿔히 흩어져 하루 일용할 양식과 잠자리를 찾아 헤매야 할 판이다.
한 노숙인은 "추워지기 전에 쪽방이라도 들어갔으면 하는데 어찌 될 지 모르겠다"며 "몇 (사람)이 잘못한다고 (노숙인)전부 화장실도 못 들어가게 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고 말했다. 서울역 안 노숙인 퇴거 조치에 흥분한 모양이었다.
이날 11시30분 서울역 무료급식소. 12시에 무료급식을 한다는 소식을 들은 노숙인들 30여명이 여기저기 앉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다시서기 서울역 진료소' 유리문 앞에는 '공휴일은 휴무'라고 적혀 있고 큰 쇠줄 자물쇠로 문이 잠겨 있었다. 구 서울역 광장의 '다시서기 상담소'도 문이 잠겨 있었다.추석명절 노숙인들에게 밥을 주는 곳은 모두 문을 닫았다. 한 50대 초반의 노숙인은 "밥도 적게 주면서 예배보고 1시30분에 다시 오라"고 했다며 분통을 터트렸다. 배식을 못받은 노숙인들은 하나 둘 자리를 떴고 구 서울역 앞 헌혈의 집 옆에서 진행하는 예배에 참여했다. 그들과 함께 150여명에 달하는 노숙인들이 식권(?)을 받기 위해 예배에 참여하고 있었다. 예배가 끝나자 마자 노숙인들은 300여미터 떨어진 무료급식소로 떼지어 몰려갔다.
#같은날 2시쯤 서울역 근처 동자동에 있는 쪽방촌. 쪽방촌에는 1000여 가구가 거주하고 있다. 창문이 1.5미터 간격으로 이어져있는 2층짜리 건물들이 줄지어 서 있다. 좌우로 5개의 문이 달려 있는 건물안엔 주인잃은 신발 여러 켤레가 널부러져 있었고 정적만이 흘렀다. 쪽방촌 사람들의 쉼터인 '동자동 사랑방'. 2평이 채 되지 않는 사무실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또 사랑방에 딸린 공제조합 식당도 추석연휴 관계로 문을 열지 않았다. 대신 쪽방촌 어귀 놀이터에 쪽방촌주민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여러명이 술에 취해 있었고 한 사람은 구석에서 윗옷을 모두 벗은 채 자고 있었다. 또 근처 식당 뒷길에도 4~5명씩 모여 신문지를 깔고 술판을 벌이고 있었다. 막걸리 소주 과자 한봉지가 전부였다.
50대 중반으로 보이는 한 주민은 "술 먹으니 좋은 거지, (술) 없어봐 무슨 재미로 살아"라며 막걸리를 쭉 들이켰다. 40대중반의 다른 주민은 "아내와 둘이열심히 벌어 쪽방 생활 접고 조그만 분식(집)을 내는 게 꿈이다"고 말했다.
김규철 기자 gckim1026@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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